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ror: INSERT INTO `kin_7_70109` (subject, seo_subject, content, page, description, og_image, time) VALUES ('저는 너무 힘듭니다. 살기가 싫습니다.', '%EC%A0%80%EB%8A%94+%EB%84%88%EB%AC%B4+%ED%9E%98%EB%93%AD%EB%8B%88%EB%8B%A4.+%EC%82%B4%EA%B8%B0%EA%B0%80+%EC%8B%AB%EC%8A%B5%EB%8B%88%EB%8B%A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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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6세의 남성입니다. 지금부터 저의 어두운 과거를 부끄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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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 하겠습니다. 저는 86년 11월에 경북 구미시에서 태어났고 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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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입니다. 92~93년 1년간 유치원 생활(한국영재학원 1년 수료)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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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고 93년 3월 초등학교를 입학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기부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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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1학년 1학기까지 성격이 거치신 아버지 밑(현재 건축업에 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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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사소한 잘못에도 많이 혼나고 맞고 자랐습니다. 그 때의 상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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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많이 다투셨습니다. 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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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3학년 이후로 덜하시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생활도 순탄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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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학교적응을 잘 못하여 운동장을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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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다녔으며 초교 2학년부터 교육이 가능한 특수반에도 놀러 갔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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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초교 2학년이 되고도 학교 부적응은 여전 했습니다.일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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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급우 몇 명에게 괴롭힘도 당했습니다. 이때도 운동장을 돌아다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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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저는 특수반에 들어갔습니다. 초교 3학년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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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때도 역시 특수반에 있었고 초교 4학년 때 1학기 까지만 특수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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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다니다가 나오고 운동장을 돌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저보다 한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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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과 놀았습니다. 그 중 초교 2학년의 여학생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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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전학을 온 한 급우에게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이를 견디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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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저는 늘 운동장을 돌아다녔고 그동안 어머니께서 수없이 교무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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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려 가셨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께서 용돈 몇 백 원을 주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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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특수반을 같이 다녔던 3학년 후배 한명에게 여러 번 갈취를 당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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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5학년 때는 체육시간 마다 운동장에 나가지 않고 교실에만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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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 있었습니다.6학년 때는5학년 후배 한명이 시비를 걸고 심심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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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 저를 때렸습니다. 결국 어느 날 제 같은 반 동급생 한명이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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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급식소에서 그 후배 놈에게 경고함으로써 해결 되었습니다.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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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몇몇 급우 여학생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같은 반 남자급우 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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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주먹다짐을 하였습니다.1999년 2월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 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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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1999년 3월 구미 모 중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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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수업도 잘 듣고 그나마 양호 했습니다. 하지만 교우관계는 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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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와 다를 바가 없이 여전히 소극적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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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초에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잠시나마 친했던 아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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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방(오락실)을 벗어난 곳에서 현금 670원을 폭행, 갈취를 당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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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아버지의 도움으로 그 놈이 다니는 중학교 교장에게 편지를 보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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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듬해 그놈은 중 2때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습니다. 불량써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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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가입해서 많은 못된 짓을 일삼더니 참 안되었습니다. 학교를 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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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 적응을 못한 저는 중1때 담임선생님을 자주 찾아뵙고 교무실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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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드나들었습니다. 중1 여름방학 끝나고 개학 후 어느 날 학교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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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마치고 집으로 하교하는 길에 작은 카센터 근처에서 자전거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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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중학교 중퇴생(당시 만 15세) 한명에게 협박을 받았고 제가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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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1,900원 중 1, 300원을 갈취 당했습니다. 그 일은 해결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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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요 그해 겨울 같은 반 동기생 한명이 장난을 쳤는데 제가 다른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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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가 장난을 친 것으로 오해를 하여 그 급우와 싸우게 되었고 그 급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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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쌍코피를 내었습니다. 그때 담임께서 싸움을 했던 두 사람을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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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실로 데리고 갔고 조용히 일단락을 시켰습니다. 그 후 저와 싸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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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급우의 다른 반 친구가 하굣길에 저를 기다린 후 저와 같이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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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저를 데려가서 학교를 한참 내려오더니 그 때 있었던 일을 묻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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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저의 복부를 두어 번 가격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따졌고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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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를 했습니다. 전 그 다음날 담임께 사실을 알렸고 저랑 싸웠던 급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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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친구를 불러서 그 동급생의 잘못을 지적하며 사태를 일단락 시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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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중2시절 초교 4학년 때 전학 왔고 저를 괴롭혔던 그 초교동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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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반 급우가 되었고 저를 특수반 출신이라고 놀렸고 심심할 때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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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 당시 중2 담임께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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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했고 그 해 학교 결석도 정말 많이 했습니다. 1주일에 한번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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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 두 번을 했습니다. 그 결과 중학교 전 학년 통틀어서 20여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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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습니다. 중2때 오후 5교시 어느 날 국어과 여교사가 같은 반 급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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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보는 앞에서 인간적인 모욕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중2때 여름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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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 날 방과 후 농구반수업시간에 맞춰 농구골대가 있는 운동장으로 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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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동급생 한명이 나에게 농구공을 던져달라고 했고 던져준 나는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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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그 동급생의 등에 던지게 되었고 그 동급생과 저는 마찰을 일으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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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화가 난 저는 그 길로 집으로 갔습니다. 중2때 야영을 불참 했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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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중3시절 저에게 해가 되는 동급생들을 두 손을 불교식으로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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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를 했습니다. 같은 해 여름 때 일부 동급생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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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짝친구로 만들기 위해 저희 집에서 놀게도 하고 라면도 끓여서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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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같은 해 행정실 시설계 직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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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 마찰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중학교에서도 늘 혼자였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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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제가 아는 몇몇 급우들에게 간단한 대화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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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년해 때 중2시절 인근 반에 전학을 왔던 한 동급생이 가끔씩 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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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혔습니다. 2002년 2월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2002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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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구미 시골의 모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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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복학생과 유급생들이 많았습니다. 나이도 저보다 1~2살가량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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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유급생 및 복학생들 상당수가 적응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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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고 1시절 고2 휴학생 유도부원 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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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 한명에게 인간적인 모욕을 받았습니다.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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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사들이나 학부모에게는 온갖 착한 척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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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이중적인 놈들이었습니다. 자신보다 후배이면 후배들 등쳐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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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려먹고 만날 때마다 인간적인 모욕을 수시로 줍니다. 나이 많은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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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부원들 몇 명이 고교 2학년 때 복학을 하면서 동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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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도 저에게 인간적인 모욕을 주었습니다. 심지어 고3때 졸업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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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을 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죽일 수 있으면 죽이고 싶은 놈들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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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어느 날 저보다 2살 많은 유급생이 제가 소속되어 있는 반 창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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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리면서 창문을 열라고 욕을 하였습니다. 창문을 열어줬더니 제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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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랑이 밑 부분을 만졌고 저는 얼른 선으로 뿌리쳤습니다. 좀 수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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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웠습니다. 고1시절 어느 날 중학교 전용 화장실에서 같은 반 급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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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변을 보고 교실(건물이 적어서 중학교 건물을 고2 때까지 사용)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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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던 중 저 보다 2살 많은 유급생 두 명이 중학생 전용 화장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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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하던 중 유급생 한명이 나와 같은 반 급우를 부르더니 \"너 왜 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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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실을 쓰냐? 혹시 담배 피우냐?\" 물었고 우리는 담배를 안 피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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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고 옆에 있던 유급생이 안 피웠으면 됐다고 보내라고 했는데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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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유급생이 너희들 앞으로 이화장실 쓰지 말고 큰 건물 화장실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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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하라고 하면서 저와 급우에게 고개를 들게 한 뒤 주먹으로 각각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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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씩 가격을 하였습니다. 전 멍이 조금 들었습니다. 고교생활 내내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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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실 시설계장과 부딪힐 때마다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고1때 그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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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대 1학년이었던 교무보조와 마찰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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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서 그 당시 교장 선생님께 그 여자의 이름과 나이, 직업을 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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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그게 죄가 되었는지 그 여자가 저를 스토커로 몰고 따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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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한 선배에게 소문을 내었고 그 선배가 너 그 교무보조 스토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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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으면서 추궁했고 일부 소문이 났었습니다. 제가 오해를 산 행동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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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지만 고등학교 들어와서도 학교적응을 제대로 못해서 교무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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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드나들 이 하는 게 화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여자를 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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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간 적도 없고 집이나 핸드폰 번호는 물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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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건 당분간은 선배들과의 관계는 더 악화 되었습니다.원래 선후배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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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가 좋지 않았지만……. 기본 적인 것도 조차도 물어볼 수 없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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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미스터리 입니다. 고교시절 선후배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도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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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습니다. 고1때 같은 반 여자급우가 저에게 물 한 컵 떠오라고 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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름을 시켰고 저는 거절했고 그 여자급우와 마찰이 빚었습니다. 고2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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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 첫날 같은 반 유급생 한명이 인간적인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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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저는 잠시 눈을 감고 잠시 누워 있었는데 그 때 야자감독(사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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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저를 인간적으로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 선생은 애들처럼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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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 좋아하고 문제아들 단속도 제대로 안하는 그런 인간이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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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전 너무나도 분하고 원통하여 엎드려서 울고 말았습니다. 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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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알게 된 아버지는 속이 상하셨는지 다음날 새벽에 양주를 드셨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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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저는 고교 때 매 학년 때마다 야자를 조금씩만 하다가 빠졌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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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어차피 혼자서도 공부도 못하고 대학도 갈 생각도 없고 동급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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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의 불화도 끊이지를 않고 하니 야자를 빠졌고 보충수업도 고교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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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빠졌습니다.  고2 때 상주에서 야영을 갔는데 숙소에서 고2 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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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집적거렸던 유급생 한명이 캔 음료하나 뺏어 먹더니 빵까지 뺏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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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었습니다.  저는 보복이 두려워서 마지못해 허락을 했고요-_-;;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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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같은 반 급우와 동급생 한명이 같이 먹자고 구슬리면서 빵을 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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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고2 때 어느 날 체육시간 유도를 배우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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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데 남자교생(유도선수 출신) 한명이 저를 반급우들 보는 앞에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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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적인 모욕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그 새끼를 죽여 버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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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 가을 때 체험학습을 가기 전 학교로 가는데 3학년 선배가 제 동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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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불러서 간식거리를 뺏어먹고 하다가 저의간식을 뺏어 먹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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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습니다. 저는 거부하는 행동을 했고 열 받은 그 새끼는 저에게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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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걸었고 그 때 실장이었던 여자급우가 원래 그런 놈이라 하고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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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락되었습니다. 화가 난 저는 다음날 담임께 다 알렸고 그놈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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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저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고2때 학교생활에 염증을 느낀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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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부모님의 설득으로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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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진정했지만 저를 붙잡으려는 선생님 한명이 없어서 섭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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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때 그 당시 실장이 장난을 심하게 치는 편이었는데 그 실장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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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씩 마찰을 빚었습니다. 고2~3 때 아버지께서 잘 아시는 건축일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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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의 아들과도 가끔씩 마찰을 빚었습니다. 고3 때 오상 고에서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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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전학을 온 놈과 같은 반이었는데 그놈이 장난을 심하게 치고 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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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인간적인 모욕을 주었습니다. 저는 저에게 해가되는 인물을 저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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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그 노트에서 해당자 이름과 온갖 저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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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운 글과 욕을 기록했습니다. 2005년 2월 고등학교 졸업 하루 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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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서 낮선 사람들의 꾐에 넘어가 그들의 공간에서 치성 제를 지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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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습니다. 세면실에서 찬물에 샤워를 하라고 시키더니 저에게 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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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입혔고 요상한 동작을 시키더니 절을 하게 했습니다. 선무라는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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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저에게 \"땅에 함부로 침을 뱉지마라 터줏 신이 있다고 말했고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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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버지에게 업보가 많고 그 업이 당신에게로 옮겨갈 수 있다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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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습니다.\" 1주일동안 누구에게도 말을 하면 치성 제를 지냈던 것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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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이 떨어지고 복이 달아난다고 말했습니다. 총 2번 방문을 했고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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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까지 선감인가? 선무인가? 저에게 쇳내교육을 시켰습니다.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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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뒤에야 부모님께 알렸고 부모님에 의해서 빠져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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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알고 보니 강증산을 교조로 하는 민속종교 D종파에서 분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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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인 것 같습니다.  2005년 2월 고등학교 졸업 이후 2005년 3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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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신체검사 영장발부 이대로 군대에 가도 되는지 걱정이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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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정신과 10일 가까이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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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도 성질이 다혈질적인 중년남자와 마찰을 빚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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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어느 날 병동 휴게실에서 저녁에 노래를 부르다가 눈물을 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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렀는데 그때 그 다혈질적인 중년남자가 시비를 걸고 달려들었는데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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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에 있던 환자들과 PK 및 간호사들이 말렸고 다시 잠잠 해졌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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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때 제 병명은 우울증, 대인기피증, 회피성 인격 장애였습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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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에 대구 지방 병무청에서 병사용 진단서를 정신과 군의관에게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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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 여러분이야 검사 끝에 7급(재신체검사)을 판정받고 동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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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전의 병사용 진단서를 들고 재검을 했고 다시 7급을 판정받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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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이상 구미의 중소병원에서 정신과 통원치료를 했습니다. 20~21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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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유독 눈물이 많았습니다. 2006년 3월 다시 같은 병무청에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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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담당 군의관에게 기존의 병사용 진단서와 최근에 치료를 받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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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용 진단서인가? 소견서인가?를 제출하고 5급(제2국민역)을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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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받았고 심사실에 들어가서 재판정을 받고 검사를 마쳤습니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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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구미중소병원에서 정신과치료를 2주 이상 더 받았습니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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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집에만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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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빨간 일기장\"을 구입하고 제 과거고교시절 저에게 해를 끼친 동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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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과 유급생, 선배들  어렸을 때부터 사이가 안 좋거나 싫어했던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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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 등을 저주하는 글을 남기고 리스트를 작성을 했습니다. 심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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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뜨거나 등 피가 날 경우에 그 책에다가 피를 발랐습니다.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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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에 작성했던 블랙리스트에도 피를 묻혔습니다. 지난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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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공공근로사업(2010.4.5~2010.6.18)\" 을 통해서 일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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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습니다만 반장과 마찰을 빚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두 번 이상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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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와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그때 저도 아버지도 술에 만취한 상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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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습니다. 저는 살아야 되는지 고민입니다. 저는 평생을 살면서 단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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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한명 사귀어 본 적이 없습니다. 사회생활의 어려움도 여전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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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의 안 좋았던 기억 상처투성이 되었던 지난과거가 또다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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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되기가 실고해서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왜 나 혼자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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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부딪치며 살아야 되나 이런 생각이 많이 납니다. 내가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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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게 아무 것도 없고 사는 게 지루하기만 합니다. 로또에 매달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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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에 천 원씩 투자를 해서 살 수 있는 희망을 노리고 있지만 잘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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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가 않았습니다. 고교 졸업 후 20세 때 알아보고 작년과 요 최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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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제를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최악의 힘든 경우가 왔을 때 죽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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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얼마나 편하게 죽을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마음을 터 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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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할 대상도 없고 저를 이해해 줄 대상도 없고 힘듭니다. 결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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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려고 합니다.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도 딸릴 터 저 하나도 추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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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사는 것도 힘들고 제 아버지처럼 자식에게 상처 주는 교육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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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되는 게 너무 싫기 때문에 아이를 안 낳고 싶습니다.  외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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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께서 지난 설 연휴 때 걸레질을 하시면서 \"사는 게 와이리. 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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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와 막내 외삼촌께서 말씀하신 \" 사는 것 가체가 지옥이다.\" 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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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이 자꾸 와 닿습니다. 해결책이 없을까요? ㅠ_ㅠ;; 즐겁게 살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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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행복하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내용이 요약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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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 안되어 있고 정리가 제대로 안되어 있고 그렇지만 서러웠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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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복받쳤고 감정에 쏠리다 보니 이렇게나마/이나마 글을 올리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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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습니다. 끝까지 봐 주셨으면 감사 하겠습니다.  저는 도움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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싶은데 도움받을 곳이 전혀 없습니다.  청소년 상담 센터도 청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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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대상이고...... ㅠ_ㅠ;;  오늘(8월 14일) 외할머니 생신을 앞당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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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온 식구들과 소고기를 먹고 노래방 가고 거기까지 분위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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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습니다. 그러나 술에 만취하신 아버지와 집에서 어머니께서 다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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셨습니다. 아버지가 저와 어머니가 돈을 벌로 일을 다니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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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집을 잡으셨던 모양입니다. 어머니가 제게 오셔서 하소연을 하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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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이래 가지고는 안된다.\" \"아버지가 우리모자를 트집잡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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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하더라 이렇게 살바에는 구덩이 파서 모두 죽자고 하더라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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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하셨습니다.\" 정말 희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 구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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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일가족 모두 세상과 작별을 고해야 되는 상황이 올 지도 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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겠습니다. 아니면 저 혼자 \"일본 후지산\"에 있는 \"주카이 숲\"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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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영원히 나오지 말까? 생각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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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될 만한 조언 좀 부탁 드립니다. 비난이나 비방 같은 것은 하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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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주요. ㅠ_ㅠ;; 저 또다시 상처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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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_70109_135437381', ' 저는 26세의 남성입니다. 지금부터 저의 어두운 과거를 부끄럽지만    공개 하겠습니다. 저는 86년 11월에 경북 구미시에서 태어났고 외아   들입니다. 92~93년 1년간 유치원 생활(한국영재학원 1년 수료)을 마   치고 93년 3월 초등학교를 입학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기부터 중   학교 1학년 1학기까지 성격이 거치신 아버지 밑(현재 건축업에 종사)   에서 사소한 잘못에도 많이 혼나고 맞고 자랐습니다. 그 때의 상처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많이 다투셨습니다. 중학   교 3학년 이후로 덜하시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생활도 순탄하지 않   았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학교적응을 잘 못하여 운동장을 많이   돌아 다녔으며 초교 2학년부터 교육이 가능한 특수반에도 놀러 갔습   니다. 초교 2학년이 되고도 학교 부적응은 여전 했습니다.일부 같은   반 급우 몇 명에게 괴롭힘도 당했습니다. 이때도 운동장을 돌아다녔고   결국 저는 특수반에 들어갔습니다. 초교 3학년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   고 이때도 역시 특수반에 있었고 초교 4학년 때 1학기 까지만 특수반   을 다니다가 나오고 운동장을 돌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저보다 한참   어린아이들과 놀았습니다. 그 중 초교 2학년의 여학생도 있었습니다.   이때 전학을 온 한 급우에게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이를 견디지 못   한 저는 늘 운동장을 돌아다녔고 그동안 어머니께서 수없이 교무실에   불려 가셨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께서 용돈 몇 백 원을 주셨   는데 특수반을 같이 다녔던 3학년 후배 한명에게 여러 번 갈취를 당했   습니다. 5학년 때는 체육시간 마다 운동장에 나가지 않고 교실에만 줄   곳 있었습니다.6학년 때는5학년 후배 한명이 시비를 걸고 심심할 때   마다 저를 때렸습니다. 결국 어느 날 제 같은 반 동급생 한명이 점심   시간 급식소에서 그 후배 놈에게 경고함으로써 해결 되었습니다. 같은   해 몇몇 급우 여학생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같은 반 남자급우 한명   과 주먹다짐을 하였습니다.1999년 2월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 했습   니다. 1999년 3월 구미 모 중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수업도 잘 듣고 그나마 양호 했습니다. 하지만 교우관계는 초등   학생 때와 다를 바가 없이 여전히 소극적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학   기 초에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잠시나마 친했던 아이에게   게임방(오락실)을 벗어난 곳에서 현금 670원을 폭행, 갈취를 당하였   고 아버지의 도움으로 그 놈이 다니는 중학교 교장에게 편지를 보내었   습니다. 이듬해 그놈은 중 2때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습니다. 불량써클   에 가입해서 많은 못된 짓을 일삼더니 참 안되었습니다. 학교를 좀처   럼 적응을 못한 저는 중1때 담임선생님을 자주 찾아뵙고 교무실을 자   주 드나들었습니다. 중1 여름방학 끝나고 개학 후 어느 날 학교 수업   을 마치고 집으로 하교하는 길에 작은 카센터 근처에서 자전거 타고   온 중학교 중퇴생(당시 만 15세) 한명에게 협박을 받았고 제가 가진   현금 1,900원 중 1, 300원을 갈취 당했습니다. 그 일은 해결된 사건   이고요 그해 겨울 같은 반 동기생 한명이 장난을 쳤는데 제가 다른 급   우가 장난을 친 것으로 오해를 하여 그 급우와 싸우게 되었고 그 급우   에게 쌍코피를 내었습니다. 그때 담임께서 싸움을 했던 두 사람을 교   무실로 데리고 갔고 조용히 일단락을 시켰습니다. 그 후 저와 싸웠던   그 급우의 다른 반 친구가 하굣길에 저를 기다린 후 저와 같이 가자고   해서 저를 데려가서 학교를 한참 내려오더니 그 때 있었던 일을 묻더   니 저의 복부를 두어 번 가격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따졌고 경   고를 했습니다. 전 그 다음날 담임께 사실을 알렸고 저랑 싸웠던 급우   의 친구를 불러서 그 동급생의 잘못을 지적하며 사태를 일단락 시켰습   니다. 중2시절 초교 4학년 때 전학 왔고 저를 괴롭혔던 그 초교동창이   같은 반 급우가 되었고 저를 특수반 출신이라고 놀렸고 심심할 때 마   다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 당시 중2 담임께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고   발을 했고 그 해 학교 결석도 정말 많이 했습니다. 1주일에 한번을 하   다가 두 번을 했습니다. 그 결과 중학교 전 학년 통틀어서 20여일이나   되었습니다. 중2때 오후 5교시 어느 날 국어과 여교사가 같은 반 급우   들이 보는 앞에서 인간적인 모욕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중2때 여름 어   느 날 방과 후 농구반수업시간에 맞춰 농구골대가 있는 운동장으로 갔   고 동급생 한명이 나에게 농구공을 던져달라고 했고 던져준 나는 실수   로 그 동급생의 등에 던지게 되었고 그 동급생과 저는 마찰을 일으켰   고 화가 난 저는 그 길로 집으로 갔습니다. 중2때 야영을 불참 했었습   니다. 중3시절 저에게 해가 되는 동급생들을 두 손을 불교식으로 모아   저주를 했습니다. 같은 해 여름 때 일부 동급생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단짝친구로 만들기 위해 저희 집에서 놀게도 하고 라면도 끓여서 대접   도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같은 해 행정실 시설계 직원과   두 차례 마찰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중학교에서도 늘 혼자였습니   다. 제가 아는 몇몇 급우들에게 간단한 대화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동년해 때 중2시절 인근 반에 전학을 왔던 한 동급생이 가끔씩 저를   괴롭혔습니다. 2002년 2월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2002년 3   월 구미 시골의 모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   에는 복학생과 유급생들이 많았습니다. 나이도 저보다 1~2살가량 많   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유급생 및 복학생들 상당수가 적응을 못해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고 1시절 고2 휴학생 유도부원 중 대표   격 한명에게 인간적인 모욕을 받았습니다.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유   도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사들이나 학부모에게는 온갖 착한 척 다   하는 이중적인 놈들이었습니다. 자신보다 후배이면 후배들 등쳐먹고   부려먹고 만날 때마다 인간적인 모욕을 수시로 줍니다. 나이 많은 유   도부원들 몇 명이 고교 2학년 때 복학을 하면서 동창이 되었습니다.   그 때도 저에게 인간적인 모욕을 주었습니다. 심지어 고3때 졸업사진   촬영을 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죽일 수 있으면 죽이고 싶은 놈들입니   다. 어느 날 저보다 2살 많은 유급생이 제가 소속되어 있는 반 창문을   두드리면서 창문을 열라고 욕을 하였습니다. 창문을 열어줬더니 제 겨   드랑이 밑 부분을 만졌고 저는 얼른 선으로 뿌리쳤습니다. 좀 수치스   러웠습니다. 고1시절 어느 날 중학교 전용 화장실에서 같은 반 급우와   소변을 보고 교실(건물이 적어서 중학교 건물을 고2 때까지 사용)로   돌아가던 중 저 보다 2살 많은 유급생 두 명이 중학생 전용 화장실로   향하던 중 유급생 한명이 나와 같은 반 급우를 부르더니 \"너 왜 이화   장실을 쓰냐? 혹시 담배 피우냐?\" 물었고 우리는 담배를 안 피운다고   말했고 옆에 있던 유급생이 안 피웠으면 됐다고 보내라고 했는데 말을   건 유급생이 너희들 앞으로 이화장실 쓰지 말고 큰 건물 화장실을 사   용하라고 하면서 저와 급우에게 고개를 들게 한 뒤 주먹으로 각각 한   대씩 가격을 하였습니다. 전 멍이 조금 들었습니다. 고교생활 내내 행   정실 시설계장과 부딪힐 때마다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고1때 그 당시   상주대 1학년이었던 교무보조와 마찰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여자가   궁금해서 그 당시 교장 선생님께 그 여자의 이름과 나이, 직업을 물었   습니다. 그게 죄가 되었는지 그 여자가 저를 스토커로 몰고 따지더니   2학년 한 선배에게 소문을 내었고 그 선배가 너 그 교무보조 스토커지   물으면서 추궁했고 일부 소문이 났었습니다. 제가 오해를 산 행동인지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들어와서도 학교적응을 제대로 못해서 교무실에   자주 드나들 이 하는 게 화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여자를 쫓   아간 적도 없고 집이나 핸드폰 번호는 물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찌   됐건 당분간은 선배들과의 관계는 더 악화 되었습니다.원래 선후배 관   계가 좋지 않았지만……. 기본 적인 것도 조차도 물어볼 수 없었던 것   인지 미스터리 입니다. 고교시절 선후배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도 못   했습니다. 고1때 같은 반 여자급우가 저에게 물 한 컵 떠오라고 심부   름을 시켰고 저는 거절했고 그 여자급우와 마찰이 빚었습니다. 고2때   야자 첫날 같은 반 유급생 한명이 인간적인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리   고 저는 잠시 눈을 감고 잠시 누워 있었는데 그 때 야자감독(사회과)   선생이 저를 인간적으로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 선생은 애들처럼 장난   이나 좋아하고 문제아들 단속도 제대로 안하는 그런 인간이었습니   다.  전 너무나도 분하고 원통하여 엎드려서 울고 말았습니다. 이 일   을 알게 된 아버지는 속이 상하셨는지 다음날 새벽에 양주를 드셨습니   다. 저는 고교 때 매 학년 때마다 야자를 조금씩만 하다가 빠졌습니   다. 어차피 혼자서도 공부도 못하고 대학도 갈 생각도 없고 동급생들   과의 불화도 끊이지를 않고 하니 야자를 빠졌고 보충수업도 고교시절   내내 빠졌습니다.  고2 때 상주에서 야영을 갔는데 숙소에서 고2 야자   첫날 집적거렸던 유급생 한명이 캔 음료하나 뺏어 먹더니 빵까지 뺏어   먹었습니다.  저는 보복이 두려워서 마지못해 허락을 했고요-_-;; 뒤   이어 같은 반 급우와 동급생 한명이 같이 먹자고 구슬리면서 빵을 뺏   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고2 때 어느 날 체육시간 유도를 배우는 시간   인데 남자교생(유도선수 출신) 한명이 저를 반급우들 보는 앞에서 인   간적인 모욕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그 새끼를 죽여 버리고 싶습니다.   고2 가을 때 체험학습을 가기 전 학교로 가는데 3학년 선배가 제 동급   생을 불러서 간식거리를 뺏어먹고 하다가 저의간식을 뺏어 먹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거부하는 행동을 했고 열 받은 그 새끼는 저에게 시비   를 걸었고 그 때 실장이었던 여자급우가 원래 그런 놈이라 하고 일이   일단락되었습니다. 화가 난 저는 다음날 담임께 다 알렸고 그놈이 더   이상 저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고2때 학교생활에 염증을 느낀 저는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부모님의 설득으로 겨   우 진정했지만 저를 붙잡으려는 선생님 한명이 없어서 섭섭했습니다.   고3때 그 당시 실장이 장난을 심하게 치는 편이었는데 그 실장과 한   번씩 마찰을 빚었습니다. 고2~3 때 아버지께서 잘 아시는 건축일 동   료의 아들과도 가끔씩 마찰을 빚었습니다. 고3 때 오상 고에서 2학년   때 전학을 온 놈과 같은 반이었는데 그놈이 장난을 심하게 치고 저에   게 인간적인 모욕을 주었습니다. 저는 저에게 해가되는 인물을 저주하   기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그 노트에서 해당자 이름과 온갖 저주스   러운 글과 욕을 기록했습니다. 2005년 2월 고등학교 졸업 하루 전 시   장에서 낮선 사람들의 꾐에 넘어가 그들의 공간에서 치성 제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세면실에서 찬물에 샤워를 하라고 시키더니 저에게 한복   을 입혔고 요상한 동작을 시키더니 절을 하게 했습니다. 선무라는 여   자가 저에게 \"땅에 함부로 침을 뱉지마라 터줏 신이 있다고 말했고 당   신 아버지에게 업보가 많고 그 업이 당신에게로 옮겨갈 수 있다고 말   했습니다.\" 1주일동안 누구에게도 말을 하면 치성 제를 지냈던 것 효   력이 떨어지고 복이 달아난다고 말했습니다. 총 2번 방문을 했고 첫날   밤 10까지 선감인가? 선무인가? 저에게 쇳내교육을 시켰습니다. 1주   일 뒤에야 부모님께 알렸고 부모님에 의해서 빠져나오게 되었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강증산을 교조로 하는 민속종교 D종파에서 분파 된   단체인 것 같습니다.  2005년 2월 고등학교 졸업 이후 2005년 3월경   군 신체검사 영장발부 이대로 군대에 가도 되는지 걱정이 되었고   2005년 3월 정신과 10일 가까이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 하였습니다.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도 성질이 다혈질적인 중년남자와 마찰을 빚었   습니다. 어느 날 병동 휴게실에서 저녁에 노래를 부르다가 눈물을 흘   렀는데 그때 그 다혈질적인 중년남자가 시비를 걸고 달려들었는데 주   변에 있던 환자들과 PK 및 간호사들이 말렸고 다시 잠잠 해졌습니   다. 그때 제 병명은 우울증, 대인기피증, 회피성 인격 장애였습니다. 4   월에 대구 지방 병무청에서 병사용 진단서를 정신과 군의관에게 보여   주고 여러분이야 검사 끝에 7급(재신체검사)을 판정받고 동년 10월?   그때 전의 병사용 진단서를 들고 재검을 했고 다시 7급을 판정받고 2   주 이상 구미의 중소병원에서 정신과 통원치료를 했습니다. 20~21살   때는 유독 눈물이 많았습니다. 2006년 3월 다시 같은 병무청에서 정   신과 담당 군의관에게 기존의 병사용 진단서와 최근에 치료를 받았던   병사용 진단서인가? 소견서인가?를 제출하고 5급(제2국민역)을 판정   을 받았고 심사실에 들어가서 재판정을 받고 검사를 마쳤습니다. 이후   같은 구미중소병원에서 정신과치료를 2주 이상 더 받았습니다. 이후   줄곧 집에만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 5   월 \"빨간 일기장\"을 구입하고 제 과거고교시절 저에게 해를 끼친 동창   들과 유급생, 선배들  어렸을 때부터 사이가 안 좋거나 싫어했던 고종   사촌 등을 저주하는 글을 남기고 리스트를 작성을 했습니다. 심지어   입술을 뜨거나 등 피가 날 경우에 그 책에다가 피를 발랐습니다. 전에   고교시절에 작성했던 블랙리스트에도 피를 묻혔습니다. 지난 2010년   2단계 \"공공근로사업(2010.4.5~2010.6.18)\" 을 통해서 일을 잠시   했습니다만 반장과 마찰을 빚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두 번 이상 아버   지와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그때 저도 아버지도 술에 만취한 상황이   었습니다. 저는 살아야 되는지 고민입니다. 저는 평생을 살면서 단짝   친구 한명 사귀어 본 적이 없습니다. 사회생활의 어려움도 여전하고요   학창시절의 안 좋았던 기억 상처투성이 되었던 지난과거가 또다시 되   풀이되기가 실고해서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왜 나 혼자서 이렇게   세상을 부딪치며 살아야 되나 이런 생각이 많이 납니다. 내가 할 수   있을게 아무 것도 없고 사는 게 지루하기만 합니다. 로또에 매달려서   1주일에 천 원씩 투자를 해서 살 수 있는 희망을 노리고 있지만 잘 되   지가 않았습니다. 고교 졸업 후 20세 때 알아보고 작년과 요 최근에   수면제를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최악의 힘든 경우가 왔을 때 죽게 되   면 얼마나 편하게 죽을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마음을 터 넣고   얘기를 할 대상도 없고 저를 이해해 줄 대상도 없고 힘듭니다. 결혼도   안하려고 합니다.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도 딸릴 터 저 하나도 추스르   고 사는 것도 힘들고 제 아버지처럼 자식에게 상처 주는 교육을 하는   아버지가 되는 게 너무 싫기 때문에 아이를 안 낳고 싶습니다.  외할   머니께서 지난 설 연휴 때 걸레질을 하시면서 \"사는 게 와이리. 지엽   노?\"와 막내 외삼촌께서 말씀하신 \" 사는 것 가체가 지옥이다.\" 이 말   씀이 자꾸 와 닿습니다. 해결책이 없을까요? ㅠ_ㅠ;; 즐겁게 살 수 있   고 행복하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내용이 요약도 제   대로 안되어 있고 정리가 제대로 안되어 있고 그렇지만 서러웠던 감정   이 복받쳤고 감정에 쏠리다 보니 이렇게나마/이나마 글을 올리게 되   었습니다. 끝까지 봐 주셨으면 감사 하겠습니다.  저는 도움을 받고   싶은데 도움받을 곳이 전혀 없습니다.  청소년 상담 센터도 청소년들   만 대상이고...... ㅠ_ㅠ;;  오늘(8월 14일) 외할머니 생신을 앞당겨서   식당에서 온 식구들과 소고기를 먹고 노래방 가고 거기까지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술에 만취하신 아버지와 집에서 어머니께서 다투   셨습니다. 아버지가 저와 어머니가 돈을 벌로 일을 다니지 않는다고   트집을 잡으셨던 모양입니다. 어머니가 제게 오셔서 하소연을 하셨습   니다. \"이래 가지고는 안된다.\" \"아버지가 우리모자를 트집잡는 말을   나에게 하더라 이렇게 살바에는 구덩이 파서 모두 죽자고 하더라 이렇   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말 희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 구덩이   를 파서 일가족 모두 세상과 작별을 고해야 되는 상황이 올 지도 모르   겠습니다. 아니면 저 혼자 \"일본 후지산\"에 있는 \"주카이 숲\"에 들어   가서 영원히 나오지 말까? 생각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도   움 될 만한 조언 좀 부탁 드립니다. 비난이나 비방 같은 것은 하지 말   아 주세요. ㅠ_ㅠ;; 저 또다시 상처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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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a too long for column 'content' at row 1 저는 너무 힘듭니다. 살기가 싫습니다.

저는 너무 힘듭니다. 살기가 싫습니다.

저는 너무 힘듭니다. 살기가 싫습니다.

작성일 2011.08.16댓글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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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6세의 남성입니다. 지금부터 저의 어두운 과거를 부끄럽지만

 

 공개 하겠습니다. 저는 86년 11월에 경북 구미시에서 태어났고 외아

 

들입니다. 92~93년 1년간 유치원 생활(한국영재학원 1년 수료)을 마

 

치고 93년 3월 초등학교를 입학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기부터 중

 

학교 1학년 1학기까지 성격이 거치신 아버지 밑(현재 건축업에 종사)

 

에서 사소한 잘못에도 많이 혼나고 맞고 자랐습니다. 그 때의 상처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많이 다투셨습니다. 중학

 

교 3학년 이후로 덜하시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생활도 순탄하지 않

 

았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학교적응을 잘 못하여 운동장을 많이

 

돌아 다녔으며 초교 2학년부터 교육이 가능한 특수반에도 놀러 갔습

 

니다. 초교 2학년이 되고도 학교 부적응은 여전 했습니다.일부 같은

 

반 급우 몇 명에게 괴롭힘도 당했습니다. 이때도 운동장을 돌아다녔고

 

결국 저는 특수반에 들어갔습니다. 초교 3학년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

 

고 이때도 역시 특수반에 있었고 초교 4학년 때 1학기 까지만 특수반

 

을 다니다가 나오고 운동장을 돌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저보다 한참

 

어린아이들과 놀았습니다. 그 중 초교 2학년의 여학생도 있었습니다.

 

이때 전학을 온 한 급우에게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이를 견디지 못

 

한 저는 늘 운동장을 돌아다녔고 그동안 어머니께서 수없이 교무실에

 

불려 가셨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께서 용돈 몇 백 원을 주셨

 

는데 특수반을 같이 다녔던 3학년 후배 한명에게 여러 번 갈취를 당했

 

습니다. 5학년 때는 체육시간 마다 운동장에 나가지 않고 교실에만 줄

 

곳 있었습니다.6학년 때는5학년 후배 한명이 시비를 걸고 심심할 때

 

마다 저를 때렸습니다. 결국 어느 날 제 같은 반 동급생 한명이 점심

 

시간 급식소에서 그 후배 놈에게 경고함으로써 해결 되었습니다. 같은

 

해 몇몇 급우 여학생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같은 반 남자급우 한명

 

과 주먹다짐을 하였습니다.1999년 2월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 했습

 

니다. 1999년 3월 구미 모 중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수업도 잘 듣고 그나마 양호 했습니다. 하지만 교우관계는 초등

 

학생 때와 다를 바가 없이 여전히 소극적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학

 

기 초에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잠시나마 친했던 아이에게

 

게임방(오락실)을 벗어난 곳에서 현금 670원을 폭행, 갈취를 당하였

 

고 아버지의 도움으로 그 놈이 다니는 중학교 교장에게 편지를 보내었

 

습니다. 이듬해 그놈은 중 2때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습니다. 불량써클

 

에 가입해서 많은 못된 짓을 일삼더니 참 안되었습니다. 학교를 좀처

 

럼 적응을 못한 저는 중1때 담임선생님을 자주 찾아뵙고 교무실을 자

 

주 드나들었습니다. 중1 여름방학 끝나고 개학 후 어느 날 학교 수업

 

을 마치고 집으로 하교하는 길에 작은 카센터 근처에서 자전거 타고

 

온 중학교 중퇴생(당시 만 15세) 한명에게 협박을 받았고 제가 가진

 

현금 1,900원 중 1, 300원을 갈취 당했습니다. 그 일은 해결된 사건

 

이고요 그해 겨울 같은 반 동기생 한명이 장난을 쳤는데 제가 다른 급

 

우가 장난을 친 것으로 오해를 하여 그 급우와 싸우게 되었고 그 급우

 

에게 쌍코피를 내었습니다. 그때 담임께서 싸움을 했던 두 사람을 교

 

무실로 데리고 갔고 조용히 일단락을 시켰습니다. 그 후 저와 싸웠던

 

그 급우의 다른 반 친구가 하굣길에 저를 기다린 후 저와 같이 가자고

 

해서 저를 데려가서 학교를 한참 내려오더니 그 때 있었던 일을 묻더

 

니 저의 복부를 두어 번 가격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따졌고 경

 

고를 했습니다. 전 그 다음날 담임께 사실을 알렸고 저랑 싸웠던 급우

 

의 친구를 불러서 그 동급생의 잘못을 지적하며 사태를 일단락 시켰습

 

니다. 중2시절 초교 4학년 때 전학 왔고 저를 괴롭혔던 그 초교동창이

 

같은 반 급우가 되었고 저를 특수반 출신이라고 놀렸고 심심할 때 마

 

다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 당시 중2 담임께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고

 

발을 했고 그 해 학교 결석도 정말 많이 했습니다. 1주일에 한번을 하

 

다가 두 번을 했습니다. 그 결과 중학교 전 학년 통틀어서 20여일이나

 

되었습니다. 중2때 오후 5교시 어느 날 국어과 여교사가 같은 반 급우

 

들이 보는 앞에서 인간적인 모욕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중2때 여름 어

 

느 날 방과 후 농구반수업시간에 맞춰 농구골대가 있는 운동장으로 갔

 

고 동급생 한명이 나에게 농구공을 던져달라고 했고 던져준 나는 실수

 

로 그 동급생의 등에 던지게 되었고 그 동급생과 저는 마찰을 일으켰

 

고 화가 난 저는 그 길로 집으로 갔습니다. 중2때 야영을 불참 했었습

 

니다. 중3시절 저에게 해가 되는 동급생들을 두 손을 불교식으로 모아

 

저주를 했습니다. 같은 해 여름 때 일부 동급생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단짝친구로 만들기 위해 저희 집에서 놀게도 하고 라면도 끓여서 대접

 

도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같은 해 행정실 시설계 직원과

 

두 차례 마찰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중학교에서도 늘 혼자였습니

 

다. 제가 아는 몇몇 급우들에게 간단한 대화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동년해 때 중2시절 인근 반에 전학을 왔던 한 동급생이 가끔씩 저를

 

괴롭혔습니다. 2002년 2월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2002년 3

 

월 구미 시골의 모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

 

에는 복학생과 유급생들이 많았습니다. 나이도 저보다 1~2살가량 많

 

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유급생 및 복학생들 상당수가 적응을 못해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고 1시절 고2 휴학생 유도부원 중 대표

 

격 한명에게 인간적인 모욕을 받았습니다.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유

 

도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사들이나 학부모에게는 온갖 착한 척 다

 

하는 이중적인 놈들이었습니다. 자신보다 후배이면 후배들 등쳐먹고

 

부려먹고 만날 때마다 인간적인 모욕을 수시로 줍니다. 나이 많은 유

 

도부원들 몇 명이 고교 2학년 때 복학을 하면서 동창이 되었습니다.

 

그 때도 저에게 인간적인 모욕을 주었습니다. 심지어 고3때 졸업사진

 

촬영을 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죽일 수 있으면 죽이고 싶은 놈들입니

 

다. 어느 날 저보다 2살 많은 유급생이 제가 소속되어 있는 반 창문을

 

두드리면서 창문을 열라고 욕을 하였습니다. 창문을 열어줬더니 제 겨

 

드랑이 밑 부분을 만졌고 저는 얼른 선으로 뿌리쳤습니다. 좀 수치스

 

러웠습니다. 고1시절 어느 날 중학교 전용 화장실에서 같은 반 급우와

 

소변을 보고 교실(건물이 적어서 중학교 건물을 고2 때까지 사용)로

 

돌아가던 중 저 보다 2살 많은 유급생 두 명이 중학생 전용 화장실로

 

향하던 중 유급생 한명이 나와 같은 반 급우를 부르더니 "너 왜 이화

 

장실을 쓰냐? 혹시 담배 피우냐?" 물었고 우리는 담배를 안 피운다고

 

말했고 옆에 있던 유급생이 안 피웠으면 됐다고 보내라고 했는데 말을

 

건 유급생이 너희들 앞으로 이화장실 쓰지 말고 큰 건물 화장실을 사

 

용하라고 하면서 저와 급우에게 고개를 들게 한 뒤 주먹으로 각각 한

 

대씩 가격을 하였습니다. 전 멍이 조금 들었습니다. 고교생활 내내 행

 

정실 시설계장과 부딪힐 때마다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고1때 그 당시

 

상주대 1학년이었던 교무보조와 마찰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여자가

 

궁금해서 그 당시 교장 선생님께 그 여자의 이름과 나이, 직업을 물었

 

습니다. 그게 죄가 되었는지 그 여자가 저를 스토커로 몰고 따지더니

 

2학년 한 선배에게 소문을 내었고 그 선배가 너 그 교무보조 스토커지

 

물으면서 추궁했고 일부 소문이 났었습니다. 제가 오해를 산 행동인지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들어와서도 학교적응을 제대로 못해서 교무실에

 

자주 드나들 이 하는 게 화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여자를 쫓

 

아간 적도 없고 집이나 핸드폰 번호는 물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찌

 

됐건 당분간은 선배들과의 관계는 더 악화 되었습니다.원래 선후배 관

 

계가 좋지 않았지만……. 기본 적인 것도 조차도 물어볼 수 없었던 것

 

인지 미스터리 입니다. 고교시절 선후배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도 못

 

했습니다. 고1때 같은 반 여자급우가 저에게 물 한 컵 떠오라고 심부

 

름을 시켰고 저는 거절했고 그 여자급우와 마찰이 빚었습니다. 고2때

 

야자 첫날 같은 반 유급생 한명이 인간적인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리

 

고 저는 잠시 눈을 감고 잠시 누워 있었는데 그 때 야자감독(사회과)

 

선생이 저를 인간적으로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 선생은 애들처럼 장난

 

이나 좋아하고 문제아들 단속도 제대로 안하는 그런 인간이었습니

 

다.  전 너무나도 분하고 원통하여 엎드려서 울고 말았습니다. 이 일

 

을 알게 된 아버지는 속이 상하셨는지 다음날 새벽에 양주를 드셨습니

 

다. 저는 고교 때 매 학년 때마다 야자를 조금씩만 하다가 빠졌습니

 

다. 어차피 혼자서도 공부도 못하고 대학도 갈 생각도 없고 동급생들

 

과의 불화도 끊이지를 않고 하니 야자를 빠졌고 보충수업도 고교시절

 

내내 빠졌습니다.  고2 때 상주에서 야영을 갔는데 숙소에서 고2 야자

 

첫날 집적거렸던 유급생 한명이 캔 음료하나 뺏어 먹더니 빵까지 뺏어

 

먹었습니다.  저는 보복이 두려워서 마지못해 허락을 했고요-_-;; 뒤

 

이어 같은 반 급우와 동급생 한명이 같이 먹자고 구슬리면서 빵을 뺏

 

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고2 때 어느 날 체육시간 유도를 배우는 시간

 

인데 남자교생(유도선수 출신) 한명이 저를 반급우들 보는 앞에서 인

 

간적인 모욕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그 새끼를 죽여 버리고 싶습니다.

 

고2 가을 때 체험학습을 가기 전 학교로 가는데 3학년 선배가 제 동급

 

생을 불러서 간식거리를 뺏어먹고 하다가 저의간식을 뺏어 먹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거부하는 행동을 했고 열 받은 그 새끼는 저에게 시비

 

를 걸었고 그 때 실장이었던 여자급우가 원래 그런 놈이라 하고 일이

 

일단락되었습니다. 화가 난 저는 다음날 담임께 다 알렸고 그놈이 더

 

이상 저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고2때 학교생활에 염증을 느낀 저는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부모님의 설득으로 겨

 

우 진정했지만 저를 붙잡으려는 선생님 한명이 없어서 섭섭했습니다.

 

고3때 그 당시 실장이 장난을 심하게 치는 편이었는데 그 실장과 한

 

번씩 마찰을 빚었습니다. 고2~3 때 아버지께서 잘 아시는 건축일 동

 

료의 아들과도 가끔씩 마찰을 빚었습니다. 고3 때 오상 고에서 2학년

 

때 전학을 온 놈과 같은 반이었는데 그놈이 장난을 심하게 치고 저에

 

게 인간적인 모욕을 주었습니다. 저는 저에게 해가되는 인물을 저주하

 

기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그 노트에서 해당자 이름과 온갖 저주스

 

러운 글과 욕을 기록했습니다. 2005년 2월 고등학교 졸업 하루 전 시

 

장에서 낮선 사람들의 꾐에 넘어가 그들의 공간에서 치성 제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세면실에서 찬물에 샤워를 하라고 시키더니 저에게 한복

 

을 입혔고 요상한 동작을 시키더니 절을 하게 했습니다. 선무라는 여

 

자가 저에게 "땅에 함부로 침을 뱉지마라 터줏 신이 있다고 말했고 당

 

신 아버지에게 업보가 많고 그 업이 당신에게로 옮겨갈 수 있다고 말

 

했습니다." 1주일동안 누구에게도 말을 하면 치성 제를 지냈던 것 효

 

력이 떨어지고 복이 달아난다고 말했습니다. 총 2번 방문을 했고 첫날

 

밤 10까지 선감인가? 선무인가? 저에게 쇳내교육을 시켰습니다. 1주

 

일 뒤에야 부모님께 알렸고 부모님에 의해서 빠져나오게 되었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강증산을 교조로 하는 민속종교 D종파에서 분파 된

 

단체인 것 같습니다.  2005년 2월 고등학교 졸업 이후 2005년 3월경

 

군 신체검사 영장발부 이대로 군대에 가도 되는지 걱정이 되었고

 

2005년 3월 정신과 10일 가까이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 하였습니다.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도 성질이 다혈질적인 중년남자와 마찰을 빚었

 

습니다. 어느 날 병동 휴게실에서 저녁에 노래를 부르다가 눈물을 흘

 

렀는데 그때 그 다혈질적인 중년남자가 시비를 걸고 달려들었는데 주

 

변에 있던 환자들과 PK 및 간호사들이 말렸고 다시 잠잠 해졌습니

 

다. 그때 제 병명은 우울증, 대인기피증, 회피성 인격 장애였습니다. 4

 

월에 대구 지방 병무청에서 병사용 진단서를 정신과 군의관에게 보여

 

주고 여러분이야 검사 끝에 7급(재신체검사)을 판정받고 동년 10월?

 

그때 전의 병사용 진단서를 들고 재검을 했고 다시 7급을 판정받고 2

 

주 이상 구미의 중소병원에서 정신과 통원치료를 했습니다. 20~21살

 

때는 유독 눈물이 많았습니다. 2006년 3월 다시 같은 병무청에서 정

 

신과 담당 군의관에게 기존의 병사용 진단서와 최근에 치료를 받았던

 

병사용 진단서인가? 소견서인가?를 제출하고 5급(제2국민역)을 판정

 

을 받았고 심사실에 들어가서 재판정을 받고 검사를 마쳤습니다. 이후

 

같은 구미중소병원에서 정신과치료를 2주 이상 더 받았습니다. 이후

 

줄곧 집에만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 5

 

월 "빨간 일기장"을 구입하고 제 과거고교시절 저에게 해를 끼친 동창

 

들과 유급생, 선배들  어렸을 때부터 사이가 안 좋거나 싫어했던 고종

 

사촌 등을 저주하는 글을 남기고 리스트를 작성을 했습니다. 심지어

 

입술을 뜨거나 등 피가 날 경우에 그 책에다가 피를 발랐습니다. 전에

 

고교시절에 작성했던 블랙리스트에도 피를 묻혔습니다. 지난 2010년

 

2단계 "공공근로사업(2010.4.5~2010.6.18)" 을 통해서 일을 잠시

 

했습니다만 반장과 마찰을 빚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두 번 이상 아버

 

지와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그때 저도 아버지도 술에 만취한 상황이

 

었습니다. 저는 살아야 되는지 고민입니다. 저는 평생을 살면서 단짝

 

친구 한명 사귀어 본 적이 없습니다. 사회생활의 어려움도 여전하고요

 

학창시절의 안 좋았던 기억 상처투성이 되었던 지난과거가 또다시 되

 

풀이되기가 실고해서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왜 나 혼자서 이렇게

 

세상을 부딪치며 살아야 되나 이런 생각이 많이 납니다. 내가 할 수

 

있을게 아무 것도 없고 사는 게 지루하기만 합니다. 로또에 매달려서

 

1주일에 천 원씩 투자를 해서 살 수 있는 희망을 노리고 있지만 잘 되

 

지가 않았습니다. 고교 졸업 후 20세 때 알아보고 작년과 요 최근에

 

수면제를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최악의 힘든 경우가 왔을 때 죽게 되

 

면 얼마나 편하게 죽을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마음을 터 넣고

 

얘기를 할 대상도 없고 저를 이해해 줄 대상도 없고 힘듭니다. 결혼도

 

안하려고 합니다.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도 딸릴 터 저 하나도 추스르

 

고 사는 것도 힘들고 제 아버지처럼 자식에게 상처 주는 교육을 하는

 

아버지가 되는 게 너무 싫기 때문에 아이를 안 낳고 싶습니다.  외할

 

머니께서 지난 설 연휴 때 걸레질을 하시면서 "사는 게 와이리. 지엽

 

노?"와 막내 외삼촌께서 말씀하신 " 사는 것 가체가 지옥이다." 이 말

 

씀이 자꾸 와 닿습니다. 해결책이 없을까요? ㅠ_ㅠ;; 즐겁게 살 수 있

 

고 행복하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내용이 요약도 제

 

대로 안되어 있고 정리가 제대로 안되어 있고 그렇지만 서러웠던 감정

 

이 복받쳤고 감정에 쏠리다 보니 이렇게나마/이나마 글을 올리게 되

 

었습니다. 끝까지 봐 주셨으면 감사 하겠습니다.  저는 도움을 받고

 

싶은데 도움받을 곳이 전혀 없습니다.  청소년 상담 센터도 청소년들

 

만 대상이고...... ㅠ_ㅠ;;  오늘(8월 14일) 외할머니 생신을 앞당겨서

 

식당에서 온 식구들과 소고기를 먹고 노래방 가고 거기까지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술에 만취하신 아버지와 집에서 어머니께서 다투

 

셨습니다. 아버지가 저와 어머니가 돈을 벌로 일을 다니지 않는다고

 

트집을 잡으셨던 모양입니다. 어머니가 제게 오셔서 하소연을 하셨습

 

니다. "이래 가지고는 안된다." "아버지가 우리모자를 트집잡는 말을

 

에게 하더라 이렇게 살바에는 구덩이 파서 모두 죽자고 하더라 이렇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말 희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 구덩이

 

서 일가족 모두 세상과 작별을 고해야 되는 상황이 올 지도 모르

 

겠습니다. 아니면 저 혼자 "일본 후지산"에 있는 "주카이 숲"에 들어

 

가서 영원히 나오지 말까? 생각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도

 

움 될 만한 조언 좀 부탁 드립니다. 비난이나 비방 같은 것은 하지 말

 

아 주요. ㅠ_ㅠ;; 저 또다시 상처를 받게 됩니다.


#저는 너무 좋아요 #저는 너무 배고파요 #저는 당신한테 너무 중독 돼요 意味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살아오시면서 많이 힘든과정을 겪으셨네요. 처음 가정환경부터 좋지 못해 아버지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자신감이 결여되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왕따, 따돌림등 피해자로서 살아오다보니 대인기피증, 우울증이 심해진것 같네요. 우울증이 심해지면 자살생각, 자살충동도 생기게 되어 매우 위험합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힘든과정을 잘 이겨내신것에 대해 잘하셨다고 칭친해 드리고 싶습니다. 사연으로 볼때 힘든 역경을 잘 이겨냈셨다고 생각됩니다. 지금부터라도 우울증을 우선 치료하셔야 합니다. 우울증은 치료의지를 약화시키고 자살을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꼭 치료해야 합니다. 도와 드리고 싶습니다. 님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이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생명입니다. 꼭 우울증을 치료하고 제가 상담심리치료를 통해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연락주세요. 우울증은 치료가능한 질병입니다.

 

새롭게 희망을 갖고 일어서시길 바랍니다. 힘네세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계속되는 학교부적응과 주변 사람들의 괴롭힘으로 인해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걸린 것 같습니다.

님의 경우 상당히 중증인 것 같으니 빨리 신경정신과에 가보셔야 합니다.

2005년, 2006년에 정신과 진료를 조금 받으신 것 같은데 님의 상태로 보아

그 정도로는 효과를 보기 힘들 겁니다.

최소한 1년 이상은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으니 당장 신경정신과에 가셔서

꾸준히 참을성 있게 진료를 받으세요.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 더 짧은 시간에 나아질 수도 있습니다.

 

저한테는 강박증상이 있는데 1년 넘게 약 먹으니 서서히 좋아졌습니다.

님도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반드시 꾸준하게 치료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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