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순절인

강도순절인

[ 江都殉節人 ]

요약 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국한 사람들. 청군의 침입으로 많은 사람이 강화도로 피난 갔는데 방비를 소홀히 하다 청군이 급습하자 패했다. 많은 사람들이 순절했는데 병자호란 수습 후 조정에서 이들의 충절을 표창하고 충렬사를 세워 제향했다.

1637년(인조 15) 군(淸軍)의 침입으로 왕자 ·빈궁(嬪宮) ·궁인 등 많은 사람이 강화도로 피난갔는데, 강화의 수비군은 지리상의 유리한 점만을 믿고 방비를 소홀히 하다가 청나라 군대가 급습하자 검찰사(檢察使) 김경징(金慶徵), 부사(副使) 이민구(李敏求), 강화유수 장신(張紳) 등은 배를 타고 도망하였고, 군사들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패전하였다. 봉림대군(鳳林大君:효종) 이하 200여 명이 청군에게 붙잡혔고, 전 우의정 김상용(金尙容) ·전 공조판서 이상길(李尙吉) 등은 스스로 불질러 자살하였으며, 많은 부녀자들이 순절하였다. 병자호란이 수습된 후 조정에서는 이들의 충절을 가상히 여겨 표창하고, 1642년 강화도에 충렬사(忠烈祠)를 세워 제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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