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 대해ㄱㅡ

이탈리아에 대해ㄱㅡ

작성일 2008.11.17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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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까지 사회 숙제로 자신이 가보고 싶은 나라 정해서

4절지에 정리해서 만들어오라 했는데...

이탈리아에 대해 알려주세요~~

내공냠냠은 사절인거 알죠?? 신고들어갑니다.

제발요요요요요요요요요요~~갈켜주333

10분뒤에 볼께여

Please~~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유럽 중남부의 산지가 많은 나라.

국기
지도
지중해를 향해 남동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시칠리아 섬과 사르데냐 섬을 포함한다. 북쪽으로 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슬로베니아 등과 이웃하고 있다. 동쪽으로 아드리아 해를 사이에 두고 발칸 반도와, 남쪽으로는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북아프리카와 마주보고 있다. 수도는 로마이다. 면적 301,333㎢, 인구 57,033,000(2003 추계).

자연환경

지형

이탈리아 카라라 근처 아펜니노 산맥에서 채석한 고급 대리석을 ...
흔히 '아피아 가도(街道)'로 불리는 비아아피아(Via Appia) 도로변에 줄지어 ...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가르다 호수, 오른쪽(동쪽) 시가지는 말케신 ...
산지가 많은 편이어서 700m 이상의 산지가 35%를 차지하며 구릉지대가 42%, 나머지 23% 정도가 평지이다. 북쪽 국경 지역의 알프스 산맥과 이탈리아 반도 전체와 시칠리아 섬의 골격을 이루는 아펜니노 산맥이 주요 산계를 이루며, 반도의 서쪽에 있는 사르데냐 섬과 프랑스령 코르시카 섬 역시 또 다른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알프스 산맥이 제노바 만의 사보나 부근 카디보나 고개에서 시작해 아드리아 해의 트리에스테 북쪽까지 동서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서부 알프스, 중부 알프스, 동부 알프스의 세 지역으로 나뉜다. 가장 높은 지대는 석탄기에서 페름기(2억 2,500만∼3억 4,500만 년 전)에 이르는 풍화된 헤르니시아계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900m 이상의 험준한 봉우리들이 솟아 있다. 제4기(160만 년 전)에 빙하의 침식을 크게 받은 골짜기에는 아직도 1,000여 개의 빙하가 남아 있으나 최근 50년 동안 100개 이상이 사라지는 등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 빙하작용). 높은 산지와 포 강 유역 사이의 2,500m 미만의 알프스 산맥 사면 지역은 주로 석회암과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하동굴과 복류천 등의 카르스트 지형이 나타난다. 아펜니노 산맥은 카디보나 고개에서 시칠리아 섬까지 1,192km에 걸쳐 있으며 끝의 너비는 32km, 중심부의 너비는 192km이다. 북부는 사암과 석회암토, 중부는 석회암과 돌로마이트, 그리고 남부는 석회암과 헤르시니아계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의 화산활동은 플라이오세와 제4기에 시작된 것으로 나폴리 근처의 캄피플레그레이, 베수비오 산, 에올리에 제도, 시칠리아 섬의 에트나 산 등이 대표적이다. 콜리에우가네이의 온천과 비테르보의 진흙온천, 포추올리의 가스 분출 등도 화산활동의 영향이다. 지진 등의 지각활동은 알프스 산맥과 포 강 유역에서는 드물고, 아펜니노 산맥의 구릉지역과 시칠리아 섬에서 간혹 강하게 나타난다.

포 강 유역과 풀리아 평야는 오래 전 바닷가에 형성되었던 만에 충적토가 쌓여 이루어진 것이며 레체 평야는 해수침식에 의해서 평평하게 된 지역이 융기한 것이다. 키아나 계곡 평야는 구조분지에 충적토가 쌓여서 형성되었다. 규모가 가장 큰 포 강 평야는 4만 3,520㎢를 차지하며 대부분 해발고도 100m 미만으로서 포 강과 그 지류인 레노·아디제·피아베·탈리아멘토 강을 따라 펼쳐져 있다. 그밖에 알프스 산지의 산록지역은 적색양토가 주종을 이루고, 계단경작을 하고 있으나 농업생산성은 좋지 않은 편이다. 이러한 구릉지 아래쪽의 평지는 집약적 경작지나 동계 목축지로 쓰일 수 있는 비옥한 땅으로서 하천으로부터 농업용수 공급이 가능하다. 다른 평야지대로는 토스카나와 라치오의 간척지, 아그로폰티노, 캄파니아·풀리야 평야 등이 있고, 시칠리아 섬의 카타니아 평야에서는 레몬 재배가 활발하다. 토스카나에서 캄파니아에 이르는 해안을 따라서 사구와 모래해변이 길게 분포하며, 리미니에서 몬팔코네로 이어지는 포 강 삼각주에는 석호가 많이 나타난다. 그외의 지역에는 암석해안이 발달되어 있다.

수계

포 강(640km)이 가장 길며 대부분의 다른 하천은 길이가 짧고 이오니아 해와 아드리아 해로 유입된다. 티레니아 해로 흘러드는 강은 볼투르노· 테베레· 아르노 강 등으로 길고 수량도 많은 편이다. 토리노·크레모나 등의 주요도시를 거쳐 흐르는 포 강은 몬비소 산에서 발원하여 롬바르디아 평원을 흐르며 지류와 합쳐지면서 규모가 커져서 베네치아 남쪽으로 넓은 삼각주를 형성한다. 2번째로 긴 강인 아디제 강은 베로나를 거쳐 아드리아 해로 유입된다. 남부 하천은 겨울에 홍수를 일으키는 반면, 여름에는 갈수현상이 나타난다. 중부와 북부의 하천은 겨울에 상류가 동결되어 갈수현상이 나타나며 봄에는 융설수(融雪水), 가을에는 강우에 의해 수량이 풍부해진다. 1,500여 개의 호수가 있으나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하며 규모가 작다. 제4기 때 형성된 빙하호가 대부분으로 수력발전에 이용된다. 규모가 큰 것으로는 가르다· 마조레· 코모· 이세오· 루가노 호 등이 있다.

토양

다양한 기후조건과 고도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의 토양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은 흑갈색 포드졸토(土)로 강우량이 많은 100m 이상의 알프스 지역에 분포한다. 아펜니노 산맥에는 포드졸화된 갈색토양이 삼림과 목초 지역에 덮여 있다. 또한 갈색의 지중해성 토양도 있어 농경에 적합하다. 테라로사는 석회암 적색토로 남부의 풀리아와 베네치아 등지에서 포도·올리브 경작에 이용된다. 철분을 함유한 점토로 구성된 적색양토(페레토)도 있다.

기후

온대지역에 속하지만 반도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기 때문에 다양한 기후가 나타난다. 알프스 산맥은 서풍과 북풍을 부분적으로 막아주며 북부평야와 아펜니노 지역은 다양한 기후를 보인다. 사르데냐 섬은 대서양, 시칠리아는 아프리카의 바람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대체로 겨울에는 지중해성 저기압, 여름에는 알프스성 저기압, 가을에는 대서양성 저기압과 동시베리아 고기압이 이탈리아 기후를 지배한다. 최북단인 알프스 지역은 대륙성 산악기후로 기온이 낮은데, 동부와 서부를 비교하면 동부는 강우량이 1,053㎜, 평균기온은 6.6℃이고 서부는 각각 660㎜와 7.4℃를 나타낸다. 가을과 늦겨울에는 (Fohn)이라는 고온건조한 바람이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 불어온다. 적설량은 서부가 동부보다 많다. 포 강 유역은 여름에 덥고 겨울에 몹시 추우며 내륙지역이 동부 해안보다 기온차가 극심하다. 여름과 겨울의 평균기온이 각각 23℃와 0.3℃이다. 강우는 봄·가을에 집중되며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증가한다. 연평균기온은 15℃ 내외이고 강우량은 660㎜ 정도이다. 아펜니노 산맥지역은 고도에 따라 평균기온이 15.3℃ 내외이며 평균강우량은 947㎜가량이다. 아펜니노 산맥이 찬 북풍을 막아주며, 동부가 더 온난하고 강우량이 많다. 칼라브리아와 시칠리아 섬은 지중해로 둘러싸인 산악지역으로 본토보다 기온이 높다. 평균기온과 강우량은 칼라브리아가 18.2℃와 569㎜이며, 시칠리아 섬은 18℃와 970㎜이다. 고온다습한 시로코(sirocco)는 아프리카에서 불어온다. 한편 사르데냐 섬은 북서쪽으로부터 한랭한 미스트랄(mistral)과 남동쪽으로부터 시로코 국지풍의 영향을 받는다.

동·식물

식물분포는 자연환경에 따라 다양한데, 크게 알프스 산맥, 포 강 유역, 지중해 아펜니노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알프스의 롬바르디아 호수 근처에서는 상록코르크참나무·유럽올리브·사이프러스 등이 대표적이며 고도가 높아질수록 잎갈나무와 독일가문비가 많이 나타난다. 포 강 유역에는 인공조림이 많고 수분이 많은 곳에서는 포플러가 지배적이다. 고산지에는 스코틀랜드소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지중해 지역은 코르크참나무와 알레포소나무가 대표적인데, 이탈리아 남부의 고지에서는 밤나무·참나무·화이트포플러 등이 주요식생이고, 칼라브리아에는 자작나무·전나무·소나무가 자란다. 아펜니노 산맥의 지중해 쪽은 마키아라는 관목이 많고, 시칠리아에는 파피루스가 흔하게 자란다.

알프스 산맥에는 마못쥐·어민족제비류·산토끼·야생염소·갈색곰·여우·늑대 등이 서식하고 있다. 조류는 멧닭·검독수리 등이 있고 사르데냐 섬에는 다마사슴·무플론양·멧돼지 등이 서식한다. 어류는 철갑상어류·뱀장어류와 남부의 식인백상어·참다랭이 등이 있다.

국민

인종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데 19세기 후반부터 국내에서의 이주에 따라 변화가 있었다. 북부에서 남부로 갈수록 두골(頭骨)의 비율이 줄어들어서 포 강과 알프스 지역에는 단두형(短頭形)이, 남쪽에서는 장두형(長頭形)이 많고 신장은 북부에서 남부로 갈수록 작아지는 경향을 보여 사회적·경제적 환경이 반영되고 있다. 이탈리아어가 보편적으로 쓰이나 남티롤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볼차노·피에몬테·롬바르디아·베네치아에서는 부분적으로 독일어라딘어를 사용하며, 트리에스테에는 슬로베니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발레다오스타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소수언어집단을 이루는 프리울리어와 사르데냐어는 1992년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1929년 라테란 조약에 따라 로마 가톨릭교를 국교로 삼았으나, 1984년 국교로서의 지위가 종결되면서 공립학교에서의 의무적 종교교육이 폐지되고 교회에 대한 국가의 재정적 지원도 감소했다. 실질적인 가톨릭교도의 수는 줄고 있으나 국민의 90% 이상이 자신을 로마 가톨릭교도라고 밝힌다. 나머지 대부분은 종교가 없거나 개신교도이다. 이밖에 유대교와 동방정교회가 소수를 차지하며, 최근 제3세계에서 온 이민자중에는 이슬람교도가 가장 많다.

인구동향

이탈리아의 인구는 여러 세기에 걸쳐 많은 변화를 겪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14세기 중엽 흑사병으로 큰 감소를 겪은 이후 오랜 기간 지속되던 증가세가 17세기가 시작되면서 중단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동안 중단된 것을 제외하고 18세기초부터 1860년대 통일될 때까지 완만한 증가세가 이어졌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는 높은 이민율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2배 이상 증가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민율이 가장 높았던 시기에 인구의 자연증가율 역시 높은 경우가 잦았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인구변화 추이는 전반적으로 다른 서구 유럽나라들과 유사하지만, 출생률과 사망률의 감소 현상은 더딘 사회·경제적 발전으로 인해 다른 나라들에 비해 10년 이상 늦게 나타났다. 지역적으로 보면 남부와 북부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대체로 북부에 비해 남부가 출생률이 높고 가족규모도 크며, 사망률은 의료수준의 발달과 높은 청년층의 비율로 남부가 북부보다 약간 낮다. 몇몇 북부 지역에서는 사망률에 비해 출생률이 급격히 낮아짐에 따라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통일 이후 인구의 국내이동은 '남부에서 북부,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하는 일정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파시스트 정권기에는 허가를 받아야 이주가 가능했기 때문에 인구이동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제2차 세계대전후 이탈리아는 유례없는 경제성장기에 접어들었고, 도시지역의 급격한 산업화는 농촌지역의 노동자들을 강하게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특히 젊은층에서의 높은 실업률로 인해 농촌지역으로 되돌아오는 인구가 떠나는 인구를 앞지르게 되었다.

1876∼1970년 일자리를 찾아 이탈리아를 떠난 인구는 2,5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1860년대에는 북부지역에서 대서양 횡단 이민이 빈번했는데, 주로 농부·예술가·무역업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1880년대에는 주로 남부 출신의 이민인구가 늘면서 집단적인 현상으로 발전했으며 절반 이상이 미국으로, 나머지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지로 떠났다. 1920년대 미국이 엄격한 이민법을 도입하고 남아메리카의 경제사정이 악화되면서 대서양 횡단 이민이 어려워졌고, 파시스트 정권의 반대와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거의 중단되었다. 1945년 이후에는 프랑스·독일·스위스 등 유럽 국가로의 이민이 주종을 이루었다. 이민 양식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주택부족을 이유로 가족의 입국이 거부됨에 따라 주로 남자 혼자의 이민이 많았으며, 반복적인 단기취업 이민자들도 생겨났다. 1973년 석유 금수조치 이후에는 유럽 국가들의 계속적인 경기후퇴에 따른 실업 증가로 많은 노동자들이 이탈리아로 돌아오고, 이와 함께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로부터의 이민이 늘면서 전입인구가 전출인구를 능가하게 되었다.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되면서부터는 폴란드·루마니아·알바니아·유고슬라비아 등지로부터의 이민이 새로운 조류가 되었는데, 이들은 난민의 지위를 요구하며 아드리아 해의 항구를 통해 입국한 경우가 많았으며, 본국으로 송환된 일부를 제외하고는 내륙지역으로 재배치되었다.

지역구분

이탈리아 국토는 북부·중부·남부·도서 지역으로 나뉜다. 북부의 피에몬테는 프랑스의 영향을 받았으며 통일왕국의 근거지로서 특색이 있다. 리구리아· 밀라노· 베네토 등의 산업도시들은 인구밀도가 높다. 에밀리아로마냐· 마르케· 토스카나· 움브리아· 로마 등이 자리잡은 중부는 농업과 수공업이 발달했으며 르네상스 문화예술이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남부는 나폴리· 캄파니아· 풀리아 등의 도시가 최근에 개발되었다. 도서지역은 사르데냐 섬과 시칠리아 섬으로 레몬 및 포도 재배, 목축, 어업이 주요산업이다.

정착유형

취락형태를 보면 촌락은 교회, 성, 귀족의 저택을 중심으로 발달했으며, 외침에 대비하여 고산지와 경사지를 따라 농촌발달이 두드러졌다. 파사노-베네치아-에밀리아 평야가 농업과 목축업의 주요발달지역으로서 밀·옥수수가 주로 재배되고 사탕수수, 포도, 기타 과일도 재배된다. 고립되어 분포하는 아펜니노 산맥의 촌락들은 토양이 척박하여 북부지역으로의 이동이 많고 관광업과 도자기를 비롯한 수공업이 주된 경제활동이다. 나폴리의 캄파니아 평야는 토질이 좋고 관개조건도 양호하여 생산성이 높으며 야채가 주요작물이다. 시칠리아 섬은 분산촌락을 이루며 밀·포도·올리브 등이 재배되고 목축지도 넓다. 사르데냐 섬의 촌락은 내륙에 분포하며 목축과 임업이 주요산업이다. 반수 이상의 도시가 해안에 분포하고 인구 100만 명을 넘는 경우가 많다. 포 강 유역에는 상업이 발달한 밀라노·파비아·크레모나 등의 도시가 위치하며 해안도시로는 사보나·제노바·나폴리·메시나·팔레르모·안코나·베네치아가 대표적이다. 대도시는 밀라노·나폴리·로마·토리노·제노바·피렌체·팔레르모·볼로냐 등이다.

경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취약한 경제상태에 있던 이탈리아는 유례없는 발전을 거듭하며 경제강국으로 발전했다. 높은 2차산업 비중과 자유무역 정책에 힘입어 제조업 수출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 산업화). 1963년 이후 주춤하던 이탈리아 경제는 1973년 원유가격 상승 이후 하향세를 보였으나, 1980년대 후반에는 다시 번영을 누렸다. 다른 서유럽 국가에 비해 공공부문이 광범위하게 발달해 있는데, 주요 국가지주회사로는 산업부흥공사(IRI)· 탄화수소공사(ENI)· 기계공업투자공사(EFIM)가 있다. IRI는 은행업·고속도로건설·방송·통신·제조업·공업·조선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사업부문을 거느리고 있다. 천연가스와 유전탐사, 새로운 에너지 자원 개발을 위해 설립된 ENI는 섬유, 핵 에너지, 화학공업 등에도 관여한다. 이밖에도 에너지의 생산과 분배, 도로망과 대부분의 철도망 등을 정부가 관리한다. 국가지주회사 제도는 정부기관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국가의 중앙계획 역량을 약화시켰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분의 불균형 외에 대기업과 다수의 중소기업 간에도 불균형을 이루어 민간부분에서 소수의 대기업과 다수의 중소기업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가족경영의 형태를 띠며, 대규모 생산시설은 줄고 소규모화·전문화된 생산시설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한편 전후 정부는 남부의 경제·산업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1950년대초의 토지개혁을 비롯해 개간·관개 사업, 사회기반시설 건설, 전기·수도 공급 등을 지원했으나 별 실효를 거두지 못했고, 이후 몇몇 지역에서의 중공업 지원 계획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80년대 중반이후 착실한 경제성장률을 유지했다. 임금인상이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해 왔으며, 공채가 꾸준히 증가해 1991년에는 국내총생산(GDP)을 초과하기도 했다. 또한 EC 내의 통화자유화 움직임에 맞추어 점차적으로 통화에 대한 제한을 폐지했다. 한편 최근 이탈리아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는 직접세 징수의 비효율성에 있다. 이탈리아는 공화국 수립 이후 공공사업과 공기업의 재원을 공채에 의존해 왔으며, 1970년까지 많은 국민들이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1980년대 여러 차례 간접세가 인상되었지만 직접세 징수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저항에 부딪혔다. 일련의 세무 사면 조치들 역시 기업들이 거의 호응하지 않아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자원

이탈리아 반도는 지질학적으로 비교적 최근에 생성되었기 때문에 광물, 특히 금속함유 광물이 별로 없다. 출토되는 광물들도 질이 낮고 양이 적으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연자원의 부족으로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전환이 늦어졌으며, 특히 철광석과 석탄의 부족은 기계·철도 등 사회기반시설 건설에 필수적인 철강생산을 지체시킴으로써 산업발전을 저해했다. 국내 철광석 생산의 절반은 엘바 섬에서 산출되고 발레다오스타의 알프스 지역에서도 생산되지만, 1984년 이래 철을 함유한 원광은 거의 생산되지 않았다. 석탄은 주로 사르데냐와 토스카나에서 소량 발견되지만 질이 낮다. 1972년 사르데냐의 광산이 폐쇄된 이후에는 거의 채굴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석탄을 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 등지에서 수입한다. 이탈리아의 광물생산은 암염·석유·천연가스를 제외하고는 1980년대에 점차 감소했다. 1970년대까지 황철석·석면·형석·소금의 주요 생산국이었고 알루미늄·황·납·아연의 자급이 가능했으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자급조차 불가능하게 되었다. 연료 자원 역시 급증하는 국내수요를 충당하지 못해 수입에 의존한다. 주로 북부지역에서 산출되는 천연가스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이밖에 세계적으로 알려진 대리석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력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수력발전은 20세기말에는 그 비중이 1/5 정도로 떨어졌다. 수력발전으로 생산되는 전력의 70% 이상이 알프스 지역에서 생산된다.

농수산업

1950년 토지개혁으로 대부분 소수 귀족 소유였던 농경지가 재분배되고 많은 농장들이 생겨남에 따라 많은 노동력을 흡수할 수 있게 되었으며 토지이용의 효율성도 높아졌다. 그러나 농촌사회의 사회구조를 파괴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높은 인구밀도로 인한 국내수효를 충당하기 위해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다. 지형과 기후가 매우 다양한 이탈리아는 경작지중 1/4만이 평지이고 계단식농업·관개 등을 통해 산지에서 농경이 폭넓게 이루어진다. 일년 내내 비교적 강수량이 고른 포 강 유역이 가장 비옥하다. 무솔리니의 밀 자급운동 이래 농경지가 크게 감소했다. 전통적으로 파스타용 경질밀은 남부에서, 빵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영질밀은 북부에서 주로 재배된다. 적합한 토양과 기계화로 인해 북부의 생산량이 남부의 3배에 이른다. 포강 평야에서 쌀과 옥수수가 재배되며 쌀은 수출된다. 이외 주요 작물로 토마토가 있는데, 재배기술의 향상으로 최근 토마토 경작지가 2배 이상 늘었으며 생산량은 4배로 늘었다. 주요 수출 농산품으로 올리브와 포도가 재배된다. 양·돼지·소·염소·닭 등이 사육되지만, 육류생산이 전통적으로 미약하며 유제품 생산도 북부지역에 한정되어 있어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버터가 국내수요를 충당할 정도이고 몇몇 치즈는 수출용으로 생산된다. 특히 북부지역에서의 돼지사육이 크게 증가했다. 소가죽을 이용한 가죽산업 또한 유명하다. 이탈리아의 숲은 과거 과도한 벌목으로 수난을 당했으나 재식림에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회복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목재가 국내에서 소비된다. 1980년대 어업생산량이 증가했지만 수입으로 국내수요를 충당한다. 80%가 지중해와 북해에서, 10%가 대서양에서, 나머지 10%가 내수면 어업으로 이루어졌으나, 남획과 오염으로 인해 지중해의 어획고가 크게 감소했다.

산업

광업은 이탈리아 경제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부분으로 1980년대 후반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약 3%에 불과했다. 건축재료와 비료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북부지역을 기반으로 한 석회·백악과 화강암·대리석의 채굴업이 꾸준히 성장했다. 반면 1980년대 후반 철광석·망간·아연·마그네슘·활석·흑연·석탄 등의 채굴은 쇠퇴했다. 주요연료는 석탄 대신 점차 석유와 천연가스로 대체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는 미국의 마셜 플랜과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및 유럽경제공동체(EEC)의 설립, 풍부한 노동력 등을 바탕으로 제조업 특히 제조업 수출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두었다. 1950년대초부터 제철공업이 경제성장의 선도적 역할을 했으며, 이를 기초로 무기류, 섬유기계, 자동차(피아트·알파로메오), 가전용품 등의 산업이 급성장했다 (→ 강철). 중세부터 이탈리아의 중요 산업이었던 섬유산업은 모·견직물 이외에 현재인조합성섬유·면직물·황마 등이 생산되고 있다 (→ 텍스타일). 화학산업은 비료나 살균제 등에 한정되어 있었으나 석유·천연가스가 발견되면서 석유화학공업으로 폭이 넓어졌다. 서비스 산업은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관광업, 호텔산업, 식당, 교통·통신, 금융·공공 서비스 등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서비스업 종사자는 전체 노동인구의 절반을 훨씬 넘는다. 풍부한 노동력뿐 아니라 생활수준의 향상이 서비스 사업의 발달에 기여했다. 관광업은 해외관광객의 감소로 1987년 이후 침체된 상태이다.

금융

금융·은행 제도는 전체적으로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유사하지만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통화정책은 부처간신용저축위원회에서 결정하지만, 사실상 중앙은행인 이탈리아은행이 광범위한 재량권을 가지며 경제정책 수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은행과 신용기관은 3개 유형으로 나뉘는데, 3개 국영은행을 비롯한 상업은행, 주·지역 단위로 구성된 특수한 범주에 속하는 저축은행, 채권발행으로 산업·공공사업·농업 등에 중·장기 자금을 공급하는 투자기관이 그것이다. 1990년 은행법에 따라 은행의 공영성을 낮추고 외부자본의 비율을 늘였으며, 자본의 흐름을 규제하는 모든 요소들을 폐지했다. 이밖에도 다양한 종류의 신용기관들이 있다. 채권시장은 활발하나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자본시장과 주식시장은 낙후되어 있다. 투자신탁회사의 발달도 저조한 편이다.

무역

지중해로 길게 뻗어 나와 있는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동유럽·북아메리카·중동 등과의 무역에 유리했다. 냉전과 1991년의 페르시아만 전쟁 등 정치적 긴장이 고조된 기간에도 동유럽 국가들은 물론 리비아, 팔레스타인과의 실질적 관계를 유지했다. 또한 EC 가입은 무역에서의 잠재력을 한층 높여 빠른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 유럽 연합). 1957년 이후 늘기 시작한 무역적자를 관광수입과 이민자의 송금 등 무역외수지로 메워왔으나, 1987년부터 관광수입이 줄면서 무역적자를 가중시켰다. 무역에서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인 분야는 섬유·식료품(올리브유·포도주·과일·토마토)·공산품 등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에는 자동차를 비롯한 철강·기계공업 부분이 급성장해 1989년에는 전체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주요수입품은 철강·기계·화학 제품 등이다. 또한 주요 에너지 수입국으로 석유 대부분을 러시아와 중동에서 수입한다. 이외에 자동차·광물 등이 수입된다.

교통

역사적으로 이탈리아와 지중해 연안 나라들의 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해상교통이었다. 유일한 내륙수로는 포 강이다. 해안선을 따라 수많은 항구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수입의 90% 이상, 수출의 65% 이상이 해운을 통해 이루어진다. 주요 항구는 베네치아·칼리아리·치비타베키아·피옴비노·제노바·아우구스타·트리에스테·바리·사보나·나폴리·리보르노 등이다. 정기 여객선이 시칠리아와 사르데냐, 그밖에 작은 섬들과 본토를 연결한다. 이탈리아 전역에 걸쳐 철도망이 잘 갖추어져 있으나, 남부 노선에 비해 북부 노선의 횟수가 잦고 더 빠르며 전철화·복선화가 잘 되어 있다. 철도의 발달이 공업화 속도를 따르지 못해 다른 유럽 노선에 비해 화물수송이 적은 반면 정부의 보조로 저렴한 여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객 수송이 많다. 전체 철도망의 80%를 국가가 운영한다. 국제선을 통해 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독일 등지로 연결된다. 최근 화물수송을 분담함으로써 도로의 혼잡을 완화하고자 철도의 광범위한 현대화가 진행되어 전철화·복선화된 구간이 늘고 차량도 개선되었다. 도로망은 고속도로·국도·주도·지역도로 등 4개 범주로 구분된다. 30년 사이에 고속도로망이 크게 확장되어 유럽에서 독일 다음 가는 나라가 되었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중심축은 스위스 국경 부근에서 출발하여 밀라노·볼로냐·피렌체·로마를 거쳐 이탈리아 반도 남단의 레조디칼라브리아에 이르는 노선과 브레네르 고개에서부터 아드리아 해안을 따라 바리와타란토에 이르는 노선이다. 북부지역에는 도로망이 조밀하여 토리노-밀라노-베네치아-트리에스테를 연결하는 동서축이 볼로냐와 제노바에 연결되며, 이밖에 아펜니노 산맥을 가로질러 로마와 페스카라, 나폴리와 바리가 동서로 연결되어 있다. 도시 간선도로들의 체증문제로 인해 일부 도시에서는 차량통행이 많은 시간에 도심지로 들어오는 차량의 수를 제한하는 방법이 도입되었다. 화물수송 분담률이 낮은 항공의 경우 항공운송의 80% 가량이 밀라노와 로마에 집중되어 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국제공항이 밀라노 부근에 있으며, 그밖의 지역 공항들은 다른 유럽 나라들에서 휴가 여행객들이 몰려드는 관광 성수기를 제외하고는 국내선용으로 이용된다. 국영항공사인 알리탈리아항공 이외에 몇몇 소규모 항공사들이 국내선을 운항하고 있다.

정치·사회

정치

피에몬테·사르데냐의 카를로 알베르토 국왕이 1848년 만든 헌법은 이후 100년동안 이탈리아 헌법의 모체가 되었다 (→ 알베르티노법). 1948년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바뀐 뒤 헌법의회가 답변확정되었으며 헌법재판소가 독재정부를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 15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에 의해 국가법과 지방법의 적법성, 중앙정부기관간의 갈등, 국회에 의해 제소된 사항, 국민투표 실시여부의 결정 등이 다루어지고 있다.

의회는 2원제로 상원과 하원은 동등한 권한을 행사한다. 그러나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연령제한이 각각 달라서 상원은 만 25세 이상의 선거인이 선출한 만 40세 이상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하원은 만 18세 이상의 선거인이 선출한 만 25세 이상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의원의 임기는 5년이며 체포·수색·형사소추의 면책권을 누리고 있다. 또한 각 위원회를 통해 정부정책에 대한 견제력을 행사한다. 특수사안에 대한 청문회 개최, 예산·결산·승인, 헌법재판소 재판관임명, 대통령임명, 조약비준 등도 의회의 고유사항이다. 모든 법률은 대개 비밀투표에 부쳐져 양원을 통과해야 하며 대통령이 공포한다. 대통령은 그 법안에 이의가 있을 경우 법안재심의(法案再審議)요구를 1회에 한해서 할 수 있다.

대통령은 7년 임기이며 양원의 대표와 지방의 대표가 모인 가운데 2/3 이상 지지로 50세 이상의 국민 중에서 선출된다. 대통령 부재시에는 상원의장이 대리한다. 대통령은 그밖에도 5명의 종신상원의원, 5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국무총리를 임명하며 의회에 권고하여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무장관은 양원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지방행정단위는 지방· 주· 코뮌으로 나누어지는데, 지방은 보통 성격을 지닌 15개의 피에몬테·롬바르디아·베네토·리구리아·에밀리아로마냐·토스카나·움브리아·마르케·라치오·아브루치·몰리세·캄파니아·풀리아·바실리카타·칼라브리아와 특별자치 성격이 강한 시칠리아·사르데냐·트렌티노알토아디제·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발레다오스타 등이 있다. 지방의 주기능은 중앙정부의 업무를 위임받아 처리하는 것으로 광범위한 행정업무 처리권 이외에도 입법기능과 과세권을 가진다. 자치는 중앙정부의 통제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최소단위의 지역정부인 코뮌은 단체장을 선출하여 광범위한 행정분야에서 자치권을 행사한다. 중간단위인 주는 기본적으로 그 기능이 코뮌과 유사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례대표제 방식을 유지했던 선거제도는 1993∼95년에 소선구제와 비례대표제를 절충하는 형식으로 변화되었으며, 국회·지방·주·시 선거가 각기 다른 방식의 혼합선거제로 치러진다. 이탈리아는 기독교민주당(DC)과 이탈리아 공산당(PCI)이 주도하는 복수정당제로, 주로 DC가 다른 좌파 혹은 중도파 정당들과 연립해 집권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초 부패와 파문에 연루되어 DC를 비롯한 대부분의 정당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당들로 대체되었다. 이에 따라 중도정당이 장악해 온 정계는 포르차이탈리아(전진이탈리아당)· 북부동맹· 국민연합이 주도하는 우파 정당과 PCI에서 좌파민주당으로 개명한 좌파 정당으로 양분되었다. 노동조합의 결성을 헌법에 의거하여 보장하고 있으며 파업의 권리도 있다. 18세 이상 된 시민은 선거권이 있고 투표참여율은 높은 편이다. 청원과 국민투표 요청권도 보장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사법부는 여러 법원들로 구성되는데, 특별재판소로는 행정재판소와 군법회의가 있고 대법원에서는 법률상의 쟁점에 대해서만 판결한다. 로마 법에 기초를 둔 이탈리아 법은 제1·2차 세계대전을 통해 수정되었다.

군사

이탈리아는 세계에서 국방비 지출이 많은 나라 중의 하나이며, 군대는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는다. 1949년 NATO에 가입하여 연합지휘권의 일부가 이탈리아 군대로 이양되었다. 징병제를 답변확정하고 있으며 대통령이 군사통수권을 가진다.

교육

헌법은 예술·학문·교육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을 보장하며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를 지원한다. 6∼14세의 초·중등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며, 고등학교는 미술학교·음악학교·사범학교·전문학교·직업학교 등이 있어 다양한 취업교육기회를 제공한다. 대학은 4∼6년제로 고등학교를 마친 사람에게 자동적으로 대학입학 자격이 주어진다. 대부분의 학교와 대학을 국가가 운영하며 14% 정도만이 사립학교에 다닌다. 볼로냐대학교는 이탈리아 및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에 속한다.

보건·사회복지

헌법에 의거하여 모든 국민은 사고·부상·노령·실직으로 일할 수 없을 경우 사회보험혜택을 받는다. 1980년에는 종합국가의료 서비스와 의료보험이 도입되었다. 각 지역에는 공중보건을 담당하는 의사가 있다. 1960년대에는 무주택자가 많았으나, 1971년 택지확보를 위한 법이 제정되고 임대주택의 구매를 손쉽게 하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이런 상태가 점차 개선되고 있다. 소수의 인구만이 부를 누리고 유산을 상속받기 때문에 다수의 대중은 가난하다. 또한 지역적으로도 밀라노·토리노·제노바에만 부가 집중되어 있으며 남부의 침체는 문제로 남아 있다.

문화

중앙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통일 후에도 문화적·사회적인 지역주의가 뚜렷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풍요로운 북부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남부를 멸시하는 등 제2차 세계대전 후 산업개발, 외국과의 교류강화, 텔레비전 등 언론매체에 의한 자극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로마 가톨릭의 권위가 떨어져 관심이 약화되고 있고 전통적인 문화보다는 전위적인 예술이 성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문학·예술

이탈리아는 중세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발전의 전진기지였다. 문학의 위대성은 14세기의 단테·페트라르카·보카치오를 통해 꽃피었고, 아리오스토와 타소 이후에 형식주의를 거쳐 비토리오 알피에리, 우고 포스콜로, 알레산드로 만초니, 자코모 레오파르디 등을 통해 낭만주의가 발전했다. 20세기에는 이탈로 스비보 등을 위시로 현실주의를 추구하여 정치적·사회적 분위기를 문학에 표현하고자 했다(→ 이탈리아 문학). 시각예술에서는 조토, 도나텔로, 브루넬레스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티치아노, 베르니니, 티에폴로 등의 위대한 예술가와 건축가가 두각을 나타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미래파의 작품은 조르조 데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회화로 계승되었으며, 건축에서는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은 피에트로 루이지 네르비가 큰 활약을 했다. 음악은 유럽의 정상을 차지하는 수준으로 팔레스트리나·몬테베르디·비발디의 작품과 로시니, 도니체티, 벨리니, 주세페 베르디, 푸치니 등의 오페라가 큰 기여를 했다. 오페라에서 인형극까지 다양한 연극이 제작되었으며 밀라노(라 스칼라 좌)·베네치아의 극장이 유명하다. 제작자로는 조르조 알베르타치, 잔프란코 데 보시오, 주세페 파트로니 그리피 등을 꼽을 수 있다. 영화도 질이 높은 편인데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비토리오 데 시카 등이 신사실주의적 표현을 발전시켰으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페데리코 펠리니 등은 사실주의에 상상적 표현을 곁들이는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문화기관

주요학술원으로는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린체이 국립학술원, 크루스카 학술원 등이 유명하다. 이탈리아 노스트라 협회는 전통적인 건축물과 경관을 보존하는 데 주력하는 사회단체이다. 지역마다 건축유물이 풍부하고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다. 베네치아의 아카데미아 박물관, 피렌체의 우피치·팔라초피티 미술관, 페루자의 움브리아 국립미술관과 시에나 미술관, 로마의 보르게세 미술관, 카피톨리노 박물관, 바티칸·라테라노 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미술품과 유적들이 풍부하게 전시되어 있다.

축제·스포츠·관광

이탈리아 아말피에 있는 산안드레아 대성당
지역에 따라 의상·음식·축제가 다양하게 발전했으며 종교행사로 부활절, 성모승천일, 성 안토니우스의 축제가 성대하다. 지역축제로는 나폴리의 피에디그로타 축제, 아브루치 지방 코쿨로의 성 도미니쿠스 축제, 시에나의 코르소 델 팔리오('기의 행진'이라는 뜻) 등이 있다.

스포츠로는 자전거경기와 축구경기, 몬차에서 열리는 자동차경주, 토리노의 마르티니 펜싱 경기가 유명하다. 이탈리아 전역이 관광지라 해도 과언은 아니나 특히 외국인은 로마·베네치아·피렌체·나폴리를 많이 찾는다.

언론·방송

1976년 독립적인 지역 방송국의 설립이 합법화된 이후 신문과 잡지의 수가 줄어든 반면 상업 방송과 라디오 채널이 크게 증가해 1976년 70개였던 방송사의 수가 1991년에는 1,000개 가까이 되었다 (→ 텔레비전). 방송은 국영인 RAI의 3개 채널 외에 3개 상업방송 채널이 주도한다. 주요 중앙 일간지로는 자동차회사인 피아트사가 이끄는 조합에서 발행하는 〈코리에레 델라 세라 Corriere della Sera〉와 1976년 독립지로 출발해 현재 몬다도리 출판사가 소유하고 있는 〈레푸블리카 La Repubblica〉가 있다. 문화적으로 지역적 특성이 강한 이탈리아에서는 특히 지역·지방 신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80년대 신문의 발행종수는 줄었지만 발행부수, 특히 지역신문의 발행부수는 증가했다.

역사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구석기시대에 사람들이 거주했으며, 네안데르탈인의 유적이 발굴되고 있다. BC 2000년경에 시작된 인도유럽인의 이주물결은 BC 1000년까지 이어졌다. BC 900년경부터는 그리스-동양의 큰 영향하에 아르노 강과 테베레 강 사이에서 에트루리아 문명이 꽃피었다. BC 6세기경 로마인들이 에트루리아인들을 몰아내고 로마 공화정을 세웠다. BC 264년에는 갈리아키살피나 남부의 모든 이탈리아 땅이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로마인들은 계속해서 영토를 확장시켜나갔으며, BC 44년에 로마 공화정이 몰락하고 180년에 로마 제국이 탄생할 때까지 브리타니아로부터 아프리카와 유프라테스 강까지 지배권을 세웠다. 로마의 문명이 서구에 남긴 발자취는 선명하여 20세기의 문자·법률·도로·예술 등에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 있다.

4, 5세기에 있었던 이민족의 침략은 마침내 서로마 제국을 붕괴시키고 말았다. 이탈리아의 일부는 비잔틴 제국이 되었으나 그 나머지는 롬바르드족·프랑크족·사라센족·게르만족에게 차례로 약탈당했다. 교황이 한동안 로마의 실질적이고 유일한 권력자였으며, 곧 교황령으로 알려진 영토를 다스리게 되었다. 11세기에 이탈리아 남부를 침입한 노르만족은 그곳에 왕국을 세웠다. 북부에는 도시국가들이 출현하여 정치적·상업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비록 이탈리아는 수세기 동안 정치적으로 분열된 상태였지만 13∼16세기에 서구의 문화적 중심지였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예술적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15세기말에 프랑스의 침입을 받은 후 1550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에 의해 나라의 대부분이 점령당했다. 카를의 손을 거쳐 이탈리아를 차지하게 된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가 18세기초에 이탈리아 북부를 거의 장악하게 될 때까지 지배했다. 그러나 특정 지역은 이 시기에도 자치권을 유지했다. 1796년에 시작된 나폴레옹의 점령이 1815년에 종말을 맞으면서 이탈리아는 또다시 군소국가들로 분열되었다.

19세기에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군주인 사보이 가문의 노력으로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이탈리아 통합운동)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 리소르지멘토).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피에몬테인들은 1861년에 그들의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통치 아래 이탈리아 대부분의 영토를 통합하는 데 성공했으며, 1866년에는 베네치아, 1870년에는 로마 교황령이 합병되면서 하나의 국가가 탄생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베니토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으면서 파시즘이 발전했다.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를 침공하고 1936년에 로마-베를린 동맹을 맺었다. 연합군이 1943년에 이탈리아로 들어오자 무솔리니는 탈출했고, 항복한 이탈리아는 연합군에 합류하여 독일군과 싸웠다. 1946년에 공화국이 선포되고 연립정부는 전후복구에 힘썼다. 경제발전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며, EC와 NATO의 주요회원국이 되었다. 1970년대에 좌익계인 붉은여단의 테러 활동이 고개를 들었으나 1980년대초에 이 조직은 경찰에 진압되었다. 1990년대초 이탈리아 정부는 일련의 정치적 시련을 겪었으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되어 온 정당체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대부분이 우파인 새 정당들이 생겨나 정치적 공백상태를 매웠으나, 이탈리아의 정치적 혼란은 계속되었다(→ 이탈리아사).

N. Rubinstein 글

한국과의 관계

한국은 일찍이 마르코 폴로에 의해 고려라는 이름으로 이탈리아에 처음 소개되었다. 그러나 직접적인 교류를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이며, 1884년 6월 26일 우호·통상·항해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당하면서 이탈리아와의 관계도 끊어졌다. 두 나라가 단독수교를 맺은 것은 1956년 11월 24일이며 상호 상주공관도 설치되었다. 이탈리아 주재 초대 한국대사는 김영기(金永琦)이고, 한국 주재 초대 이탈리아 대사는 스팔라치이다. 통상관계가 밀접해지면서 한국은 밀라노에 무역진흥공사 무역관을, 이탈리아는 서울에 대외무역공사 사무소를 각각 설치했다. 두 나라가 맺은 협정으로는 특허권·상표등록 협정(1961. 3), 무역협정(1965. 3), 문화협정(1970. 6), 과학기술협정(1984. 2) 등이 있고, 1986년 4월에 무역·기술 협력증진에 합의했다. 북한과는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없으나 1977년부터 무역대표부 상호설치에 관한 협정을 맺고 있다. 제24회 서울 올림픽 대회 때 381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1997년 현재 체류자는 5,740명이다. 1996년 현재 대한수출은 30억 6,991만 달러, 대한수입은 9억 2,182만 달러이며, 기계·화학·섬유·전기기기 등을 수출하고, 섬유·철강·신발 등을 수입한다.

이탈리아 더몰 아울렛 결제 문의

안녕하세요 1월 초에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갑니다. 중 하루 일정에 더몰 방문 일정이 있는데(부모님 선물용 등) 결제 방법에 대해 궁금한...

이탈리아 여행에 대해

... 이탈리아 문화에 대해 알려주세요. 아메리카노나 파인애플 피자같은 걸... 세네 지역 이상은 가보고 싶거든요 => 정도는 아니에요. 더해서 여행자는 영어만 써도...

이탈리아에 대해 알려주세요(최대한...

... 특징 이탈리아 사람들의 의식주에 대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형: 산지와... 가장 큰 평야는 포평원(55,000㎢)이며, 밖에 캄파니아평야(1,900㎢) 등 소규모의 평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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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의식주의 대해(내공 50)

... ㅎㅎ 이탈리아에 대해 알고있는 여러분들!~ 저에게 정보를 나눠 주세용> <이탈리아의... 피자는 이탈리아의 주요 음식 중 하나에요 이탈리아에 관련된 모습은 제...

이탈리아에대해

... 이탈리아에대해질문함니다, 1.사용하는 언어는? 2.국기의모습(사진),(설명) 3.... 있으며 선주민족(先住民族)인 리구리족의 인종형을 이어받은 것이다. ④ 중간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