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들..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들..

작성일 2003.08.04댓글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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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어떤거라고.. 생각하세요??

또 가장 무서운 이야기나.. 가장 슬픈 이야기.. 어떤거라고 생각하시죠?

전 슬픈건.. 죽은 아내 데려오는거.. 데려오다가 뒤돌아봐서 실패한거 있잖아요..

정확하게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이야기구요..

아름다운건 에로스이야기... 여자이름은 생각이 안나지만.. 에로스의 사랑이야기였는데..

무서운건.. 별로 무섭다고 느낀건 없었구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궁금해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아름다운 이야기

옛날 어느 나라에 딸 셋을 둔 왕이 살고 있었다. 왕이 어질다는 소문과 딸들이 아름답다는 소문이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넜던 것을 보면 참 살기 좋은 나라였던 모양이다. 셋 딸 중 맏이와 둘째도 예사 미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셋째이자 막내인 프쉬케는 이 세상의 가난한 언어로는 도무지 다 그려 낼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이 막내가 아름답다는 소문이 널러 퍼지자 먼 나라 가까운 나라를 불문하고 수많은 왕자들이 다 몰려와 막내의 아름다움을 한 번 보고 가기를 소원했다. 왕자들뿐만이 아니었다. 그 나라 국민들에게도 막내 공주를 한 번만이라도 보는 것이 소원 중에서도 큰 소원이었다. 어렵게 어렵게 막내 공주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최상급의 찬사를 공주에게 바쳤다. 공주가 받은 찬사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 아니고는 받아 본 적이 없는 찬사였다. 사람들이 이렇듯 공주에게 정신이 팔려 있다 보니 신들이 살던 신전에도 발 걸을이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프로디테 신전을 찾는 사람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날이 감에 따라 신전 출입하는 사람이 줄어들다가 급기야는 제단조차 돌보는 이 없게 되어 향불은 꺼지고 제단에는 먼저기 쌓이기에 이르렀다. 신들은 최고의 경의와 최상급의 찬사는 신들에게나 바쳐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경의와 찬사가, 때가 되면 죽고 죽으면 썩어야 할 팔자로 태어난 인간에게 겨누어지는 것을 보았으니,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 디테의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을까? 더욱이 아름답기로 말하자면 저 헤라와 아테나까지 이기고 '미스 그리스'에 뽑힌 적이 있는 아프로디테가 아니던가. 잠깐, 아프로디테가 '미스 그리스'에 뽑혔던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자 영국의 작가 로즈마리 셧클리프의 「트로이 목마」에서 이 대목을 옮겨 본다. 아득한 옛날, 사람이 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영웅스럽던 시절, 뮈르미돈의 왕 펠레우스는 발이 아름다워서 '은빛 발'이라는 별명을 불리던 바다의 요정 테티스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이들의 혼인 잔치에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저 높은 올륌포스 산의 신들도 초대되었다. 잔치가 한창 무르익어 가는 참인데, 그 잔치에 초대되지 않은 손님 하나가 불쑥 그 자리에 나타났다. 누구인가 하면 불화의 여신 에리스였다. 에리스가 초대되지 않은 것은 불화의 여신이라서 어디에서든 불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런 에리스가 그 자리에 나타나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자기가 당한 모욕을 복수하겠노라고 벼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복수하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은 에리스가 한 일은 겨우 잔칫상을 향하여 사과 한 알을 던진 것밖에 없었다. 따라서 별 것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사과 한을 던진 에리스는 손님들을 향해 날숨을 크게 한 번 쉬고는 사라져 버렸다. 에리스가 던진 사과는 과일 무더기와 포도주 잔 사이에 놓여 있었다. 손님 중 하나가 허리를 구부리고 그 사과를 집었다. 사과 한 귀퉁이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 여신에게." 이렇게 되자 여신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세 여신이 그 사과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다. 헤라 여신이 맨 먼저 이런 뜻을 내비쳤다. "나는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 신의 아내이자, 모든 신의 왕후 되는 여신인 만큼 이 사과는 마땅히 내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아테나 여신도 이런 뜻을 내비쳤다. "내가 지닌 지혜의 아름다움은 다른 모든 신이 지닌 지혜의 아름다움을 앞서는 것인 만큼 이 사과는 내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프로디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름다움의 여신말고 누가 그 사과를 차지할 수 있겠어요?" 세 여신은 입씨름을 벌였고, 이 입씨름은 말싸움으로 발전했다. 말싸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치열해졌다. 세 여신은 거기에 모인 손님들에게, 그 사과가 누구의 것이 되어야 마땅한지 심판해 줄 것을 요쳥했다. 그러나 손님들과 심판해 주기를 거절했다. 어느 여신을 편들어 주든, 나머지 두 여신으로부터 원한을 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세 여신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신들의 궁전이 있는 올륌포스 산으로 올라갔다. 신들 중에는 이 여신을 편드는 신들이 있는가 하면 저여신을 편드는 신들도 있었다. 신들은 이렇게 편이 갈린 채로 오래오래 서로 싸웠다. 얼마나 오래 싸웠는가 하면, 이 말싸움이 시작되던 당시 이간 세상 도시 국가 트로이아에서 태어난 아기가 자라 전사나 목동이 될 때까지 싸웠다. 신들은 모두 불사신들이라서, 때가 되면 죽는 운명을 타고난 인간의 세월은 알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여전히 그 황금 사과를 두고 아옹다옹하던 질투심 많은 세 여신이 올륌포스 산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다가, 이다 산 기슭에서 목동 노릇을 하는 헌칠한 청년을 보게 되었다. 이 청년이 바로, 사과를 사이에 두고 올륌포스 신들 사이에 말싸움이 시작될 당시에 태어난 그 아기다. 세 여신은 모르는 것이 없는 신들이라서 한눈에 청년이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청년은 자기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세 여신은 문득 그 청년이 자기네 세 여신의 정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신의 정체를 모른다면 보복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정하게 심판할 수 있을 터였다. 세 여신이 황금 사과를 두고 입씨름을 벌이는 데도 염증을 느끼고 있을 즈음의 일이었다. 세 여신은 그 사과를 청년에게 던졌다. 파리스는 엉겁결에 손을 내밀어 그 사과를 받았다. 세 여신은 풀잎 하나 구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사뿐히 땅 위로 내려서서는 파리스에게, 누가 가장 아름다워서 그 황금 사과의 주인이 될 만한지 셋 중에서 고르게 했다. 먼저 눈부신 갑옷을 차려입은 모습의 아테나 여신이 앞으로 나서서, 칼날 같은 잿빛 눈으로 파리스를 바라보며, 자기에게 그 황금 사과를 던져 주면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지혜를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다음으로는 헤라 여신이 신들 궁전의 왕후에 어울리는 차림으로 나서서, 자기에게 그 황금 사과를 던져 주면 어마어마한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눈이 깊은 바다처럼 파란 아프로디테가, 꼬아 놓은 금실 같은 타래 머리를 하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면서 앞으로 나서서, 자기에게 그 황금 사과를 던져 주면 자기만큼 아름다운 아내와 짝을 지어 주겠노라고 약속했다.파리스는 그 여신만큼 아름다운 아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지혜와 권력을 주겠다는 두 여신의 약속을 잊고 말았다. 그러고는 황금 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던졌다. 그 순간 아테나와 헤라는 자기들에게 황금 사과를 던져 주지 않은 파리스에게 앙심을 품었다. 잔칫날 손님들이 예측했던 그래로였다. 두 여신은 아프로디테에게도 양심을 품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미스 그리스'가 된 아프로디테는 만족스러워하면서 왕자인 그 목동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로 마음먹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뒷날 아프로디테는 이 파리스에게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헬레네를 짝지어 주는데, 이 때문에 전쟁이 터지고 파리스의 조국 트로이아는 불바다가 된다. 이런 아프로디테인데, 사람들이 막내 공주를 칭송하느라고 신전에 오던 발길을 끊었으니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그 향기로운 머리카락이 올올이 곤두서리만큼 화가 난 아프로디테는 송곳니가 멍석니 되도록 이를 갈았다. "가당찮구나. 이 아프로디테의 명예가 저 인간의 계집 하나에 빛을 잃어? 파리스의 판정을 제우스 대신까지 승인하지 않았던가? 제우스 대신이 보는 앞에서, 헤라와 아테나가 보는 앞에서 파리스는 종려 화관과 '미스 그리스'라는 명예를 바치지 않았던가? 오냐, 내 기어이 저 계집에게 앙갚음을 해서, 분수에 넘치는 영광을 앙갚음의 여신 네메시스가 어떤 눈으로 보는지 가르쳐 주리라."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를 불러들였다. 에로스는 그렇지 않아도 장난이 치고 싶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이 개구쟁이 꼬마 신 에로스에게는 화가 잔뜩 나 있는 어머니의 모습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저기 저 계집을 좀 내려다보아라. 제 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 계집이 보이느냐? 프쉬케라는 계집이 보이느냐?" 아프로디테는 프쉬케를 가리키며 아들에게 물었다. "프쉬케라면 나비가 아닌가요? 나비를 보고 계집이라뇨?" 에로스가 딴청을 부리자 아프로디테는 아들을 꾸짖었다. "잘 들어라. 저 계집아이는 분수에 맞지 않게 아름답다. 저 계집아이 때문에 어미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으니 네가 이 어미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한다. 저 계집아이가 받을 고통과 입을 상처가 크면 클수록 이 어미의 기쁨 또한 클 것이다. 어쩌려느냐? 납화살을 쏘아 미움과 원망으로 한 세상을 살다 가게 할 테냐? 아니면 금화살을 쏘아 이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수컷을 그리워하다 상사병으로 죽게 하려느냐?" "에로스의 일은 에로스에게 맡기세요. 다그친다고 되는 일인가요?" 에로스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아프로디테의 신전 앞뜰에는 단물이 솟는 샘과 쓴물이 솟는 샘이 있었다. 단물은 없는 것을 있게 하고, 모자라는 것을 넘치게 하고, 빈 것을 차게 하는 물이었고, 쓴물은 있는 것을 업게 하고, 넘치는 것을 모자라게 하고, 찬 것을 비게 하는 물이다. 에로스는 두 개의 병에다 각각 쓴물과 단물을 넣어 화살통에 매달고는, 금빛 날갯짓도 가볍게 왕국의 도성으로 날아 내려갔다. 프쉬케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어찌나 깊이 잠들었는지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아서 에로스는 날개의 깃 하나를 뽑아 프쉬케의 코에 살며시 대어 보았을 정도였다. 에로스는 쓴물 두어 방울을 프쉬케의 입술에 떨어뜨렸다. 이로써 프쉬케의 입술은 어떤 사내의 얼굴도 붉히게 할 수 없었다. 난생 처음으로 가엾다는 생각을 했으나, 그런 느낌에 버릇 들어 있지 않은 에로스는 금방 잊어 버리고 프쉬케의 어깨에 금화살촉을 살며시 갖다 대었다. 너무 거리가 가까워 화살을 활시위에 메울 필요도 없었다. 프쉬케는 화살촉을 느껴서 그랬던지 그 큰 눈을 뜨고 에로스 쪽을 바라보았다.제 모습이 프쉬케 눈에 보일 턱이 없는데도 에로스는 프쉬케가 눈을 뜨자 마치 어둡던 세상이 활짝 밝아진 것 같았다. 에로스는 한편으론 놀라고 또 한편으론 하도 황홀해서 무심결에 프쉬케를 찌르지 못한 화살을 치운다는 것이 그만 제 손을 찌르고 말았다. 에로스가 프쉬케의 그 큰 눈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았더라면 쓴물 한 방울로 제 손에 난 상처의 독을 뺄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에로스는 그 생각은 못했다. 프쉬케가 가엾다는 느낌이 다시 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로스는 제 손으로 벌인 장난을 거두어들인다고 프쉬케의 머리카락에 단물을 뿌려, 그 아름다움을 거두기는커녕 한층 더 아름답게 해 주었다. 프쉬케의 침실에서 돌아온 순간부터 에로스는 이미 그 전의 에로스가 아니었다. 금화살에 찔린 상처 때문에 프쉬케를 그리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로스는 원래 나이를 먹지 않는다. 하지만 안테로스(사랑의 상대)가 나타나면 달라진다. 프쉬케는 머리에 단물 방울이 묻은 날부터 나날이 아름다움을 더해 갔다. 그러나 입술에 묻은 쓴물 방울 때문에 나날이 더해 가는 아름다움으로 도 아무 은혜를 누리지 못했다. 사람들의 눈이란 눈은 모조리 프쉬케의 아름다움을 좇고, 입이란 입은 남김없이 프쉬케의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그러나 왕자나 귀족은커녕 하찮은 시정배들조차 지나가는 말로나마 청혼하는 일이 없었다. 위로 두 공주는 왕자들과 혼인하여 차례로 왕국을 떠났지만, 프쉬케만은 까닭도 모른채 빈 방을 지키며 꽃 같은 세월을 하는 일 없이 앞세우고 살았다. 왕은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혹 프쉬케가 신의 노여움을 사거나 시기를 입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고는 아폴론 신전이 있는 델포이로 사람을 보냈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 음악의 신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운명을 점치는 예언의 신이기도 하다. 아폴론은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다 한 인간 한 인간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자기 뜻을 맡겨 놓는다. 이 맡겨 놓은 뜻을, 신이 맡겨 놓은 뜻이라고 해서 신탁 또는 탁선이라고 부른다. 아폴론 신전에서 아폴론의 뜻을 전하는 예언저는 이런 말을 했다. "이 처여는 인간의 아내가 될 팔자가 아니다. 보아라, 올륌포스 신들도 인간도 그 뜻을 거스를 수 없는 요사스러운 괴물이 산꼭대기에서 처녀를 기다리고 있구나.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느냐? 아름다움이란 비와 같아서 모자라면 가뭄이라 하고 넘치면 홍수라 하지 않더냐." 아폴론의 뜻을 전해들은 왕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딸을 불러다 놓고 한숨을 쉬며 탄식했다. "얘야, 이 일을 장차 어쩌면 좋겠느냐? 나는 곧 세상을 하직할 것이다만 이 땅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너는 장차 어쩌려느냐?" 그러나 프쉬케는 오히려 아버지를 위로했다. " 아버지, 저도 상심하지 않을 테니, 아버지도 제 팔자 때문에 상심하지 마세요. 아폴론 신의 뜻이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저 바위산 꼭대기에 사는 괴물의 아내가 될 운명이라니, 제 발로 가렵니다."왕은 눈물을 머금고 신하들에게 명하여 공주를 바위산 꼭대기로 데려갈 준비를 하게 했다. 공주를 데리고 바위산으로 가는 행렬은, 혼례 행렬이기 보다는 장례 행렬에 가까웠고, 신부 프쉬케가 입은 옷은 공주가 결혼식날 입는 대례복이기보다는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수의에 가까웠다. 이윽고 행렬은 산꼭대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괴물이라는 신랑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공주를 모르시고 왔던 사람들은 괴물이 두려웠던지 손가락 한번 퉁길 시간도 기다리지 못하고 산을 내려가 버렸다. 프쉬케는 산꼭대기에 혼자 남았다. 제 발로 온 셈이기는 하지만 나이 어린 프쉬케에게도 괴물 만나기는 무서운 일이었다. 프쉬케는 오돌오돌 떨면서 바위에 몸을 기대고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러자 인정 많은 서풍의 신 제퓌로스가 다가왔다. 제퓌로스는 조개 껍데기를 밟고 서 있던 아프로디테를 퀴프로스 섬 해변으로 데려다 준 바로 그 바람의 신이다. 제퓌로스는 프쉬케를 가볍게 들어 골짜기로 데려다 주었다. 꽃이 참 흐드러지게도 핀 골짜기였다. 꽃향기 덕분에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게 된 프쉬케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는 둑에 앉아 잠시 눈을 붙여서 기운을 차리고는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키 큰 나무가 울울창창 들어서서 보기 좋은 숲이 있었다. 프쉬케는 숲으로 들어갔다가 뜻밖에도 엄청나게 크고 웅장한 궁전을 보았다. 어디로 보나 인간의 손으로 만든 여느 구조물 같지가 않았다. 프쉬케의 눈에 그 궁전은 올륌포스의 딸림 신들이 세운 궁전으로 보였다. 프쉬케는 차 한 잔 끓일 시간 동안 넋을 놓고 궁전을 올려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내 형편이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을까? 물러서려고 해 봐야 물러설곳도 없다. 나를 지켜 줄 수 있는 것은 이제 나밖에 없다 .오냐, 더 물러설곳이 없으니 차라리 용기룰 내서 들어가 보자.' 프쉬케는 용기를 내어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것은 잘 한 일이었다. 그 안에 있는 것, 그 안에서 보이는 것 가운데 프쉬케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않는 것,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둥근 천장을 받치고 있는 것은 황금 기둥이요, 황금 기둥이 놓은 바닥은 설화 석고였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물이 쌓여 있었다. 프쉬케가 정신을 놓고 사방을 살피는데 어디선가 귀에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러보아도 소리 임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왕이시여, 보시는 것은 모두 여왕의 재물이며, 들으시는 것은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여왕을 받들 하인의 목소리입니다. 우선 안방으로 드시어 부드러운 거위 깃털 침대에서 쉬시고, 혹 내키시면 가까이에 있는 욕실을 찾아 몸을 닦으세요. 목욕을 마치시면 식탁은 정자에다 마련하면 어떠할까 합니다. 여왕께서 괜찮으시다면 그리 모실까 합니다." 프쉬케는 목소리만 들리는 시종의 말대로 깃털 침대에서 쉬고 욕실에서 몸을 씻은 뒤 정자로 건너갔다. 정자에는 차린 맵시와 맛이 두루 산해진미라고 할 만한 음식이 있었고, 그 맛과 향이 두루 근심을 잊게 하는 술이라고 할 만한 음료가 있었다. 보이지 않는 음악가가 빚는 가락도 있었다. 누군가가 수금을 탔으며, 마지막에는 여럿이 한목소리로 잘 어울리는 화음으로 노래했다. 프쉬케는 괴악하고 요사스러운 괴물이라던 신랑을 한번도 보지 못한 채 그 궁전에서 신혼을 보냈다. 신랑은 늘 한밤중에 들어왔다가 날이 새기 전에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으로 본 적은 없어도 손끝으로 가늠한 바는 없지 않았다. 신랑은 프쉬케가 더듬어 알기에 요사스러운 괴물은 아닌 듯했다. 어느 날 프쉬케는 신랑에게 오래 망설이던 말을 했다. "제 지아비가 어둠이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만져도 손끝에 걸리지 않을 테니 보려고 하지 않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손끝에 더듬어지는데 보지 못하는 제 심정을 헤아리실 수 있으신지요?" 신랑의 음성이 들려왔다. "더듬어 알 수 있되 보지 못하는 자를 우리는 장님이라고 하고, 보되 들을 수 없는 자를 우리는 귀머거리라고 하지요. 성한 사람도 장님이 되고 귀머거리가 되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요."남편의 음성은 뜻밖에도 앳되었다. "모습을 보이시지 않는 까닭이 있으면 그거라도 가르쳐 주세요. 시중드는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까닭이라도 가르쳐 주세요." "내가 좋아서 이러는 것이니 굳이 내 못브을 보려 하지 마세요. 나는 그대를 사랑하는데 내 사랑이 믿어지지 않는 건가요? 믿어지지 않으면 내 곁을 떠나세요. 의심이 자리잡은 마음에는 사랑이 깃들이지 못해요. 내가 그대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 까닭은, 그대가 나를 사랑하기를 바랄 뿐이지 삼가거나 섬기기를 바라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프쉬케는 이 말에 힘을 얻어 본마음을 되찾고 얼마간은 더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기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신랑에 대한 의심은 사라졌으나 딸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을 부모 생각, 동생이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을 언니들 생각이 프쉬케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어느 날 프쉬케는 또 오래 망설이던 말을 했다. "저는 행복합니다. 다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할 뿐입니다. 시집 간 제 언니들에게 제가 누리고 있는 행복을 한 자락이라도 보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언니들은 저 때문에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사랑의 그릇은 무엇을 넣음으로써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 냄으로써 채우는 것이라는 것이라는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나는 그대의 언니들이 그대 사랑의 그릇을 줄여 놓는 것을 바라지 않을 뿐이에요." 프쉬케는 신랑의 반 허락이 떨어지자 서풍의 신 제퓌로스에게 소식을 전해 줄 것을 부탁했다. 제퓌로스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가 프쉬케가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사는지 꼭 한번 보고 싶다는 언니들을 궁전으로 데려오기까지 했다. 프쉬케는 언니들과 오래 나누지 못한 정을 나누었다. 두 언니는 프쉬케의 시중을 알뜰살뜰 들어 주는 보이지 않는 하인들, 집안을 음악으로 가득 채우는 보이지 않는 악사들, 방방에 넘쳐나는 엄청난 재물이 혀를 내둘렀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수로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일까? 프쉬케에게 견주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오두막이 아닌가?" 언니들에게 질투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러나 언니들은 그런 마음을 꾹누르고 막내에게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물었다. 뽀내고 싶은 사람에게는 질문만큼 기다려지는 것은 없는 법이다. 프쉬케는 궁전살이에 대해 언니들이 묻는 말에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언니들의 질문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는 했다. "신랑은 뭘 한대?" "사냥 다녀" "자주 봐?" "응." "밤늦게 사냥터에서 돌아오고 날새기 전에 사냥터로 돌아간다면, 그 못브을 네가 자주 보았을 리 없잖아?" "........" 두 언니의 이런 질문에는 프쉬케도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의심의 가닥 하나를 잡은 뒤부터 언니들이 하는 질문과 추궁은 집요했다. 착한 프쉬케는 유도 심문에 걸린 셈이었다. 결국 프쉬케에게서 신랑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실토를 받아 낸 언니들은 막내의 가슴에 의혹의 맞불을 놓아 저희 가슴에 인 질투의 불길을 잡으려 했다. "아폴론 신께서 저 신전의 예언자에게 맡겼던 뜻을 네가 설마 잊은 것은 아닐 테지? 이 골짜기 사람들은 네 신랑이 '괴악하고 요사스러운' 뱀이라고 하더라. 좋은 음식과 좋은 포도주를 넉넉하게 먹여 너를 살찌운 연후에 너를 자아먹을 것이라고 하더라. 그러니까 여러 말 하지 말고 등잔과 잘 드는 낫을 구하여 네 신랑 눈에 띄지 않을 곳에 숨겨 두어라. 그리고 네 신랑이 잠든 사이에 사려시 일어나 등잔에 불을 켜서 골짜기 사람들 말이 옳은지 그른지 네 눈으로 확인해 보아라. 그리고 사람들 말이 사실이거든 추호도 망설이지 말고 낫으로 그 목을 도려 버려라. 그래야만 네가 살 수 있다." 처음에 프쉬케는 두 언니의 과격한 말에 쓴웃음만 지었다. 마음에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것은 나그네의 옷 같은 것, 마음에 이는 의심은 나그네의 옷에 내리는 가랑비와도 같은 것, 마음에 의심은 나그네의 옷에 내리는 가랑비와도 같은 것이다. 꿈길을 가는 것이 아닌 한 오래 맞으면 아무리 가랑비라도 마침내는 젖고 마는 것이다. 두 언니는 프쉬케의 마음 속에다 의심의 가랑비를 내려놓고는 산을 내려갔다. 가랑비가 나그네의 옷을 적시듯이, 의심하는 마음은 프쉬케의 마음을 적시기 시작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래서는 안 된다......신랑은 나에게 그러지 않았는가? 의심이 자리잡은 마음에는 사랑이 깃들이지 못한다고...... 프쉬케는 신랑이 하던 말을 떠올리며 의심을 삭이려 했다. 하지만 의심을 삭이려는 노력이 빈번이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었다. 의심은 프쉬케의 마음이 조금만 헐거워지면 불쑥 고개를 들고는 했다. '의심이 고개를 들면 그 고개를 누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하다. 하지만 의심의 뿌리는 그런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의심의 뿌리를 캐내어 버릴 수 있을까? 그렇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면 된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는 순간 의심은 뿌리째 뽑힌다.' 의심은 오래지 않아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신랑의 살갗은 보드라웠다. 신랑의 음성은 앳되었다. 대체 어떻게 생긴 분일까.....' 호기심은 상사병과 같은 것이다. 상사병이 식욕을 떨어뜨리듯이 죄 없는 호기심 또한 채워지지 않으면 입맛을 떨어지게 한다. 프쉬케는 먹는 재미를 잃고 나날이 여위어 갔다. '내가 이 호기심을 채우지 못하고 나날이 여위어 가면 신랑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 그래, 확인해 ㅎ보자, 신랑이 어떤 분인지 확인해 보자. 이것은 나에게도 좋은 일이고 결국은 신랑에게도 좋은 일이다.' 마침내 이렇게 결심한 프쉬케는 언니들이 가르쳐 준 대로 등잔과 낫을 준비하고는 신랑이 돌아오고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사냥 나갔던 신랑은 밤이 이슥해질 녘에야 밤이슬에 젖어서 돌아왔다. 둘은 잠자리에 들었지만 프쉬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프쉬케는 한밤중에 살며시 일어나 등잔을 켜 들고 신랑의 얼굴에 비추어 보아다. 산으로 올라오고는 처음 켜 본 등이었다. 그러나 신랑은 뱀이기커녕 금빛 고수머리가 흡사 양털같고 이목구비가 반 듯하며 피부가 눈처럼 흰 미소년이었다. 어깨에는 밤이슬에 젖은 날개도 달려 있었다. 그 날개의 은빛깃은 봄에 피는 꽃잎만큼이나 보드라웠다. 프쉬케는 신랑의 풍채에 넋을 놓고 있다가 등잔의 뜨거운 기름 한 방울을 그만 에로스의 어깨에 떨어뜨리고 만다. 에로스가 프쉬케의 머리카락에 단물 방울을 떨어뜨렸듯이 그렇게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아, 그렇다. 그가 바로 사랑의 신 에로스였다. 에로스는 퍼뜩 눈을 뜨고 프쉬케를 노려보더니 검다 희다 말 한마디 없이 그 흰 날개를 펴고는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프쉬케는 에로스를 잡으려고 창 쪽으로 달려갔다가 그만 보람 없이 창틀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에로스는 잠시 날개짓을 멈추고 흙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프쉬케를 내려다보며 내뱉듯이 말했다. "어리석어라. 프쉬케여. 내 사랑에 대한 보답이 겨우 이것이오? 사랑에 대한 보답이 겨우 파국이오? 내가 내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던 것은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그대를 사랑했기 때문이오. 사랑의 그릇은 채움으로써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움으로써 채우는 것이라던 내 말의 이치가 그렇게 알아듣기 힘들던가요? 가세요. 그대에게 따로 벌을 내리지는 않겠어요. 사랑이 남아 있다면 영원한 이별보다 더 큰 벌은 없을테니까......우리는 오로지 영원히 헤어져 있을 따름이오. 의심이 자리잡은 마음에는 사랑이 깃들이지 못한다는 말을 알아듣기가 그렇게 힘들던가요? 그래요. 의심이 자리잡은 그대 '프쉬케(마음)'에게 나 '에로스(사랑)'는 깃들일 수 없다는 뜻이었소." 에로스가 밤 하늘에 한 줄기 빛을 그으며 날아가 버린 뒤 프쉬케는 한동안 땅을 치며 울었다. 울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손끝에 닿는 바닥은 설화 석고가 아니라 땅이었다. 프쉬케는 이상하게 여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궁전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자신은 어느새 황야의 맨 땅 위에 엎드려 있었다. 프쉬케는 두 언니를 찾아가 자기가 겪은 그간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하면서 오직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두 언니는 함께 후회하고 슬퍼해 주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각기 딴 마음을 먹었다. "오냐, 그것이 과분한 분복이라고 하는 것이다. 너는 이제 화를 입었으니 내가 그 복을 다시 지어 보아야겠다.' 두 언니는 날이 밝자마자 앞을 다투어 프쉬케가 살던 바위산을 기어올랐다. 산꼭대기까지 오른 두 언니는 제퓌로스를 불러 프쉬케가 살고 있던 그 궁전까지 실어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제퓌로스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벼랑 위에서 뛰어내렸다. 제퓌로스가 있던 자리에서 비켜 버리자 자매는 천길 벼랑에서 떨어져 그 의롭지 못한 삶을 좀 일찍 끝내고 말았다. 프쉬케는 한동안 정을 붙이고 살았던 신랑 에로스를 찾아서 온 그리스 땅을 다 누볐다. 하지만 사람들은 에로스가 신인지라 그 행방을 알지 못했다. 신들은 알 테지만 프쉬케로서는 신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프쉬케는 산을 넘다가 산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 신전앞을 지나게 되었다. 누구의 신전인지 짐작할 도리도 없었다. 프쉬케는 신전 앞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어느 신의 신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전이 있으니 반드시 임자가 있겠지. 그래, 이 신전에서 신랑에게 지은 죄를 속죄하자. 신랑이 알아주지 않으면 어떠랴? 신랑에게 지은 내 죄를 용서받는 길은 땀을 흘리고 수고를 들이는 길밖에 없다.' 프쉬케는 신전으로 들어갔다. 신전 안에는 뜻밖에도 곡식 낟가리가 있었다. 낟가리 중에는 단으로 묶인 것도 있었고, 베어서 실어온 채로 아무렇게나 팽개쳐진 것도 있었다. 낫, 갈퀴 같은 연장도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다. 프쉬케는 무더위에 지친 농부들이 그냥 팽개치고 달아났으려니 생각하고는 곡식과 연장들을 종류별로 고르고 나누어 제각기 있어야 할 자리에 마땅한 상태로 깔끔하게 정돈했다. 프쉬케는, 어떤 신에게든 죄를 얻었더라도 믿음으로 덕행을 쌓으면, 등을 돌렸던 신도 다시 돌아앉는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에로스를 잃고 방황하며 나름대로 겨눈 가늠이고 헤아린 짐작이다. 과연 그랬다. 그 신전은 다름 아닌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에게 바쳐진 신전이었다. 하지만 프쉬케는 나이가 어려, 낟가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데메테르 여신의 신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데메테르 여신의 신전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는 프쉬케가, 신전 제단의 휘장 뒤에서 여신이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어찌 짐작할 수 있었으랴. 데메테르 여신은 며칠 동안 프쉬케가 일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프쉬케여, 네가 복을 지었다. 내 비록 아프로디테의 저주에서 너를 풀어 줄 힘은 없으나, 여신의 분노를 삭일 방도쯤이야 어찌 일러 줄 수 없겠느냐. 네 신랑이었던 이가 아프로디테 여신의 아들 에로스임을 네가 알았느냐? 어서 가서 여신의 손에 네 몸을 붙이고 겸손과 순종으로 용서를 빌어라. 인간과 금수와 초목 중에 인간만큼 신을 노엽게 하는 것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인간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돌아앉은 신을 다시 돌아앉힐 수는 없다. 그러니 나에게 용서를 빌지 말고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용서를 빌어라." 프쉬케는 데메테르가 가르쳐 준 대로 아프로디테의 신전을 찾아갔다. 그러나 아프로디테는 프쉬케가 문안을 여쭙기도 전에 꾸짖기부터 했다. '이 하찮고 믿음이 적은 것아, 네 신랑은 내 말을 귓가로 흘리고 너같이 하찮은 것에게 사랑을 기울이더니 어깨에는 화상, 가슴에는 상처를 입고 돌아와 몸져누웠다. 참으로 밉살스럽고 비윗장이 틀리는 것아. 내가 이제부터 너를 시험하리라." 아프로디테는 프쉬케를 신전의 곳간으로 데려갔다. 신전 곳간에는 비둘기의 모이가 될 밀, 보리, 기장, 살갈퀴, 볼록콩 등이 섞인 채 수북이 쌓여 있었다. 비둘기는 바로 아프로디테를 상징하는 새였다. "네가 데메테르에게 길을 물어 내게로 왔으나, 내가 데메테르를 탓할 수는 없다. 자, 여기 있는 곡식을 종류별로 고릐되 한 알도 남김없이 골라 무더기로 각기 쌓아 놓아라. 저녁때가 되거 전에 끝마치지 못하면 네 입에 들어갈 것은 하나도 없다." 여신은 이렇게 말하고 신전 곳간을 떠났다. 프쉬케는 그 엄청난 일감에 기가 꺾여 손댈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망연자실 앉아 눈물만 떨구어다. 에로스는 비록 프쉬케의 철없는 행동 때문에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그래도 프쉬케에 대한 사랑이 완전히 식은 것은 아니었다. 에로스는 프시케가 가엾다는 생각이 들어 들판의 임자인 뮈르미도네스에게 가서 프쉬케를 도와 주라고 했다. 뮈르미도네스는 '개미떼'라는 뜻이다. 개미 왕은 에로스의 명에 따라 부하를 이끌고 신전 곳간으로 갔다. 개미떼는 차 한 잔 끓여서 마실 만한 시간 동안 낟알을 종류별로 골라 각각 있어야 할 곳에 말끔히 정리했다. 일을 마친 뮈르미도네스는 삽시간에 곳간에서 그 모습을 감추었다. 아프로디테는 저녁 무렵에야 신들의 잔치에서 돌아와 앙칼진 목소리로 프쉬케를 꾸짖었다. 장미꽃 관을 쓰고 호령하는 여신의 입에서는 신들의 술인 향긋한 넥타르 냄새가 풍겨나왔다. "앙큼한 계집이로구나. 네가 일은 잘 했다만, 나는 네 일 솜씨를 본 것이 아니고 내 아들에게 아직 너를 향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신은 저녁 끼니로 검은 떡 한 조각을 던져 주고는 프쉬케를 곳간에 가두었다. 가엾은 프쉬케는 포도주도 없이 그 빵을 먹고는 싸늘한 곳간에서 밤새 떨었다. 다음날 아프로디테는 또 하나의 일감을 주었다. "저기 숲, 물가로 길게 나앉은 숲을 보아라. 주인 없는 양떼가 있을 것이다. 가서 보면 알 테지만 털이 모두 금빛이다. 냉큼 가서 한 마리 한 마리의 털을 한 줌씩 뽑고 이것을 모두 모아 오너라. 한 마리라도 빠뜨리면 경을 칠 줄 알아라." 프쉬케는 물가로 내려갔다. 하지만 양의 수가 너무 많았다. 며칠 동안 뽑아도 다 뽑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하염없이 눈물만 떨구고 있는데, 강가의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가만히 들어 보니 강의 신이 갈대를 흔들면서 프쉬케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모진 시험에 걸리신 아가씨, 강을 건너려고도 마시고, 저 무서운 양떼에게 다가갈 생각도 마세요. 떠오르는 해의 정기를 받고 있을 동안에는 저것은 여느 양이 아니라 인간을 뿔로 찌르고 발길로 걷어차는 무거운 짐승이랍니다. 그러니 한낮의 태양이 양떼를 나무그늘로 보내면, 내가 양떼를 그 그늘에서 쉬게 할 테니 가만히 있기나 하세요. 내가 도와 드리지요. 해질녘이 되시거든 다시 이리 나오세요. 그러면 덤불과 나무 둥치에 양털 견본이 가득 걸려 있을 테니, 그것을 거두어 가시면 됩니다." 강의 신의 도움으로 프쉬케가 양털을 거두어 갔지만 아프로디테의 앙칼진 호령은 여전했다. "미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네가 아느냐? 한번 눈밖에 난 것은 미운 짓을 해도 미워지고 예쁜 짓을 하면 더 미워지는 법이다. 내 너에게 또 일을 맡기겠다. 여기 상자가 하나 있으니 가지고 저승으로 내려가 저승의 왕비 페르세포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제 주인이신 아프로디테 여신께서 얼굴 단장에 필요한 단장료(丹粧料)를 조금 나누어 주셨으면 하더이다. 몸져누우신 아드님을 돌보시느라고 그 아름답던 얼굴이 조금 수척해지셨다고 하더이다.' 알겠느냐? 한 자 한 획도 틀림없이 전해야 한다. 심부름을 반 듯하게 해야 한다. 나는 오늘도 신들의 잔치에 나가야 한다. 네가 단장료를 가져와야 그걸 얼굴에 찍어 바르고 갈 수 있을 테니, 심부름에 착오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득한 옛날에는 문자가 없었다. 그래서 심부름꾼은 주인이 하는 말을 단어 하나도 틀리지 않고 외고 가야 했다. 프쉬케는 그제야 죽을 때가 온 것을 알았다. 제 발로 걸어 저승에 간다는 것이 곧 죽는 거임을 프쉬케가 모를 리 없었다. 프쉬케는 천길 낭떠러지 위에 있는 첨탑으로 올라가 거기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곧 저승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느 ㄴ것 또한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프쉬케가 막 뛰어내리려고 하는데 형상이 없는 목소리가 이렇게 말했다. '여러 번 신들의 가호를 입은 그대가 이렇게 목숨을 끊어 이제껏 도와 주던 신을 슬프게 하고 이제껏 미워하던 신을 즐거게 해서야 되겠는가." 목소리의 임자는 이어서 저승으로 가는 길, 저승의 문을 지키는 머리가 셋 달린 개 케르베로스 옆을 무사히 지나는 방법, 그리고 되짚어오는 길을 소상하게 일러 주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페르세포네가 그 상자에 단장료를 넣어 주거든 고이 품고 나오되, 절대로 뚜껑을 열어 보아서는 안 된다. 그대는 인간이다. 여신들의 단장료를 너무 궁금하게 여기지 않도록 하여라." 프쉬케는 그 목소리의 임자 덕분에 무사히 저승에 이르러 페르세포네를 배알할 수 있었다. 프쉬케가 아프로디테 여신의 말을 한마디도 틀리지 않게 전하자 페르세포네가 말했다. "나와 아프로디테 여신 사이에는 풀어야 할 감정의 매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찮은 것으로 내 속을 보이고 싶지는 않구나." 그러고는 프쉬케에게 편한 자리와 맛있는 음식을 권했다. 그러나 프쉬케는 이를 사양하고 죄인에게는 거친 자리, 하찮은 음식이 오히려 죄값을 무는 보람이라고 했다. 게다가 프쉬케는 잠시 다니러 저승에 간 사람은 무엇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이윽고 상자는 뚜껑이 닫힌 채 페르세포네의 손에서 프쉬케의 손으로 넘어왔다. 프쉬케는 가던 길을 되짚어 다시 태양이 비치는 곳으로 나왔다. 그러나 인간은 역시 어쩔 수 없는가, 아니면 여성은 어쩔 수 없는가? 프쉬케는 호기심을 이겨 낼 수가 없었다.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감히 신들의 단장료를 가지러 저승에까지 갔던 내가 아니냐? 내가 고생을 사서 하는 뜻은 다 신랑을 찾고자 함인데, 단장료의 힘을 빌려 신랑의 눈길을 조금 끌고 싶어하는 것을 누가 지나친 욕심이라고 할 것인가? 얼굴을 단장하는 것은 여성의 의무이자 권리가 아니던가?" 프쉬케는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 든 것은 단장료가 아니었다. 프쉬케는 상자의 뚜껑을 여는 순간 페르세포네 여신이 하던 말을 떠올렸다. '나와 아프로디테 여신 사이에는 풀어야 할 감정의 매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찮은 것으로 내 속을 보이고 싶지는 않구나......"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얼굴 단장하는데 쓰는 단장료가 아니라 잠의 씨였다. 페르세포네가 저승의 신 하데스의 아내가 된 것도 아프로디테와 그 아들 에로스 때문이었다. 페르세포네는 그때 자기가 당한 것을 앙갚음하느라고 상자에다 단장료 대신 잠의 신 휘프노스에게서 얻어 둔 잠의 씨를 넣어서 프쉬케에게 건네 준 것이었다. 상자의 뚜껑이 열리자 잠의 씨들이 일제히 나와 프쉬케를 쓰러뜨렸다. 급히 그곳으로 날아갔다. 에로스는 신이어서 프쉬케르 덮친 잠의 씨를 모두 거두어 다시 상자에 넣을 수가 있었다. 자의 씨 수습이 끝나자 에로스는 화살 끝으로 프쉬케를 건드렸다. 프쉬케가 깨어나자 에로스는 부드럽게 꾸짖었다. '분수를 몰라서 신세를 망치고 의심을 물리치지 못하여 만고의 고생을 사서 하더니, 이제 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이 꼴이 되다니..... 어서 일어나 내 어머니 신전에 가서 기다리세요. 나는 다녀올 곳이 있으니....." 에로스는 하늘을 가르는 화살처럼 올륌포스로 날아올라가 제우스 대신에게 프쉬케의 죄를 용서해 줄 것을 탄원했다. 제우스 대신은 에로스가 어느새 훤칠한 청년이 되어 제 각시를 걱정하는 것을 어여삐 여긱, 아프로디테에게 청했다. '신들도 의심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는데, 한갓 사람이 그걸 어떻게 다 이길 수 있겠어요? 그만하면 되었으니, 그대가 인간들의 어려운 사랑의 끝도 아름답게 맺어 주듯이 그대의 아들 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도 그 끝을 아름답게 해 주면 좋겠어요. 이는 내가 바라는 것이에요." 아프로디테는 다 자란 아들을 쓸쓸한 눈길로 한동안 바라보았다. 쓸쓸한 눈길로 바라본 것은 아들이 드디어 자기 슬하를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프로디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우스 대신은 발빠르기로 유명한 헤르메스를 보내어 프쉬케를 올륌포스로 데려오게 했다. 프쉬케가 오자 제우스 신은 신들의 음식과 신들의 술을 몸소 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프쉬케여, 마음이여, 이것을 먹고 마시어 내가 베푸는 불사의 은혜, 영원히 사는 은혜를 얻으라. 네가 설 자리를 네가 든든하게 다지고 지혜로써 너를 지켜라. 너는 이제 불사의 몸이 되었으니 신랑 에로스도 이 인연을 끊지 못할 것인즉, 이 혼인은 영원하다." 에로스와 프쉬케는 이로써 하나로 맺어졌다. 아프로디테가 육체를 사랑했기 때문에 '아프로디테 포르네(음란한 사랑의 여신)'라고 불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프로디테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보라, 그 아들인 에로스는 '프쉬케(마음)'를 사랑하여 마침내 사랑을 한 단계 드높이지 않았는가? 마침내 인간이 본바아야 마땅한 사랑의 본보기를 보이지 않았는가? 에로스와 프쉬케 사이에서 딸이 태어난다. 이 딸의 이름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기쁨'이다. '사랑'과 '마음'이 짝을 이루니 그 딸이 '기쁨'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사랑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의심이 자리잡은 마음에는 사랑이 깃들이지 못한다는 말.. 즉 의심이 자리잡은 마음'프쉬케'에게 나 사랑'에로스'는 깃들수 없단 말이오"란 말에 감동 했죠....




좋은 답변 됐기를 바랍니다.

by.
하얀구름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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