광명사

광명사

[ 廣明寺 ]

요약 경기 개성시 만월동(滿月洞) 연경궁(延慶宮) 북쪽 송악산록(松嶽山麓)에 있는 절.
창건시기 922년
창건자 태조
소재지 경기 개성시 만월동 연경궁

922년(태조 5) 태조가 세전(世傳)의 옛 집을 바쳐 절을 짓게 하였는데, 어수(御水)로 썼다는 이 절의 침실 바깥 우물에는 작제건(作帝建)과 용녀(龍女)의 전설이 얽혀 있다. 충렬왕도 몇 차례나 이 절을 찾았고, 충숙왕 ·충정왕 등도 이 절을 찾아 우란분재(盂蘭盆齋) ·용화회(龍華會) 등을 여는 등 왕가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충정왕의 뒤를 이은 공민왕은 즉위 뒤 2년(1353), 4년, 8년의 3월 24일에 충숙왕의 기신(忌晨)을 이 곳에서 베풀었으며, 가을 등에도 때로 기재(忌齋) ·법회를 열기도 하였다. 왕사(王師) 자초(自超)가 머물기도 하였고, 강종 즉위 뒤는 지겸(至謙)을 왕사로 삼아 머물게 하였다.

1101년(숙종 5) 승려 광기(光器), 주부(主簿) 손필(孫弼)과 이진광(李震光) 등이 음양서(陰陽書)를 조작하다가 발각되기도 하였는데, 또 공민왕 때 양종오교(兩宗五敎)가 치른 공부선(功夫選)이 치러진 곳이기도 하다. 충숙왕과 이규보(李奎報) ·김극기(金克己) 등이 이 절을 소재로 삼아 지은 시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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