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대해알고 싶어여...

독일에 대해알고 싶어여...

작성일 2006.11.02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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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숙제가 있거든여....

독일에 대해서 소개잡지처럼만들어야해여..

독일에 대해서 좀 알려주세여....감사의 내공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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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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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獨逸

Deutschland

(영)Germany. 공식 명칭은 독일연방공화국(Federal Republic of Germany/Bundesrepublik Deutschland).

유럽 중북부에 있는 주요 국가.

국기
국가
지도
공식 수도는 베를린이다. 알프스 산맥 외곽 능선으로부터 북쪽으로 독일중앙고원의 여러 지역과 북독일평야 등 유럽 대륙의 주요 자연경계선을 가로지르며 펼쳐져 있다. 북쪽으로 발트 해·덴마크·북해, 서쪽으로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프랑스, 남쪽으로 스위스·오스트리아, 동쪽으로 체크·폴란드와 접경한다. 면적 357,021㎢, 인구 82,604,000(2003 추계).

자연환경

독일 킬의 엘베 강 어귀부터 발트 해에 이르는 ...
남북 최대 거리는 북위 47∼55°사이의 약 850km이고, 독일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동서 최대 거리는 동경 6∼15°사이의 약 640km이다. 동·서로 접한 이웃 국가들처럼 북쪽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는 지형학적 특징을 보인다. 지리학적으로 북독일평야· 독일중앙고원·남부산악지방 등 3지역으로 구분된다.

독일의 북쪽 1/3 정도를 차지하는 북독일평야는 북쪽 해안에서 시작해 오레 산맥까지 펼쳐져 있다. 이 지역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브레멘·함부르크·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이외에도 베를린·작센안할트·브란덴부르크·니더작센 주의 대부분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서북부로 이루어졌다. 대체로 빙하시대 동안 빙하가 녹으면서 형성된 이 지역은 거대하게 뻗어 있는 해안 평야로부터 완만하게 기복이 진 구릉지대, 수림지, 호수 습지, 황무지 등으로 이어지는 지형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 지역의 평균고도는 해발 100m가 채 되지 않는다.

북부지역은 농업(특히 곡물 재배)·낙농·가축사육에 매우 적절하다. 또한 이전에는 철이 많았으나 현재는 석탄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이와 같은 조건들은 이곳의 많은 강·운하와 함께 이 지역의 부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 엘베 강과 베저 강이 내륙 해항인 함부르크와 브레멘을 통과하여 흐르며, 유럽 최대의 내륙수로인 라인 강은 인구가 밀집되고 고도로 공업화된 루르 지방에서 바다로 나가는 통로가 된다.

흔히 독일중앙고원으로 알려진 독일의 1/3에 해당하는 중부지역은 삼림이 우거진 산마루의 저지대, 강 유역, 고원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적 지형을 보인다. 이 지역은 헤센·라인란트팔츠·자를란트·튀링겐·작센 주의 전부 또는 대부분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니더작센·작센안할트·브란덴부르크 주의 남쪽 부분들에 이른다. 독일의 가장 중앙에 위치하면서 번창한 공업지대인 헤센 남부의 라인-마인 지역 일부와 인구가 희박한 오지의 일부도 이곳에 포함된다. 이 지역에서는 목재가 중요한 자원이며, 비교적 최근의 지질연대에 발생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구역은 중요한 광물 공급원이다. 이 지역 안의 골짜기에서는 곡물이 재배되고, 기후조건이 허락하는 곳에서는 포도주용 포도가 재배된다. 그 밖의 구역에서는 풍부한 수력전기가 공급되고, 수상·철도·도로 교통이 편리해 광산업·제조업·가공업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독일의 나머지 1/3에 해당하는 남쪽의 남부산악지방은 사실상 쥐라 산계의 동북 연장부다. 마인 강에 의해 독일중앙고원으로부터 분리된 이 지역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와 바이에른 주의 대부분을 점한다. 마인 강과 네카어 강 유역으로 둘러싸인 부분은 낮은 구릉, 대지, 골짜기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곳은 풍부한 농업지대이며, 또한 비교적 고립되어 있어 잘 보존된 옛 도시들이 많다. 남부산악지방의 대부분은 쥐라 산맥 최북단의 2개 지맥으로 형성되어 있다. 서쪽 지맥은 그곳을 덮고 있는 거대한 전나무들이 거무스름하게 보여 슈바르츠발트(검은 숲)로 흔히 알려져 있다. 동쪽 지맥은 슈바벤쥐라 산맥과 더 북쪽의 프랑켄쥐라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곳의 일부에서는 울퉁불퉁한 바위투성이의 지질층이 뚜렷이 나타난다. 남부산악지방의 가장 동쪽 부분에는 보헤미아 숲과 슈바르츠발트 삼림지대가 있으며, 독일의 남쪽 국경에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한 바이에른알프스 산맥이 있다. 바이에른알프스에는 독일에서 가장 높은 추크슈피체 봉(2,962m)이 있다.

수계

독일 북동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뢰벨 근처에 있는 뮈리츠 ...
독일 중부 라인란트베스트팔렌 주에 있는 중세도시 카우프의 포도원을 ...
독일 지형은 북쪽 해안에서부터 동남부의 바이에른 고원과 알프스 산악지역으로 가면서 고도가 계속 높아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강이나 지류들이 북쪽으로 흐르며, 라인·엠스·베저·엘베 강 등을 거쳐 북해로 들어간다. 폴란드와의 국경 대부분을 이루는 오데르 강과 그 지류인 나이세 강은 북쪽으로 흘러 폴란드를 통과하여 발트 해로 들어간다. 바이에른 지방으로 흐르는 강들은 동쪽을 향해 흐르는 도나우 강과 합류한다.

독일에는 비교적 호수가 없는 편이다. 동북지방의 후빙기 저지대에 형성된 얕은 호수들에 물이 가장 많이 모여 있다. 이 지역의 가장 큰 천연호수는 빙하퇴적물이 쌓여 이루어진 바히젤에 있는 뮈리츠 호(114㎢)이다. 몇몇 작은 호수들이 니더작센 주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에 산재해 있고, 나머지는 오버바이에른의 가장 동남쪽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 호수들의 주변 경관은 두드러지게 아름답다. 독일 최대 호수로 최장 길이가 64km나 되는 콘스탄츠 호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도 걸쳐 있다.

토양

경작이 가능한 토지에서는 대부분 농작물을 재배하지만, 매우 비옥한 땅은 비교적 적다. 대규모의 곡물 생산이 부적절한 땅은 방목지로 이용되고 있다. 토양은 대부분 모래와 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부와 서부 일부지역은 황토, 최북단과 최남단은 점토와 습지로 덮여 있다.

기후

위도상 상당히 북쪽에 위치하고 영토의 대부분이 대서양에 있는 따뜻한 멕시코 만류의 영향을 받기에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대체로 온대기후의 혜택을 입고 있다. 혹독한 추위가 장기간 계속되는 경우는 드물며 강우량이 풍부하여 농작물 재배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었다. 그러나 서유럽 전역이 대체로 그런 것처럼 독일의 기후도 멕시코 만류에서 발생해 서쪽으로 흐르는 따뜻한 해양성기후가 유럽 동북부로부터 이동해오는 매우 찬 기단과 충돌할 때 갑작스런 날씨 변화를 보인다. 북해와 발트 해를 향한 해안선 때문에 해양성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독일 서북부와 저지대는 주로 습하며 알맞은 온도를 갖춘 대기의 영향을 받는데, 이 대기는 편서풍을 타고 북해로부터 내륙쪽으로 옮겨간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대기는 적당히 따뜻한 여름과 온난한 겨울 날씨를 누릴 수 있게 하지만 높은 습도, 긴 장마철, 서늘한 계절에 안개가 끼는 등의 나쁜 점도 동반한다. 유라시아 내륙을 향해 평야가 펼쳐지는 동쪽으로 갈수록 강수량은 감소하고, 가장 따뜻한 달과 가장 추운 달의 평균 기온차가 커진다. 중부와 서남부 지역의 구릉지대에서는 대륙성기후 때문에 한서의 차이가 보다 뚜렷해지고, 동남부 고원 및 대지 구역에서는 그 차이가 더 심하다. 산맥에서는 비가 많고 서늘한 기후를 보이며, 서쪽을 향한 비탈에서는 해양성 대기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내린다. 연평균 강수량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북독일평원에서는 510∼710㎜, 독일중앙고원에서는 710∼1,505㎜, 알프스 산악지역에서는 1,989㎜가 넘는다. 가장 추운 달인 1월의 평균기온은 북부 저지대에서는 -3∼1℃로 변화하며, 고원지역에서는 고도에 따라 -6℃까지 떨어진다. 7월 평균기온은 16∼19℃에 이르며 깊숙한 강 골짜기에서는 기온이 약간 더 상승한다.

동·식물

중부 유럽을 가로질러 대략 남북으로 자리잡은 형태인 독일의 동·식물군은 주변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빙하작용을 받은 저지대는 원래 오크나무·보리수나무·너도밤나무·자작나무 등의 혼합낙엽수림으로 주로 덮여 있었으나, 지금은 이 나무들 중 너도밤나무와 자작나무만이 북독일평야 일부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튀링겐 분지의 가장자리에 있을 뿐이며 오크나무는 별로 없다. 이들 원시림의 벌목 후, 독일은 체계적 재식림에 앞장섰으나, 대부분 젓나무·가문비나무·소나무 등을 비롯해 빨리 성장하는 침엽수를 심어 지금은 침엽수가 모든 종류의 낙엽수보다 수적으로 크게 우세하다. 과거 사회주의권이었던 독일 동부와 이웃 국가들에서 규제되지 않은 채 수십 년에 걸쳐 방출된 산업공해로 인해 삼림자원이 심하게 손상되었다.

사과·배·복숭아·버찌·서양자두·살구·마르벨르 등의 과실수와 호두나무·밤나무·개암나무가 널리 분포한다. 그러나 포도나무처럼 이 나무들도 서부와 서남부 지역에서 가장 무성하게 자란다. 딸기, 블루베리, 검은나무딸기, 넌출월귤, 알이 잘고 씨가 없는 건포도가 모든 지역의 삼림과 초원에 풍부하다.

산재한 부락이 있을 뿐인 거대한 삼림구역과 산악지형 때문에 인구가 밀집되고 고도로 발달된 이 나라에는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사슴·멧돼지·산토끼·꿩 등과 알프스 산맥지역의 샤무아·알프스아이벡 등 사냥용 동물이 대부분의 지역에 많이 있는데, 엄격한 사냥법으로 이 동물들을 보호하여 그 수를 유지하고 있다. 야생 곰과 늑대는 멸종되었으나 스라소니·말코손바닥사슴·살쾡이는 전후에 다시 모습을 보였다. 긴털족제비, 담비, 족제비, 해리, 오소리, 희귀한 수달과 살쾡이 등은 모두 토종이다. 흔히 볼 수 있는 파충류로는 도롱뇽·무족도마뱀 등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도마뱀과 뱀 등이 있는데, 이 중 독이 있는 것은 북살무사뿐이다. 흰황새·가마우지·부엉이·물수리 등은 거의 사멸되었으나 검독수리와 왜가리는 늘었다.

국민

민족

독일어를 쓰는 민족들은 민족적 기원이나 정치적·문화적 유산 면에서 서로 매우 이질적이다. 1871년 최초로 통일된 독일 국가인 독일제국이 수립되기 전까지는 여러 가지 방언을 가진 언어, 약간의 문화적 유사성, 혼란스러운 정치적 제휴 등으로 매우 느슨하게 결속된 형태에 불과했다. 이때에는 어떤 의미로든 독립국가의 지위 혹은 국민적 의식을 형성할 만한 동족간의 결속 정도는 아주 미약한 수준이어서 분명히 프랑스나 영국 같은 형태의 단일민족 국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늘날의 독일은 대체로 독일제국의 핵심이었던 로마 제국의 게르마니아와 카롤링거 왕조 하의 동프랑크 왕국의 영토 대부분에 걸쳐 있지만 민족적·언어적 하위구분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경계선을 초월하게 된다.

로마 시대와 중세 초기부터 6개의 주요 독일 민족집단이 역사적으로 각각의 지역을 고수해왔다. 이 6개의 민족에는 서남부의 바덴·슈바벤 지역의 알마만족, 남부의 바이에른족(티롤족이 그 지파에 속함), 중부의 오버프랑크족, 현재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니더프랑크족, 현재의 튀링겐·작센·작센안할트 주의 작센족, 유틀란트 해안 근처의 섬들과 니더작센 주의 프리지아인 등이 있다. 9세기에 서쪽의 식민지화가 시작되면서 생겨난 민족집단은 메클렌부르크족·오버작센족·브란덴부르크족·슐레지엔족·포메른족·프로이센족, 발트 해 독일인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소수민족 집단은 중세 초부터 독일 서부에 거주해온 유대인과 엘베 강 동쪽의 식민지화된 지역에 원래 살고 있던 슬라브인, 그리고 17세기 말엽 프랑스에서 개신교도들을 박해하여 독일 땅으로 들어오게 된 위그노들이다. 비교적 근대에 독일로 들어온 소수민족 집단으로는 폴란드인, 10월 혁명 후에 이민 온 러시아인, 동유럽에서 온 수많은 '난민',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발칸인 등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입된 이민 노동자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서독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는 와중에서 노동력 수요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터키, 발칸 반도,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출신의 이민 노동자가 대거 유입되었다. 독일 통일 전 동독에서도 공식적으로는 외국인 노동자의 영구 이민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표면상 교육 및 훈련 목적으로 약 9만 명의 노동자가 베트남·앙골라·쿠바·모잠비크 등지에서 입국했다. 현재 독일내의 이민 노동자는 독일 전체 인구의 약 6%를 점하면서 실질적인 비독일계 소수민족 집단을 이루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 내 그리고 동·서독간 독일계 민족의 이주사도 특기할 사실이다 . 전후 중유럽·동유럽 각국에서 1,200만 명이 넘는 독일계 민족이 추방되어 독일로 밀려들어왔으며, 연합국에 의해 동·서독으로 분단된 후 수년 동안 동독 주민 약 200만 명이 서독으로 이주해 서독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했다. 동독 주민의 서독 이주는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생기면서 중단되었지만,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990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동독 주민들이 더 잘 사는 서독 지역으로 대거 이주했다.

언어

독일의 방언 구분은 한때 각 방언들이 시사했던 민족적·문화적 구별을 위해 매우 중요했다. 대중교육과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방언간의 차이가 표준화·균일화되고, 독일에서의 국내 이동과 함께 잘 교육받고 사회적 지위 이동이 빠른 젊은 계층에서 '사투리 어조가 없는' 표준 독일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각 방언은 지금까지 계속 남아 있다. 현재 방언들은 농촌지역 인구와 도시의 토박이 거주자들 사이에서 사용된다.

표준 독일어는 기원으로 보아 일종의 혼종어로서, 중부와 남부 지역에서 사용되는 방언 요소에서 파생되었으면서 북부 독일 지역에서 우세한 방언들의 음성적 특성을 갖고 있다. 표준 독일어의 발음은 사실 사람들이 임의로 절충하여 쓰게 되면서 19세기 후반에는 보편적으로 통용되었다.

3가지 주요 방언 지역은 북독일평야, 독일중앙고원, 남부산악지방 등으로 분류되는 주요 지형학적 지역과 거의 동일하다. 각 지역의 방언은 북쪽으로부터 순서대로 저지 독일어, 중앙 독일어, 고지 독일어 등으로 알려져 있으며 각각 다시 수많은 지역 방언들로 세분된다.

종교

숫적으로 프로테스탄트가 로마 가톨릭교도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라인란트팔츠·바이에른 주에서는 로마 가톨릭이 우세한 반면 북부의 경우 대부분이 프로테스탄트이다. 이슬람교와 동방정교회 교도들도 약간 있다.

경제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다. 이미 독일 통일 전인 1980년대 후반에 서독의 국민총생산(GNP)은 세계 4위를 기록했으며, GNP의 1/3을 수출했다. 1990년 독일 통일은 단기적으로는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례없는 성장의 가능성을 가져다주었다. 독일 통일 후 진행된 동독 지역의 민영화는 시장경제 체제를 지향한 서독과 역동적이지 못한 중앙경제 체제를 고수한 동독 사이의 경제 발전의 격차와 불평등으로 인해 대량 실업 등 대혼란을 야기시켰다. 과거 동독 정권이 몰수했던 토지와 재산의 소유권 문제 해결은 1990년대 초엽에 시작되었다.

독일연방공화국 경제의 힘은 주로 제조업에서 나온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로 가장 크고, 전체 노동자의 약 1/3이 제조업에 종사한다. 주요 산업 중심지는 서부의 루르 계곡이다. 주요 생산품으로는 석유제품, 강철 주괴·주형 제품, 압연강철, 선철, 시멘트, 석탄·석유 가스, 화학약품·수지·플라스틱, 비료, 자동차·철도기관차·차량·선박, 가전제품, 합성·면·모 섬유와 직물, 기계류·수공구·섬유기계·농기구·건축장비·엘리베이터, 시계류·카메라·전자제품 등이 있다.

전체 산업체의 가운데 일부 광산·철강·석유가공·자동차 제조부문의 업체들만 고용 규모가 500명을 넘을 뿐이며, 절반 정도는 고용 규모가 50명에도 채 못 미치는 중소기업들이다. 노동자는 완전히 조직화되어 있으며, 노사간 및 노동조합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특별 법원도 있다. 자동화로 인해 직장을 잃게 된 노동자들을 위한 직업 재훈련 및 전직 프로그램은 선구적이다.

독일의 경제는 자유 시장경제 체제로서, 시장에서의 정부·기업가·노동자·금융의 역할에 대해 명백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정부는 주로 조정 기능을 하며, 국가 경제와 사회에 필수적이지만 이익을 내지 않는 상품 및 서비스 부문에만 직접적으로 관여하는데, 특히 수송·우편·전기통신·무연탄광업·농업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또한 정부는 세금과 기부금으로 재원을 충당해 광범위한 사회보장제도를 운영·관리하는데, 여기에는 건강보호, 실직·장애 보상, 출산·양육비 보조, 직업 재훈련, 연금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연방정부 외의 경제계획 기관으로는 독립적인 독일연방은행, 고용주협회, 노동조합 등이 있다. 경제정책위원회는 연방정부의 경제·재무 각료들, 각 주 정부의 대표 1명, 자치체 대표들 등으로 구성되며, 연방은행이 참여하는 가운데 통일된 금융정책을 마련한다. 비슷한 구성의 재정계획위원회는 연방·주·지방 등의 재정정책들을 조정한다. 정부 차원에서의 모든 주요수입원은 세금이다. 연방정부가 총수입의 반이 약간 안 되는 몫을 가지며, 그 나머지를 주 정부와 지방 정부들이 사용한다. 소득세·법인세·일반거래세·원유세·관세 등 5종류의 세금이 총세입의 4/5를 차지한다.

자원

독일 북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쾰른 시와 아헨 시 ...
비교적 천연자원이 적은 편이며, 따라서 주요 공업국가로서 원자재의 대부분을 수입해야만 한다. 매장량이 풍부한 광물로는 역청탄과 갈탄을 꼽을 수 있다. 역청탄이 가장 풍부한 곳은 루르 광산이며, 그에는 못 미치지만 자르·아헨·이벤뷔렌 탄광에서도 풍부히 얻을 수 있다. 갈탄 주산지는 쾰른 서부, 할레 동부, 라이프치히 남부 및 서남부, 그리고 브란덴부르크 주의 남부 루사티아이다. 이밖에 매장량이 많은 광물로는 하르츠 산지 주변에서 채굴되는 암염과 칼리가 있다. 금속광물 채굴은 서독 지역에서는 경제적 이유로 대부분 중단되었고, 동독 지역인 만스펠트에서 수세기에 걸쳐 이루어졌던 구리 채굴·가공과 과거 소련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졌던 오레 산맥의 우라늄 채굴·가공도 통일 이후에는 중단되었다. 독일 서북부에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소량 매장되어 있다.

용수(用水) 공급은 다른 모든 산업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항상 문제가 되고 있다. 라인 강과 같은 큰 강들이 으뜸가는 물 공급원이며, 산지의 저수지들이 이를 보충하는 구실을 한다. 예컨대, 하르츠 산지는 저 멀리 브레멘까지 뻗는 북독일평야의 대부분 지역에, 오레 산맥은 중부 산업지역에 물을 공급해준다.

농업

다른 모든 경제부문과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분단은 동·서독 지역의 농업 발전에 극적인 차이를 낳았다. 서독에서는 여전히 소규모 가족농장이 발전해, 1980년대 후반에 50ha가 넘는 경지를 가진 농가는 전체 농가의 약 5%에 지나지 않았고, 이들이 전체 경지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3%에 불과했다. 반면 원래 대토지가 많았던 동독 지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말 소련군의 점령 이후 토지개혁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대토지의 분할 또는 국영농장 편입이 이루어졌다. 소농도 1952∼60년 강력한 정치적 압력하에 사실상 모두 집단농장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농업 생산이 점차 대단위 전문 국영·집단 농장으로 집중된 결과 독일 통일 전인 1980년대 중반 무렵 국영농장과 집단농장의 평균 경작지는 무려 4,571ha에 이르렀다. 농업 노동자가 줄어들었음에도 동독은 이러한 대규모 경작지와 현대적 농기구,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생산량을 늘릴 수 있었다. 이러한 동독 지역의 대규모 기업농과 서독 지역의 소규모 가족농 구조의 조화는 통일 이후 독일 농업의 앞길에 놓인 난제이다.

비옥한 지역에서는 주로 밀·보리·옥수수·사탕무 등을 재배하고, 북독일평야와 독일중앙고원의 척박한 토양에서는 전통적으로 호밀·귀리·감자, 그리고 사료용 비트를 재배한다. 농업 기술의 발전은 농작물의 지역별 분포 양상을 바꾸어놓았다. 예전에는 독일중앙고원 북부 가장자리의 황토 지대처럼 비옥한 토양에서만 경작되었던 사탕무를 지금은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그 한 예이다. 화학 비료가 보급되면서 기계 경작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모래가 많은 토양이 성가를 크게 높였다. 예컨대, 북독일평야에서 감자 대신 사료용 옥수수가 널리 재배되고 있다. 지역적 측면에서 경지는 일반적으로 옥수수 등의 곡물 재배지와 영구 목초지로 대별되는데, 둘 다 가축 사육의 기반이 된다.

낙농업은 과거에는 기후가 온화한 북부 해안 저지대와 알프스 산기슭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소규모 농장이 주류를 이루는 전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다. 가축 사육은 추운 겨울 때문에 보통 축사를 이용한다. 동독에서는 사료를 구하기가 쉽고 도시 시장에 인접한 경지에 위치한 대규모 농장들에서 우유를 집중적으로 생산했다. 닭, 돼지, 식육용 송아지 등의 사육은 동·서독을 막론하고 경지와 분리되면서 갈수록 대단위 사육장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농산물 특산지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서독 지역의 도시 근교 농업이다. 이곳에서는 과일·야채·화훼 등이 생산된다. 따뜻한 서남부 저지는 담배와 종자 수수 재배에 알맞고, 함부르크 남쪽의 엘베 습지와 베를린 남쪽의 슈프레발트 습지처럼 야채를 재배하기에도 좋다. 독일 남부는 풍부한 과일 생산지이다. 그 밖의 주요 농산물 특산지로는 함부르크 남쪽 엘베 강변의 '알테스란트', 포츠담 근처 하벨 호 지역과 할레 지역 등이 있다. 드레스덴 근처의 엘베 강 골짜기 언덕 경사면에서도 포도주용 포도가 일부 생산되지만 포도원은 주로 서부, 특히 라인·모젤·마인·네카어 강의 골짜기와 그 근처에 있다.

산업

독일의 주요 에너지원은 석유이다. 원유의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국내 생산은 소량에 머문다. 항공·선박·철도를 통한 석유제품 수입량도 상당히 많다. 1950년대 중반까지만 특히 함부르크 해안이 정유업으로 이름을 높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 경제의 괄목할 만한 발전은 특히 바덴뷔르템베르크(아우디사, 다임러벤츠사), 니더작센( 폴크스바겐사), 헤센( 오펠사),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포드사, 오펠사), 바이에른(BMW), 자를란트(포드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동독에서 생산되었던 공해가 심한 트라반트·바르트부르크 자동차의 생산은 중단되었으며, 폴크스바겐사·오펠사·다임러벤츠사가 재빨리 진출해 그 자리를 차지했다 . 한때 독일의 주요 산업으로 손꼽혔던 조선은 크게 쇠퇴했다.

독일은 이미 19세기 말에 전기·전자 장비 제조업 강국이 되었다 . 한때 그 중심지는 지멘스사, 아에게사(AEG), 텔레푼켄사, 오스람사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의 본거지였던 베를린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이들 기업의 생산 기지가 남부의 뉘른베르크-에를랑겐, 뮌헨, 슈투트가르트 등지로 옮아갔다. 여기서 생산되는 제품은 독일을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굴지의 전기·전자 제품 수출국으로 만들었다. 동독 지역에서도 동베를린을 중심으로 전기·전자 제품의 생산이 계속되고 있지만, 드레스덴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동독은 컴퓨터 제어 로봇과 같은 첨단 장비를 사회주의 국가들에 공급한 주요 수출국이었지만, 독일 통일 당시 대부분의 제조 시설은 이미 낙후되어 있었다.

독일은 합성염료의 발견 등으로 19세기 말에 화학제품 강국이 되었다.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석탄을 대신해 석유가 현재 독일 화학산업의 기본 원료로 쓰인다. 생산기지는 대부분 라인 강과 그 지류를 따라 형성되어 있는데, 특히 루트비히스하펜과 레버쿠젠 등지가 유명하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라인 강변에도 화학공장이 즐비하게 서 있으며, 루르 지역에도 생산기지가 형성되어 있다. 동독의 경우 대부분의 화학공장이 루사티아와 할레-라이프치히의 두 갈탄 광산에 있었지만, 공해 물질을 지나치게 많이 배출하는 일부 공장들이 통일 후 폐쇄되었다.

독일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섬유산업은 해외로부터 도전을 받아 지금까지 시련을 겪고는 있지만 여전히 주요 산업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주요 생산기지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묀헨글라트바흐·부퍼탈)과 남부에 있다. 통일 후 동독의 작센과 튀링겐에 있던 많은 섬유공장들이 폐쇄되었다.

독일은 특히 광학·정밀 산업에 강하다. 독일 통일과 더불어 서독의 차이스사와 그 제휴사인 유리제조 업체 쇼트사가 예나의 모기업을 인수함으로써 모기업의 생산활동이 감축된 규모로나마 지속되고 있다.

금융

독일의 은행 체계는 중앙은행과 이를 보완하는 민간 상업은행들로 이루어져 있다. 독일 금융의 중추 기관은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 있는 독일중앙은행으로서, 통화를 발행하고 통화의 유통을 감독한다. 정부가 재정 조달을 위해 인쇄기로 통화를 마구 찍어내는 바람에 일어난 1922∼23년 인플레이션의 재발을 막기 위해 설립된 독일중앙은행의 최대 특징은 정부의 통제로부터 독립된 기구라는 데 있다. 서독을 유럽의 금융 강국으로 만든 공로도 치밀한 여신 통제 정책과 확고한 마르크화 환율 정책을 견지한 독일중앙은행에 있다. 독일중앙은행은 1991년 연방정부의 입장과는 상반되게 동독 지역에 대한 정부의 추가 지원금은 차입금이 아닌 세금 인상을 통해 조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을 꺾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독립성을 보여주었다. 각 주에서는 주 중앙은행이 독일중앙은행을 대표한다.

독일의 민간 상업은행은 수백 개에 이르며, 그 중에서도 도이치은행·드레스드너은행·코메르츠은행이 '3대 은행'으로 꼽힌다. 이들 은행의 본사 고층 건물은 프랑크푸르트의 스카이라인을 바꾸어놓았다. 민간 은행들은 통상적인 은행 업무 외에도 사기업의 발전을 위한 자금을 제공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이 까닭에 산업 금융의 조달이라는 측면에서 프랑크푸르트·뒤셀도르프 및 기타 도시의 증권거래소가 미치는 영향력도 다른 나라의 경우보다 그만큼 떨어진다.

무역

일찍이 서독은 1952년에 무역흑자를 달성했고, 무역수지 면에서 1986년에 미국을, 독일 통일 직전인 1989년에는 일본을 따라잡았다. 그러나 독일 통일 후인 1991년 무역흑자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공산품 수출 물량이 동독 지역의 신규 수요를 충당하는 데 돌려짐으로써 불가피하게 수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독일의 주요 무역 상대국은 유럽공동체(EC) 회원국들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및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미국·일본 등이다. 상대적으로 경화 부족에 허덕이는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수출은 줄어들고 있다. 주요 수출 품목은 각종 기계류와 자동차, 전기·전자 장비, 화학제품, 그리고 포도주·식료품 등이다. 수입 품목도 이와 매우 유사하지만 산업용 원료 및 반제품이 추가된다. 동독의 경우 사회주의 국가들에 선진 산업장비, 전자제품·선박·철도차량을 전문적으로 수출했다. 이들 수출품의 결제 수단은 루블화였고, 이를 통해 얻은 루블화로 식품·석유·원료·반제품을 수입했다. 그러나 옛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경제 통합 이후 사실상 경화로 수출 대금을 지불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으므로 동독의 산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동독은 서독과도 폭넓게 무역을 하는 한편으로 서독의 중재로 EC 회원국들과도 활발히 교역을 해 'EC 명예회원국'으로 불렸지만, 이러한 수출의 대부분은 단지 경화를 얻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통일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소비에트 경제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다른 동구권 국가들과는 달리 동독은 1990년 통일과 더불어 통일국가 독일의 일부로서 EC 정회원국으로서의 이익을 자동적으로 얻게 되었다.

운송

유럽 각지를 이어주는 교차점에 위치한 주요 공업국으로서 운송체계가 광범위하게 잘 갖추어져 있다. 연방 철도망이 몇 개 주요 노선으로 구축되어 있으며 주요 도시 사이를 초고속으로 달린다. 자동차 도로망의 포장률은 거의 90%에 이르며, 그 중 약 3%가 제한접근 고속도로( 아우토반)이다. 강들과 운하를 비롯한 내륙 수로의 총길이는 6,650km를 넘는데, 궁극적으로 발트 해, 북해, 흑해까지 연결되도록 설계되었다. 주요 항구는 함부르크·브레머하펜·뤼베크·로스토크에 있으며, 베를린·본-쾰른·뮌헨·뒤셀도르프·함부르크·라이프치히에 주요 공항이 있다.

정치·사회

연방 정부·의회

정부의 구조와 권한은 기본법(Grundgesetz)에서 나온다. 이 법은 서독 지역에 진주한 서방 점령국들의 군사 정부가 독일연방공화국을 세우는 것을 공식 승인한 후, 지방 의회들이 연방 결성에 동의하여 1949년 5월 23일 서명·공포되었다 . 완전한 주권의 확정은 1955년 5월 5일에 이루어졌다. 기본법의 23조는 동독 지역의 궁극적 합병과 통일 독일의 회복을 규정했는데, 1990년 10월 3일 통일이 실현되었다.

국가의 공식 수반은 대통령이며 임기는 5년이다. 대통령은 연방 하원의원 및 같은 수의 주 의회 의원들로 구성된 연방 특별 회의에 의해 선출된다. 대통령은 연방 총리 및 총리가 선임한 내각을 임명하는데, 총리의 권고를 받아 내각을 해산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연방 총리나 연방 하원의원을 해임하거나 연방 의회(하원)를 해산시킬 수 없다. 집권 정부의 수반은 총리이며, 대통령이 지명하면 연방 하원의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선출된다. 총리에게는 상당한 독립적 권한이 부여되며, 정부 정책을 주도한다. 총리는 연방 하원 과반수 찬성으로 그의 승계자 선출이 확실시되어야만 역시 연방 하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해임될 수 있다. 바이마르공화국 시대의 불안정을 피하기 위한 보호장치로 시행된 이 '건설적인 불신임투표' 때문에 총리나 그의 정부가 물러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각료의 수는 일정하지 않다. 대부분 연방 하원의원이며, 집권 여당 또는 집권에 참여한 연립 정당들로부터 그 구성 비율에 따라 선임된다. 하지만 총리는 특정한 기술분야에서 정당과 무관한 사람을 지명할 수도 있다. 내각 부처에는 외교정책, 재무, 국방, 내무, 법무, 통상, 체신(우체국·전화·전보·일부 방송업무), 청소년·가정·여성·보건, 경제협력, 교육·과학, 노동·사회문제, 지역 계획·건축·도시개발 등이 있다.

연방 하원( 분데스타크)은 독일 정치 체제의 초석이다. 통일 독일의 연방 하원은 1990년 12월 2일에 실시된 총선에서 선출된 연방 하원의원 662명으로 출범했으며, 의원수가 약간 변동될 수 있다. 연방 하원의원은 4년마다 열리는 총선이나 특별 중간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이때 유권자들은 지역구 의원을 직접 선출할 뿐만 아니라, 지지 정당에 표를 던지는 방식으로 비례대표제 의원도 선출한다. 이는 연방 하원의 교섭단체를 주요 정당을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한편, 국가·주·정당, 그리고 일반 유권자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후자의 기능으로 비례대표제로 진출한 연방 하원의원은 지역선거구 법령에 따른 엄격한 지역 대표제 특유의 지방색 경향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작용한다. 연방 하원의 권한은 연방 상원( 분데스라트)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연방 상원에서 각 주는 자신의 권리와 특전을 보호하기 위해 권한을 행사한다. 연방 상원은 크기와 인구에 따라 각 주 정부가 지명하는 3∼5명의 의원들로 구성된다. 예컨대 신설 주인 베를린 주의 경우 4명의 상원의원을 지명해 파견한다. 연방 상원의원은 자신의 출신 주 정부의 지침을 따라야만 한다. 모든 법률은 연방 하원에서 제정되지만, 특히 재정·행정 분야의 입법과 같이 각 주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거나 기본법에 영향을 미치는 법안의 경우에 한해서는 연방 상원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연방 상원은 연방 하원이 통과시킨 법안을 거부함으로써 제동을 걸 수는 있으나, 위와 같은 특정한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닐 경우 연방 하원은 다수결로 연방 상원의 표결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 대통령의 해외 체류 기간이 연장되거나 사임할 경우 상원의장이 그 권한을 대행할 수 있다.

지방선거들은 물론 4년마다 한 번씩 치러지는 총선과 주 선거에 대한 관심과 투표율은 대단히 높다. 국민들은 신문·텔레비전·라디오 등 대중매체들의 집중적 보도를 통해 정치적 쟁점들을 지속적으로 접하고, 정치적 사건들이 시시때때로 국민들 사이에 큰 관심사로 부각된다. 1970년에 선거권 취득 연령이 21세에서 18세로 낮아졌으며, 투표권 행사가 강제된 것은 아니지만 투표율이 대단히 높다. 연방 하원의 임기 동안에도 각 주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실시되는 각종 선거는 연방 정부에 대한 여론의 풍향계 역할을 한다.

주·시 정부

법집행과 교육 기능은 어디까지나 각 주의 고유 영역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16개 주의 공동 협의기구를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 정부 체제는 연방 정부의 그것과 유사하지만 꼭 같아야만 하는 아니다. 13개 주는 주 정부 수반과, 주 장관들로 구성된 내각, 그리고 독자적인 주 의회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함부르크·브레멘·베를린처럼 시가 곧 주인 곳에서는 시장이 주 정부 수반이다. 또 시 상원은 지방 의회의 역할을 하고 시 관료는 지방 장관의 성격을 갖는다.

연방·주 법원

독일의 사법제도는 주 법원이 모든 예심·상소 재판을 맡고 최종심은 연방 법원이 담당한다는 점에서 미국을 비롯한 다른 연방국가들과 다르다. 주 법원이 연방 법원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영역이 있기는 하지만, 연방 법원은 각 주 법원이 국법을 동일하게 적용하는지를 감독한다. 연방최고법원을 최고 법원으로 하며 민사·형사 소송을 관장하는 일반 법원 외에, 행정·노동·사회보장·조세 문제를 관할하는 4개의 전문 법원이 있다. 예를 들어 3심제인 행정 법원은 다른 전문 법원의 관할 영역이 아닌 한 모든 비헌법적 성격의 민사소송까지 관할한다.

모든 법원이 자신의 관할권 내에서 정부의 조치와 법률의 위헌성 여부를 검토할 수는 있으나, 위헌 선고는 오직 카를스루에에 있는 연방헌법재판소만이 내릴 수 있다. 어떤 법률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음을 발견한 법원은 반드시 소송 절차를 일시 정지시키고 연방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의 판단을 요청해야 한다. 중대한 형사소송의 경우에는 예심법원에 배심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6명의 심사원이 배석된다. 이들은 미리 정해진 명단에서 추첨에 의해 선택되는데, 전문 법관들과 함께 피의자의 범죄사실과 처벌에 관한 모든 문제를 결정한다. 이들은 형사재판 이외의 재판에 참여하기도 한다.

정당

1933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을 초래한 한 원인이기도 했던 정당 난립 현상은 서독 초창기 이래 점차 통합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군소 정당들은 보다 큰 정당과 제휴하거나, 유명무실하게 존재로서 수명을 유지하거나, 아예 사라져가고 있다. 현재 통일 독일에는 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정당은 사실상 기독교민주연합(기민당)과 사회민주당(사민당) 등 2대 정당이 있을 뿐이지만, 이 두 정당 모두 혼자 힘으로는 연방 하원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기가 쉽지 않다. 1966년 이래 소수정당들과 연합하지 않고 집권에 성공한 역대 독일 행정부는 없었다. 소수정당이라도 5%의 득표율만 얻으면 연방 하원이나 지방 의회에 당을 대표하는 의원을 진출시킬 수 있도록 하는 '5% 원칙'은 극좌·극우 정당을 배제하고 분리파의 형성을 막는 데 매우 효과적인 장치임이 현실 정치에서 입증되었다.

의석수는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소수정당으로는 기독교사회연합(기사당)· 자유민주당(자민당)·녹색당· 민주사회당(민사당)·연대90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녹색당은 1979년에 세계 최초의 환경 정당으로 출범한 지 20년 만인 1998년 총선에서 6.7%의 득표율을 기록한 데 이어 같은 해 10월 27일 사민당과 이른바 '적·록(赤綠) 연정'을 구성해 집권세력으로 부상했다.

군대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주권을 상실했다가 1955년 파리조약의 발효로 주권을 회복한 이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으로 있다. 독일은 연합군이 자국 내에 계속 주둔할 수 있도록 주도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연방군(분데스베르)이라는 통합방위군을 가짐으로써 서방 방위체제에 기여하고 있다. 연방군은 유럽 NATO군 병력 가운데 최대 규모로서 육군·해군·공군으로 나뉘며, '시민 방위군'이라는 구상에 따라 창설된 만큼 연방 하원을 통해 철저하게 민간 통제하에 놓여 있다. 장교와 사병은 민주주의 체제에서의 군대의 역할에 유념하도록 훈련을 받는다.

남자는 누구나 징집 대상이며 18세에 시작하여 45세에 군역의 의무가 끝난다. 의무 복무기간은 18개월이다. 기본법 제4조는 양심에 따라 군 복무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양심적인 징집 반대자로 인정된 사람은 군 복무를 대신해 20개월간 사회봉사를 해야 한다. 1990년 통일 후 양심적인 징집 반대자의 수가 그 전에 비해 거의 2배 늘어났다.

동독 인민군(폴크스아르메)은 통일과 더불어 연방군에 흡수되었고, 연방군 장교들이 최고 지휘관에 올라 그들이 지난날 적대 관계였던 NATO군에 동화되도록 감독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 및 서독과의 국경지대에 배치되었던 특수부대인 동독의 국경수비대는 공장 민병대와 더불어 무장해제된 후 해체되었다.

치안

전국적 규모의 연방 경찰군은 없으며, 치안은 주 고유의 영역이다. 각 주는 시 경찰대가 맡은 기능을 제외한 모든 기능을 담당하는 자체 경찰대를 갖고 있다. 연방 정부는 국가가 비상사태에 처할 때에는 주 경찰대는 물론 각 주가 비상사태를 대비해 훈련을 시키는 주 예비 경찰대에 동원령을 내릴 수 있다. 한편 연방 정부는 특히 각 주의 안보에 해가 되는 행위나 주의 경계를 넘어서는 범법행위 등을 수사한다. 범죄자와 범법행위를 소탕하는 기구로 연방범죄기구가 있다.

동독의 인민경찰은 통일 후 해체되었고 소속 경찰들은 새로 편입된 주들의 경찰대로 흡수되었다. 동독 주민들의 증오의 대상이었던 ' 슈타지'로 널리 알려진 국가보안부도 해체되었다. 이미 통일 전 대중봉기 때 슈타지 소속 건물들은 주민들의 습격을 받아 붕괴되고 보관 서류들도 서독으로 옮겨졌다.

교육

6∼18세의 어린이와 청소년은 무상 의무교육을 받는다. 교육행정은 각 주의 주요 권한에 속한다. 교과과정·필수과목·학습수준 등의 통일을 도모하기 위해 16개 주가 참여하는 상설 공동협의기구를 두고 있지만, 무엇을 우선 순위로 삼는가는 각 주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교과서와 부교재는 일반적으로 무료로 제공되며,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 대해서는 재정 지원 등 여러 가지 지원이 이루어진다.

독일어 '킨더가르텐'(Kindergarten)이 유치원을 일컫는 보편적인 용어로 정착할 만큼 현대 유아교육에 큰 영향을 끼친 독일의 취학 전 교육은 3세부터 가능하다. 6∼10세 어린이는 누구나 예외 없이 초등학교인 그룬트슐레(Grundschule)에 다닌다. 그룬트슐레를 마친 뒤에는 전통적으로 다음 세 과정으로 각자의 진로가 갈라진다. 첫째, 하우프트슐레(Hauptschule)로 진학해 약 15∼16세까지 계속 기초교육을 계속 받은 다음 직업학교인 베루프스슐레(Berufsschule)에서 시간제로 견습공 등 직업교육을 받는 과정이다. 노동시장의 요구에 부합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이 과정에 진학하는 학생은 그룬트슐레 졸업생의 절반 미만에 이른다. 둘째, 실업학교인 레알슐레(Realschule)에 진학해 상업·사무 교육을 받는 과정이다. 중급 수준의 기업·행정·사무 능력을 쌓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전문 직업학교인 파흐슐레(Fachschule)에 입학하는 자격을 취득하는 이 과정에 그룬트슐레 졸업생의 1/3 미만이 진학한다. 셋째, 김나지움(Gymnasium)에서 9년 동안 고전·현대언어·수학·자연과학 등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대학으로 진학하는 과정인데, 그룬트슐레 졸업생의 약 1/4이 이 과정에 선발된다. 한편, 이처럼 어린이들의 진로를 너무 일찍 결정짓고 한번 선택한 진로를 도중에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한 이와 같은 전통적인 과정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각 주마다 영국의 종합 중학교에 해당하는 소수의 게잠트슐레(Gesamtschule)를 운영하고 있다. 게잠트슐레에 다니는 학생들은 보다 자유롭게 자신에게 알맞은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특히 19∼20세기 초에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한 독일의 대학은 오늘날 학생수가 폭증하고 사회적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 전통적인 대학 구조의 변화라는 힘겨운 요구에 직면해 있다. 대학에서 원하는 기간 동안 학업을 계속하거나 원하는 대학으로 옮겨가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다.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독일은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꾸준히 대학을 증설하고 있다. 전통적인 대학과 동등한 수준의 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인문 대학을 세우는 한편, 공학·교육·예술 분야 단과대학과 학교들을 종합대학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기계공학·건축·디자인·예술·농학·경영학 등 어느 한 분야만을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고등기술학교인 파흐호흐슐레(Fachhochshule)와 같은 새로운 전문학교를 만들었다. 1368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대학인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공부하든 1976년에 설립된 베스트팔렌의 하겐대학교에서 공부하든 그에 따른 사회적 위신의 차이는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20세기 말 현재 97개가 넘는 종합대학교와 200개가 넘는 고등교육 기관들이 있다. 17세기에 폐지되었던 문학석사 학위가 부분적으로 부활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석사 학위는 없고 박사 학위만 수여된다.

보건·복지

세계 최고 수준의 매우 광범위하고 정교한 사회복지 제도를 자랑한다. 독일은 일찍이 1880년대에 의료·사고 보험, 노동자 수당·연금, 광부 보험 등을 포괄하는 사회보장법을 마련하기 시작해 이 분야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이후 독일의 사회보장법은 다른 국가들이 사회보장 제도를 마련하는 데 본보기가 되었다. 수입이 일정한 수준 이하인 모든 노동자는 반드시 의료·퇴직 보험에 들도록 강제된다. 인구의 약 90%가 가입되어 있는 의료보험의 경우, 의료비의 약 90%를 부담하는 까닭에 의료비 지출액이 서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많다. 의료 수준이 높고 농촌 지역에서도 의료 혜택을 잘 받을 수 있다. 보건·위생 상태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영아사망률은 낮고 평균수명은 남자 73세, 여자 79.5세이다.

거의 전 인구가 노인·장애·미망인·질병·모성·산재·실업 수당의 혜택을 받으며, 전쟁미망인·고아·농부와 같은 특수층에게는 특별 수당이 지급된다. 임금의 일부를 떼어내 실업보험 기금을 운영하며, 한 자녀 이상을 둔 가정에는 수당이 지급된다.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전시의 부상으로 인한 장애자에게는 추가로 공공수당이 지급된다.

언론

독일은 가히 신문·잡지의 나라이다. 주요 도시마다 지방 잡지들 외에 두 개 이상의 지방 일간지를 거느리고,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마을 일간지를 갖고 있을 정도이다. 기본법에 따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며, 수백 개에 이르는 신문과 수천 개에 이르는 잡지의 재정상태는 부러울 만큼 좋다. 전국지로는 〈쥐트도이체 차이퉁 Die Suddeutsche Zeitung〉(뮌헨), 〈벨트 Die Welt〉(함부르크·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프랑크푸르트), 〈슈투트가르터 차이퉁 Stuttgarter Zeitung〉(슈투트가르트), 〈베스트도이체 알게마이네 차이퉁 Westdeuche Allgemeine Zeitung〉(에센),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Frankfurter Rundschau〉 등 세계 각지로 보급되는 유력 일간지들과, 엄청나게 많은 독자를 거느리며 8개 지역판을 내는 〈빌트-차이퉁 Bild-Zeitung〉(함부르크)과 같은 타블로이드판 일간지가 있다. 많은 시사주간지들 가운데 〈슈피겔 Der Spiegel〉의 권위와 지위는 각별하다. 〈슈피겔〉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창간된 이래 일관되게 비판적이고 독립적인 관찰자이자 양심의 보루라는 편집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독일의 여론을 형성해 왔다.

텔레비전·라디오는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1980년 중반까지는 공영방송만 허용되다가 1986년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민영방송이 허용되면서, 뉴스·오락 등의 '기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영방송과 '부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영방송의 두 체제를 이루게 되었다. 공영방송에 대한 허가·통제는 연방 우편·통신 장관이 관장하며, 시청자·청취자들이 내는 요금으로 운영된다. 독일의 공영방송들은 정부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고 자유롭게 방송정책을 세우며 정부의 입장에 대해서도 곧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 때문에 정부가 공영방송의 방송정책권을 장악하려 했으나 번번이 정부의 패배로 결말이 나, 공영방송이 오늘날과 같은 높은 수준의 독립성을 갖게 되었다. 한편 동·서독 분단기에도 동독 주민들은 서독의 텔레비전·라디오 방송을 자유롭게 시청하고 청취함으로써 서독 사정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문화·예술

사순절 전야제에 등장한 목제 가면과 전통의상, 독일 남서부 ...
동·서독으로의 정치적 분단기에도 독일의 문화적 예술적 전통은 동질적이었다. 독일어권 국가들에서 작가나 화가·작곡가·극작가는 동독 여권을 갖고 있든 서독 여권을 갖고 있든 같은 독일인일 따름이었다. 문학·예술에서 '도이치'라는 형용사는 지금도 정치적 국경과 전혀 무관하다. 같은 독일 문화의 전통 속에 있으므로 이를테면 오스트리아인 구스타프 말러도 '독일' 작곡가이고, 스위스인 프리드리히 뒤렌마트도 '독일' 극작가인 것이다. 그러나 40년간의 분단으로 동·서독 두 지역의 문화생활에 어느 정도의 차이가 불가피하게 생겨났다. 두 지역 모두 독일 전통 문화의 길을 걸었지만,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영향을 보다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던 서독이 더 세계화되었다. 그러나 동독은 놀라울 정도로 전통 문화를 잘 보존하는 한편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분단기에 동·서독간에 음악 분야에서는 아무 차이가 없고 문학·연극에서는 약간 다른 반면 건축과 조형 분야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 것은 주목할 만하다.

독일문학의 전통은 8세기 이전에 시작되었다. 훗날까지 큰 영향을 미친 초기 설화문학에는 〈니벨룽겐의 노래 Nibelungenlied〉(1200∼10경)와 볼프람 폰 에셴바흐의 〈파르치팔 Parzival〉(1200∼10경)이 있다. 일반적으로 18세기의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를 독일문학의 전성기로 꼽는데,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요한 고트프리드 폰 헤르더, 프리드리히 실러 등이 이 시기의 주요 작가들이다. 그후의 작가들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아르투르 슈니츨러,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 베르톨트 브레히트, 헤르만 헤세 등도 세계 문학에 심오한 영향을 끼쳤다. 분단 독일에서의 전후문학 역시 중요한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로 하인리히 뵐, 귄터 그라스, 야코프 렌츠, 우베 욘존, 지그프리트 렌츠, 안나 제거스, 아르놀트 츠바이크, 크리스타 볼프 등이 있다.

또한 독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와 작곡가들도 많이 배출했다. 바흐 가문, 루트비히 판 베토벤, 요하네스 브람스, 리하르트 바그너 등이 이들에 속한다. 주목할 만한 현대 작곡가로는 한스 베르너 헨체, 고트프리트 폰 아이넴,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 등이 있다. 베를린 교향악단, 뮌헨 교향악단, 밤베르크 교향관현악단, 슈투트가르트 실내관현악단 등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단이다. 라이프치히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 라이프치히에 있는 장크트토마스 합창단, 테너 성악가 페터 슈라이어 등의 음악적 명성은 세계적으로 높다.

공연예술에서는 뷔르템베르크 주립극장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세계적으로 돋보이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 발레단은 남아프리카 태생의 존 크랑코의 지도하에 세계적인 명망을 얻었으며, 1973년 그가 죽은 후에도 마르시아 하이데의 지도하에서 명성은 계속되었다. 안무가 피나 바우슈의 〈춤의 무대 Tanztheater〉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무용이 부퍼탈에서 시작되었고, 함부르크 발레단은 세계 발레의 활기찬 구심점이 되고 있다.

뛰어난 시각예술의 전통은 15, 16세기의 알브레히트 뒤러, 대(大)루카스 크라나흐, 홀바인가(家) 등으로부터 막스 베크만, 게오르크 그로츠 등의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과 요제프 보이스, 안젤름 키퍼 등으로 이어진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오늘날의 독일 건축의 많은 부분은 20세기 초반에 시작된 바우하우스 학파의 창작품으로서, 발터 그로피우스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같은 인물들과 관련되어 있다. 장식성에 대한 강한 경멸은 물론 스타일과 기능의 엄밀한 조화와 소재의 내적 미를 고집하는 바우하우스의 이념은 현대 도시 건축에서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독일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바이마르 공화국(1919∼33) 시대에 황금기를 맞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동·서독이 자신의 장기를 영화에서 찾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20∼30년대 초에 독일 영화를 이끌었던 프리츠 랑, 에른스트 루비치, F. W. 무르나우, G. W. 파프스트 등의 거장들에 이어, 제3제국(나치 독일) 치하에서 깊이 빨려 들어간 진부함의 수렁에서 독일 영화를 구해낼 만한 거장이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으며, 1917∼45년에 독일 영화의 제작 중심지로서 포츠담 교외의 바벨스베르크에 있었던 거대한 영화제작소인 우니베르줌영화사(UFA)도 동·서독의 분단으로 동독에 떨어졌다. 마침내 1960년대 후반에 알렉산더 클루게, 폴커 슐뢴도르프, 마르가레테 폰 트로타, 베르너 헤르초크, 빔 벤더스와 같은 젊은 영화 감독·제작자들이 나타나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함으로써 독일에 영화 강국이라는 명성을 다시 안겨주기 시작했다. 독일의 겉과 속을 조망하는 열기를 낳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비상한 작품 세계는 그가 1982년 요절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한편 마르가레테 폰 트로타, 마리안네 로젠바움, 헬마 잔더스 브람스 등의 여성 감독이 현대 독일 영화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다.

박물관은 약 2,000개에 이르며, 전시품들은 회화·조각이나 고고학·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소장품에서부터 슈투트가르트의 카드놀이 박물관에 있는 카드와 같은 소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주목할 만한 박물관·미술관으로는 베를린의 프로이센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것으로 슈프레 강의 '박물관 섬'에 있으며 엄청난 양의 고전·중동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페르가몬 박물관을 비롯해, 알테스('옛') 박물관, 노이에스('새') 박물관, 국립미술관, 보데 박물관 등이 있다. 또한 드레스덴의 츠빙거 박물관 및 고트프리트 젬퍼가 설립한 회화미술관, 뮌헨의 알테('옛') 피나코테크, 노이에('새') 피나코테크 및 독일박물관, 뉘른베르크의 게르만 국립박물관, 마인츠의 로마게르만 중앙박물관,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의 젠켄베르크 자연과학박물관, 슈투트가르트의 주립 화랑이 유명하다.

독일에서 레크리에이션은 하나의 산업을 이룰 정도는 아니더라도 독일인의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전통적인 종교 축제일과 공휴일의 휴무, 40시간이 채 안되는 주당 평균 노동시간, 3∼6주의 유급 휴가 등으로 독일인들은 서유럽의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많은 여가를 누린다. 레크리에이션의 형태에서는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이 공존하는 특징을 보인다. 놀랍게도 고도로 공업화된 국가임에도 로마 가톨릭교 지역과 개신교 지역을 가릴 것 없이 옛 축제나 풍습이 지금도 광범위하게 남아 있다. 남부지역의 '파싱'과 라인란트의 '카르네발'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부활절·성탄절·오순절(모두 국가공휴일임)과 로마 가톨릭교 지역의 성체성혈대축일·성모승천대축일 등의 종교 축제일 외에도, 지역마다 포도주 축제, 맥주 축제, 추수 축제, 사냥 축제와 같은 오랜 역사를 지닌 민속제가 널리 행해진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매년 9월에 열리는 뮌헨의 '10월 축제'이다. 이처럼 전통에 충실한 한편으로 독일인들은 보다 현대적인 레크리에이션과 오락, 휴식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고, 여행이 으뜸가는 소일거리로 등장했다. 적어도 연중 한 번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성인의 절반을 넘고, 연중 몇 차례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아주 많다. 노인들은 공휴일 여행 외에도 흔히 휴식과 건강 회복을 위해 온천으로 요양을 떠난다. 여행의 즐거움을 위해 해외로 떠나는 독일인들도 나날이 늘고 있다. 서독 지역에서는 여가 활동비가 가구당 소득의 약 1/5에 이르며, 정부와 학교·교회·기업이 여가 선용에 필요한 시설을 제공하고 자극을 준다. 현재 여가 활동은 교육·직업훈련·주택·건강보험·장애보험·연금과 마찬가지로 사회복지 정책의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

한국과 독일의 공식 외교관계는 1883년 11월 26일 한·독수호조약 13관(款)과 선후속약(善後續約)의 체결로 시작되었다. 1880년대 초반은 조선이 쇄국정책과 금압정책에서 탈피해 서구 열강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시기로, 독일은 정치적인 이해보다는 경제적인 필요에 따라 조선과 유대관계를 쌓아나갔다. 이 무렵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이홍장의 추천으로 해관(海關) 및 외교 고문으로 등용되었고, 1896년 4월에는 독일무역상사 세창양행이 금성·당현의 광산채굴권을 허가받았으며, 1898년 9월에는 관립덕어학교(官立德語學校)가 설립되어 J. 볼리안이 교사로 초빙되었다. 이러한 한·독 관계의 결속을 확인하기 위해서 1898년 7월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친동생 하인리히 대공이 조선을 방문했는데, 그는 구한말의 외교사에 있어서 가장 큰 국빈이었다. 한·독수호조약 체결 이후 점차 발전한 한·독 관계는 을사보호조약(1905)으로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되고 독일공사관이 폐쇄되면서 공식적으로는 단절되었다. 그러나 비공식 교류는 계속 이어져 1927년 영친왕이 유럽 여행길에 힌덴부르크 원수를 접견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회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했고 적지 않은 한국 학생들이 유학차 독일로 건너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동·서 냉전은 독일과 한국 모두에게 민족 분단의 시련을 안겨주었다. 1948년 남·북한이 차례로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분단된 데 이어, 이듬해에는 독일도 이념이 서로 다른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으로 분단되었다. 1990년 10월 3일 독일의 통일이 선포되기 이전의 한·독 관계는 분단 국가가 가지는 국제 정치적인 조건과 제약 속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1949년 11월 동독과 북한이, 1955년 12월 서독과 남한이 각각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경제 및 기술협력에 관한 협정〉·〈한·독 경제 회담에 관한 의정서〉 등의 답변확정 과정에서 진전되어 온 서독과 한국의 우호관계는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독 방문으로 이어졌고, 1967년 3월에는 서독의 뤼브케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로나 그로부터 4개월이 조금 지난 7월 8일 중앙정보부가 흔히 '동백림(東白林) 사건'으로 불리는 이른바 ' 동베를린 거점 북한 대남공작단 사건'을 발표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어갔다. 이 사건의 처리를 둘러싸고 한국 정부의 안보 우선주의와 서독 정부의 인권 중시 태도가 충돌해 양국 사이에 상당한 긴장과 반목이 조성되었으며,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크게 악화되었다. 양국간에 의견차가 쉽사리 좁혀지지 않자 서독은 정경 분리의 원칙에 입각하여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냉담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1970년 2월 신태환 통일원 장관이 독일을 방문해 동·서독의 분단상과 통일 노력을 시찰한 데 이어 같은 해 5월 독일의 외무장관 쉘이 한국을 방문하여 〈한·독 문화협정〉과 〈부산직업학교 설립에 관한 약정서〉에 서명했다. 1972년 11월에는 〈한·독 비자면제협정〉과 〈한·독 재정원조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어 독일이 한국에 3,500만 마르크의 차관을 제공했다. 한편 남·북한간 외교전은 남·북한 국가 원수의 독일 방문에서도 나타나,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동독 방문(1984. 5. 29∼6. 2)에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이 각각 1986년, 1989년에 서독을 공식 방문했다.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이 참석해 50년 만의 여야간 정권교체를 축하했으며, 같은 해 9월 15일에는 로만 헤어초크 독일 대통령이 방한해 김대중 대통령과 한·독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관계가 '최상의 협력 관계'임을 확인하는 한편, 한국 정부의 개혁 추진과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독일의 지원과 협력을 다짐했다. 1996년 현재 독일의 대한수출은 72억 3,918만 달러, 수입은 47억 516만 달러이며, 1960년대 초반부터 취업차 건너간 광부·간호원을 비롯한 재독 교민과 체류자의 수는 1997년 현재 각각 17,970명과 12,671명이다.

한·독 관계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매우 이채롭다. 일찍이 초대 주독 명예영사를 지냈으며 홍콩에 상사를 설립하고 1884년 제물포에 세창양행을 설치한 E. 마이어는, 상사를 통하여 한국 물품을 수집해 1889년 함부르크 산업박람회에 전시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일반적인 이름이 된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분도회 총원장 N. 베버의 저서명이며, 같은 분도회 선교사로 1908∼29년 한국에 머물렀던 A. 에카르트는 〈한국어 문법 Koreanische Konversationsgrammatik〉·〈한국 미술사 Geschichte der koreanische Kunst〉·〈한국의 음악 Koreanische Musik〉 등을 펴내고 뮌헨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침으로써 독일 내 한국학 연구의 초석을 놓았다. 일제강점기에 독일은 비자 없이도 유학할 수 있는 나라였으므로 많은 한국 학생들이 독일에 체류하며 연구활동을 벌였다. 그들은 대개 자연과학·철학·예술 등을 전공했기 때문에 우리 문화나 역사를 본격적으로 소개할 수는 없었으나, 유학 기간 동안의 생활 속에서 한국 문화의 면면을 전해주었음은 충분히 짐작된다. 이의경의 경우는 특기할 만한데, 1928년 뮌헨대학교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이내 문필활동에 들어가 한국을 배경으로 한 다수의 작품들을 발표했으며, 만년에는 한학과 한국 문학을 강의하며 바우어 같은 우수한 동양학자들을 육성하기도 했다. 1946년 출판된 자전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Der Yalu Fliesst〉는 지금도 독일 교과서에 실려 있는 독일 문단의 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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