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창

관창

[ 官昌 ]

요약 신라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때의 화랑(花郞).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칠 때 황산벌에서 단신 적군 속에 돌입하여 백제의 포로가 되었는데 계백은 그를 죽이지 않고 돌려 보냈다. 그러나 다시 포로가 되어 죽었고 신라 군은 관창의 분전과 용기에 고무되어 백제 군을 대파했다.
출생-사망 645 ~ 660
활동분야 군사

신라의 좌장군(左將軍) 품일(品日)의 아들이다. 어려서 화랑이 되어 널리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수련을 쌓았으며, 15세 때 이미 말 타고 활 쏘는 데 능하여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김춘추(金春秋)에게 천거되었는데, 왕은 그를 부장(副將)으로 삼았다. 660년 신라가 당(唐)과 합세하여 백제를 칠 때 황산벌에서 신라군·백제군 사이에 대격전이 벌어졌다. 이 싸움 중 관창은 단신 적군 속에 돌입하여 백제의 포로가 되었는데, 계백은 그 어린 소년의 용맹에 탄복하여 죽이지 않고 신라군에게로 돌려 보냈다.

그러나 관창은 재차 적진에 돌입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다시 포로가 되었다. 계백은 그의 목을 벤 후 말안장에 매달아 신라군에게 돌려 보냈다. 신라군은 관창의 분전과 용기에 고무되어 모두 결사의 각오로 싸워 마침내 백제군을 대파하였다. 무열왕은 관창의 용전(勇戰)을 가상하여 급찬(級湌:신라 17관등 중의 제9등급) 벼슬을 추증(追贈)하고, 예를 갖추어 장사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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