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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뿔과 특수부위 그리고 클럽하우스.(Feat.소유냐 존재냐)

작성자 익명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2024-08-04 07:30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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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면 이 세상은 내가 어떤 자격과 능력을 갖추는지에 대한 외모적/능력적 욕망과 노력으로 점철되는데 또 알고보면 이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내세우고 인정받는게 아닌 세상과 사람에게 먹히기 위한 부위?라는 점입니다. 내가 얼마나 상대방에게 맛있게 영양가 있게 먹힐수 있는지 자격을 갖추는 아이러니함이 있습니다. (식인사회)

내가 투뿔일때 나를 비싼가격에 먹을 사람. 내가 특수부위일때 가치가 있을 환경.. 그리고 그외 부속부위는 무한 뷔페로...

어찌보면 너무 비유와 비하가 심하지 않냐라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이런 개념과 분석에서 얼마나 철저히 대비되고 비유되는지 스스로 한번 생각해봐야 할 점입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다른 포지션의 생각 아예 방향성 자체가 다른 도전과 실행에 대한 고뇌와 의지가 생길수 있기 때문입니다.

섬머싯몸의 면도날이라는 작품은 어떤 한 청년의 삶이 마치 면도날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는듯 하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이 정의와 진실에 가까운 존재였는데 말이죠.

전쟁에서 방금 얼굴을 마주한 동료의 처참한 시신을 보고 마치 순간적으로 고깃덩어리같이 짖이겨지고 찢겨진 동물의 사체를 보듯이 그 존재감과 영혼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정의에 대한 충격을 받고 나름 명문학교를 나오고 작은 유산의 임대료를 받으며 클럽하우스에서 하루종일 책을 온화하게 읽는 일상을 보내게 되는 장면을 작가가 보며 그것을 신기하고도 이해하기어렵고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이었습니다. 일과 사회활동을 하지 않아 무책임해보이는 어른의 시선으로 굉장히 객관적인 감흥과 시선을 보내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바라보는 작가는 굉장히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

그런데 이부분에 제가 예전에 이야기한 이론?이 있습니다.

자신의 집이 있고 자신이 매달 300여만원 정도의 임대료를 받는 구조적 자산을 일구거나 갖고 있다면 그 삶은 부조리함으로 가득한 이 사회에서 그저 최선의 방법인 무관심한 관조로 방관하듯 지낼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이상적인 싱글라이프 지향점.)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기본적인 여력의 필드에서도 기왕이면 20억 30억 50억 ....100억의 자산을 꿈꿉니다...그게바로 욕망의 시발점이죠. 처음이야기한 매달 300여만의 수익이 나는 자산도 나름 올라붙어 최소 20억에 가까운 시드머니가 필요한 시대인데..(어쨋든 이런 목표지향점이 있다면 행운은 따라 그것보다 훨씬 작은 시드머니로 차곡차곡 일궈날갈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부읽남 같은 사람들도 자신의 초창기 수익모델은 지방의 헐값 임대 자산 매입방식이었습니다.) 동탄의 10억 아파트가 청약되도 한번에 10억 20억 자산은 결국 부조리한 이 세계의 족쇄가 되어 영원히 그것을 등에 엎고 갚아나가며 다시 욕망의 굴레로 이어질뿐입니다. 그안에서 나가떨어져 수레에 짓밟혀 터져나가는 무수한 시체들은 알지도 못할정도/ 흘깃 쳐다봐도 족쇄에 채여 숨도 고르지 못하고 굴러가는 인생...

미국의 한 거대한 유산 상속자였던 여자는 할머니가 되어 (나름 조금 나이든 시점부터 시작된듯) 뉴욕의 한 호텔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싱글이였던것 같습니다. 그러니 홀로 보낼수 있었게죠.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싱글이 아닌 삶은 매우 많은 일거리와 더 많은 환경적으로 제한적인 것이 필요로 합니다.)

얼마나 건강하게 일생을 보냈습니다. 이웃처럼 매일 벨보이와 호텔 직원들과 친분을 갖고 지냈으며 마지막에는 전 유산을 자신의 애완견에게 물려주었습니다.(그후 상속분쟁은 재미졌습니다..ㅎ) 우리는 이런 삶은 참 멋지게 보기도 하고 부럽게 느끼기도 하지만 부자여서도 아닌 돈도 아닌 그저 그것을 지향하는 어떤 감히 실행하거나 범접할수 없는 라이프 스타일의 자세와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일것입니다.

고흐도 타히티로 떠났습니다. 예술가가 아닌 존재하는 삶을 위해. 그삶마저도 체질과 건강과 위생과 여러가지 방조적인 라이프트스타일로 나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하지만 번듯한듯 수레바퀴로 평생을 굴러가다 속이 문들어 썩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삶을 거부하고 버린것입니다. 위대한 삶(100억처럼=고흐처럼)을 꿈꾸십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과감하고 위대한 실행을 해야합니다.

이 자본주의 사회는 결국 소유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유는 끝이 없습니다. 소유는 법을 불러오고 법은 다시 사회적 구속을 불러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키고 증가시키기 위해 다시 다른사람과 세상의 소유가 됩니다.

어떻게 보면 이 사회는 양극단 양극화에 의해 영양가를 갖춘 특수부위(직업적 사회적 능력을 갖춘) 아니면 클럽하우스에 놓인 사람(고귀한게 아닌 그냥 아무것도 할수 없지만 그 자체로 최소한의 사람인 사람.)으로 나뉘어져 있을 뿐입니다. (그 숫자 대비는 완전히 압도적으로 비율이 다르지만 두가지 의미로 나뉘는)

존재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버려야 합니다.

내 주인을 버리고 내 세상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부모이기도 하고 나라이기도 하고 직장이기도 하고 일이기도 하며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알고도 못하는것

알고도 하기 싫은것

알고도 피하는 것

알고도 두려운 것

알고도 어려운 것

알고도 알고만 있는 것

그것이 뻔한 존재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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