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 북촌댁 한옥의 공간은 순환한다.막힘 없이 통한다.
정심의 상태로 지어진 집을 오랜 기간 즐겁게 사용하다 보면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기품이 쌓인 상태이다. 집은 사람을 이롭게 하고 사람은 집을 아끼는 상호 존중과 애호가 쌓여 집안이 화목하고 융성해진 상태이다. 혹은 이런 상태에서만 느낄 수 있는,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애(靄靄)와 풍요의 상태이다.
순환 공간은 전체 구성에 잘 나타난다. 한옥의 실내 구성은 막히거나 일직선이 아니라 돌고 돈다. 술래잡기를 해보면 안다. 숨을 곳도 많고 도망칠 구멍도 많다. 순환성이다. 순환은 여러 형식으로 나타난다.
외부에서 창과 방을 지난다고 끝이 아니라 다시 외부로 나올 수 있다. 그랬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며 또 다시 외부로 나갈 수 있다. 각 방들은 크기와 위치가 조금씩 어긋나지만 창을 모두 열면 꼬챙이로 꿸 수 있는 일직선 축이 형성된다. 이 축은 곧 바람이 통하는 길이다. 순환이란 ‘통(通)’이다. 통은 자연현상 가운데 음양이 협조하고 정기가 유창하여 아름다움에 이른 상태로 정의된다. 한비는 말한다. “자연에서는 음양(=정기)이 작동하고 변화하여 만물을 만들어낸다. 날고 달리기에 나아가며, 아름답기에 좋고, 자라기에 기르며, 지혜롭기에 맑은 상태이다. 물을 뚫어 썩음을 막고 병을 쫓아 악을 차단한다.”
순환 공간은 한 마디로 집 안 내부적으로, 그리고 집 안과 집 밖 사이에 막힘이 없이 두루 통한다는 의미이다. 여름에 바람을 받아들이고 겨울에 햇빛을 받아들이는 열린 자연관이라는 의미이다. 이 방과 저 방 사이에 단절이 아닌 소통이 유지된다는 의미이다.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되 다양한 간접 소통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자연과 통하니 육체가 건강하고 사람과 통하니 정신과 마음이 건강하다. 집이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를 해준 셈이다. 집이 인간에게 병을 주고 인간의 마음을 해치는 콘크리트 아파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우월성이다.
출처-->[ 지식백과] 한국다운 리얼리즘의 정수 - 순환공간 ([한옥미학] 임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