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설

요약 지리적인 격리를 통해 진화가 일어난다는 학설인데, 처음에는 다윈의 진화론에 대치하는 입장이었으나 현재는 진화론의 한 가지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격리설을 처음 주장한 학자는 독일의 생물학자 바그너(M.F. Wagner)였고, 이후 여러 가지 설이 등장했으며, 유전학과 진화론이 통합되면서, 격리설은 생식적 격리로 나타나 종이 분화하는 원인을 제공한다는 방식으로 정리되었다. 

지리적으로 나뉜 생물이 서로 다른 종으로 발달한다는 것이 격리설의 주된 주장이다. 이러한 생각은 다윈(C. Darwin)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해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론을 제창한 후 그에 대한 반론으로서 더욱 확실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격리설을 처음 주장한 학자는 독일의 생물학자 바그너(M.F. Wagner)로서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지역에 따라 동물의 모양이 다른 것을 관찰, 종이 분화하게 된 주된 원인이 자연선택이 아닌 지리적인 격리에 있다고 판단한다. 그는 이러한 가설을 1868년부터 주장하기 시작했으며 1889년에 "지리적 격리에 의한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발표하여 확고한 이론으로 만든다. 사실 다윈도 지리적 격리에 대한 언급을 했지만, 자연선택이 원인이 되는 다윈의 진화론(Darwinism)과 이 격리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진화의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다양한 격리설의 등장
바그너와 비슷한 시기의 생물학자였던 굴릭(J.T. Gulick) 역시 이러한 격리설을 주장하였다. 굴릭은 1887년에 하와이 근처의 섬들에 서식하는 조개류가 섬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관찰하였고, 같은 섬에서도 골짜기처럼 지역에 조금씩 차이가 있으면 모양이나 색깔이 달라지는 것을 관찰하였다. 로마네스(G.J. Romanes)는 식물이 가지는 암술과 수술의 구조와 성숙 시기의 차이에 주목하여, 지리적 격리뿐만이 아니라 생식적 격리(reproductive isolation)가 종 분화의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하였다. 환경 조건이 다양해지면 꽃이 피는 시기나 암술, 수술이 성숙하는 시기가 서로 다르게 되고, 형태가 달라지게 되며 이러한 변화가 서로 간에 생식을 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와서 종이 갈라진다는 것이 생식적 격리의 주된 주장이다. 이들은 동물에서도 생식기의 모양이 달라진다든가 하는 식으로 이러한 생식적 격리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근대적 종합을 통한 격리설의 융합
이러한 여러 격리설은 신다윈주의(neo Darwinism)의 근대적 종합(modern synthesis)을 통해 전체 진화론으로 통합된다. 근대적 종합은 멘델의 법칙을 기반으로 한 유전학과 진화론을 통합하는 데에서 시작된 것이다. 즉 유전자의 변화가 진화의 근본을 이루며 유전자는 돌연변이(突然變異: mutation)를 통해 변화한다. 이렇게 변화한 유전자는 표현형을 변화시키며, 이는 결국 자연선택으로 이어지게 된다. 생물 세대가 이어지는 방법이 유전자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이 유전학의 기본 입장이기 때문에 이러한 발상이 가능해진 것이다. 격리설은 종이 분화하는 원인을 제공한다는 방식으로 근대적 종합에 편입되었다. 즉 서로 같은 유전자 풀(gene pool)을 가지고 있었던 한 종이 서로 다른 지역으로 격리되면, 이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adaptation)하여 유전자 풀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생식적 격리가 나타나게 되어 결국 다른 종이 된다는 것이 근대적 종합의 입장이다. 근대적 종합에서 유전자 풀에 새로운 유전자가 추가되는 방법은 돌연변이 뿐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격리는 근대적 종합에서 진화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격리가 종이 분화하는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에 격리설은 지금까지 진화론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최근(2000년도)에도 초파리가 이스라엘의 한 협곡에서 아주 작은 환경 차이로 인해 생식적 격리가 나타난 것을 관찰한 논문이 발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