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질문이요

멕시코 질문이요

작성일 2020.11.26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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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주요  농산물, 수산물, 축산물, 지하자원, 지역 특산품, 주요 수출품, 주요 수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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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질문에 답변을 합니다.

멕시코 질문이요

멕시코의 주요 농산물, 수산물, 축산물, 지하자원, 지역 특산품, 주요 수출품, 주요 수입품

답변 감사드립니다( 첨 써보네유)

답변 : 멕시코에 대한 정보를 전부 올려드릴테니 님이 요청하신 것만 골라 복사해 가세요.

답변을 다 하려면 내용이 엄청나게 길어집니다.

멕시코(Mexico, United Mexican States)에 대하여

1. 멕시코(MEXICO) 국기

국기의 뜻과 의미

왼쪽부터 초록·하양·빨강의 세로형 3색기이며, 중앙에 문장(紋章)이 들어 있다. 3색은 여러 가지를 상징하는데, 초록은 독립과 희망과 천연자원등을, 하양은 종교의 순수성과 통일과 정직 등을, 빨강은 백인·인디오·메스티소의 통합과 국가 독립을 위해 바친 희생 등을 나타낸다. 문장은 “독수리가 뱀을 물고 앉아 있는 호숫가의 선인장이 있는 곳에 도읍을 세워라”라는 아스테크 건국전설이 그려져 있다. 가로세로 비율은 7:4이다. 1810년 스페인과 독립전쟁을 벌일 당시 3색기를 처음 사용하였고 1821년 제정하였다. 1937년 수정하였으며 1968년 9월 16일 세목사항(細目事項)을 제정하였고 1984년 2월 8일에 추인하였다.

1821년제정 그후 수차례의 변경과 수정끝에 1968년 지금의 국기로 새롭게 수정시켜 이를 변경하여제정

이칭별칭 : 멕시코 합중국, United Mexican States

유형 : 지명

시대 : 현대

성격 : 국가

위치 : 중앙아메리카 북부

인구 : 1 870만명(2008년 현재)

면적 : 197 2500

수도 : 멕시코 시티

국화 : 다알리아

화폐단위 : 페소(Peso)

언어 : 스페인어, 고유언어

종교 : 가톨릭교, 개신교

수교일 : 1962 1 26

정치·: 의회형태 대통령 중심제, 연방공화제, 양원제

정의 : 중앙아메리카 북부에 있는 공화국.

2.멕시코 개관

정식 명칭은 멕시코 합중국(United Mexican States)으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해안선의 길이가 9330㎞에 달한다. 면적은 197 2500, 인구는 1 870만명(2008년 현재), 수도는 멕시코 시티(Mexico city)이다.

종족은 원주민 29, 메스티조 55, 백인 15, 기타 1%로 구성되어 있으며, 언어는 스페인어가 공용어이나 원주민은 고유언어를 쓰고 있다. 종교는 92%가 가톨릭교를 신봉하며, 개신교가 6%를 점유한다.

3. 멕시코 약사

기원전부터 조직적인 문화권을 형성한 멕시코의 원주민은 16세기 초 스페인에 정복될 때까지 마야(Maya)·톨테카(Tolteca)·아즈테카(Azteca)의 발달된 문명을 보유하였다.

원주민 사회를 정복한 스페인은 원주민 사회를 온존시킨 채, 스페인왕이 파견하는 부왕(副王, Viceroy)을 정점으로 하는 식민사회로 재편하였다. 식민사회는 스페인에서 파견된 식민관료, 멕시코에서 출생한 백인(Criollo), 원주민과 백인의 혼혈(Mestizo), 그리고 원주민으로 이어지는 엄정한 계급사회였다. 식민관료가 멕시코 사회의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였다. 크리올료는 대토지소유제에 기반을 둔 경제력을 향유하였고, 메스티조와 원주민은 대농장(hacienda)에서 혹사당하는 노예(peon)로 전락해갔다.

1810 9 16일 신분해방을 원하는 메스티조와 정치권력을 원하는 크리올료가 결합하여 독립을 선언하고 전쟁을 일으켜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다. 독립전쟁을 이끈 이뚜르비데(Iturbide, A.)의 왕정은 3년 만에 종식되고 1824년 공화제 헌법이 반포되었다. 독립과 더불어 노예의 형식적 해방이 선언되었으나 그 뒤 1세기 동안 대토지소유제는 해체되지 않았으며 노예제도는 오히려 광범위하게 자리잡았다.

멕시코의 정치는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지방분권주의자와 보수주의적인 중앙집권주의자 사이의 투쟁으로 점철되었다. 19세기 전반에 멕시코는 캘리포니아·텍사스 등 국토의 절반을 미국에 빼앗기거나 할양하였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멕시코는 디아스(Diaz) 체제라고 불리는 독재체제하에서 광범위한 외국자본의 침투와 사회적 모순으로 고통을 받았고, 1910년 마데로·까란사·오브레곤·사파타·판초 빌라 등이 각기 이끄는 정치세력들에 의하여 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은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야기하면서 7년이나 지속되었고, 1917 2 5일 신헌법(Carta Magna)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1934년 혁명세력을 결집한 멕시코혁명당이 결성되었으며 1946년 제도혁명당으로 바뀌었다.

그 뒤 매 6년마다 평화적인 권력 이양이 이루어지고 있고 중앙집권제의 확립, 군부의 축소 및 중립화, 정교분리가 촉진되어 중남미 국가 가운데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된 사회를 이루고 있으며, 2006 12월 취임한 깔데론(Felipe Calderon Hinojosa) 대통령이 정부를 이끌고 있다.

대외정책은 중도우익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1945년 유엔에 가입하였으며, 내정불간섭, 민족자결, 분쟁의 평화적 해결 및 제3세계 경제질서의 확립을 기조로 삼고 있다.

4. 멕시코 지도

5. 멕시코 자연환경(기후 지형)

멕시코는 지체(地體) 및 지형의 구조로 보아 북아메리카의 일부이다. 한편 민족적으로는 라틴아메리카이며 남·북 아메리카의 육교부(陸橋部)를 차지하므로 중앙아메리카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대(大)·소(小) 앤틸리스제도(諸島)는 구조상 중앙아메리카의 습곡축(褶曲軸)과 같은 계열에 속하므로, 중앙아메리카와 서인도제도를 총칭하는 중부아메리카에서 주요부를 차지한다.

중생대 말기부터 제3기에 걸쳐 일어난 태평양 연안의 폭넓은 신기(新期) 습곡산맥은 시에라마드레오리엔탈·시에라마드레옥시덴탈의 두 산맥을 이루고, 파나마지협(地峽)까지 불안정한 환태평양조산대(環太平洋造山帶)를 형성하며 뻗어 있다. 태평양 쪽의 시에라마드레옥시덴탈산맥은 해발고도가 평균 2,000m, 멕시코만(灣) 쪽의 시에라마드레오리엔탈산맥은 평균고도 1,500m로 동쪽이 낮고 서쪽이 높은 지형을 이룬다. 그 사이에 있는 평균고도 1,700m의 멕시코고원은 국토의 1/3 을 차지하면서, 시에라마드레델수르산맥과 하나가 되어 파나마에 이른다.

한편, 북위 19°선을 따라 동서로 횡단하는, 구조상 중앙아메리카 습곡산맥의 연장인 대·소 앤틸리스제도가 유카탄반도에서 시작하여 트리니다드토바고에 이른다. 4,000m 이상의 설선을 안고 있는 오리사바(5,700m), 포포카테페틀(5,452m), 이스탁시우아틀(5,286m), 톨루카(4,677m), 콜리마(3,960m), 마린치(4,460m) 등의 화산들은 멕시코고원에 있다. 이처럼 높은 산들 덕분에 멕시코의 심장부는 아나와크고원(‘물가 근처’라는 뜻)에 형성되었는데, 이 지역에 인구의 반 이상이 집중 거주하며 생산물도 전국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멕시코 남부지역에는 종종 지진이나 화산폭발 등이 발생한다. 전국토의 39%는 초원, 26%는 산림지대이며 경작이 가능한 땅은 13%이다.

기후는 국토의 대부분이 고원성이고 북회귀선이 남북을 가로지르기 때문에, 열대기후권이 전국토의 25%, 건조기후권이 50%, 온대기후권이 25%를 차지한다. 즉 멕시코의 중심부는 열대 고원의 상춘(常春) 지역이며, 특히 1,500m 내외가 최적온(最適溫) 지대를 이룬다. 강우량은 일반적으로 적은 편인데, 북서부는 435mm, 북동부는 685mm, 중부는 879mm, 남부는 1,301mm 정도의 분포를 나타낸다. 그러나 설선을 지닌 화산의 융설수(融雪水)가 풍부하며 옥토를 만들고, 멕시코분지에서는 수향(水鄕)의 경관을 나타내는 지역도 볼 수 있다.

식물상(狀)은 고원으로 인한 수직적 분포와 건조기후에 지배된다. 1,000m 이하 열대우림지역은 혹서로 인해 코코야자, 바나나, 카카오 등 열대작물 재배에 알맞고, 1,500m 내외는 참외, 귤, 망고 등의 열대 과일과 커피, 사탕수수 등이 재배된다. 2,000m 내외의 온대에서는 멕시코인(人)의 주식인 옥수수가 산출되며, 멕시코 분지를 둘러싼 3,000m 이상의 산지는 냉대지역으로 소나무가 무성한 국유림지대가 전개된다. 그밖의 건조지역은 선인장 등이 자라는 황지(荒地)를 이룬다. 특히 북부고원지대는 반사막의 경관을 나타내며 식물은 거의 없다.

1) 자연환경

온대 지역과 열대 지역 사이를 잇는 멕시코는 세계적으로 사막이 몰려 있는 위도에 놓여 있으며 변화무쌍한 자연환경과 여러 식생 지대를 포함하고 있다.

멕시코는 지형에 따라 기후가 크게 변한다. 양쪽 해안 평원을 따라서는 무덥지만 과달라하라(Guadalajara)나 멕시코시티처럼 내륙 고지대는 건조하고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있다. 그리고 해발 고도가 높은 내륙 지역보다 해안 저지대에서 더 많은 강우량을 기록한다.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 호세 클레멘떼 오로스코(José Clemente Orozco) 등은 사회, 역사적인 주제를 가지고 중요한 공공건물에 커다랗고 생생한 무랄들을 장식하도록 의뢰를 받았다.

2) 예술문화

밝은 색을 좋아하는 멕시코인 들은 스페인들이 들어오기 전부터 예술에 재능이 있어왔다.

오늘날 멕시코는 무랄(벽화)로 덮여 있고 현대예술이나 옛날 예술작품들을 소장한 갤러리들이 여기적기 놓여있는데 이것들이 많은 여행자들에게는 볼만한 구경거리가 된다.

멕시코인의 창조성은 또한 이 나라의 생생한 민속 예술 전통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스페인인 이전

시대의 예술품은 주로 돌조각, 프레스코화 그리고 벽화나 도기 등의 작품이다.

6. 멕시코 산업

1) 광업 : 멕시코는 1938년 석유국유화를 단행한 이후 국영석유회사인 페멕스가 탐사·생산·판매의 전분야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70년대에 남부의 치아파스주·타바스코주에서 거대한 유전이 발견되면서 신흥 석유대국이 되었다. 86년의 확인매장량은 493억 배럴로서 세계 제 5 위였다. 멕시코는 식민지시대부터 금·은의 세계적 산출국으로 알려져 있으며, 구리·납·아연·철광석·황·우라늄 등이 풍부한 광업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2) 농어업 : 농업은 1940년대부터 60년 중반까지 거액의 외화를 벌어들여 공업화의 원동력이 되었으나, 그 뒤로는 계속 정체상태에 빠져 최근에는 대량으로 식량을 수입하게 되었다. 이중구조문제도 심각하여, 북서부태평양연안에서는 근대적인 대규모 관개농업으로 효율 높은 상품작물을 생산하고 있으나, 농업인구의 70%를 차지하는 그 밖의 지역에서는 관개시설이 갖추어지지않은 전통적인 농법으로 자가소비작물을 근근히 생산하고 있어, 농촌인구의 도시 이동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것은 역대정권의 공업화 우선, 석유산업 중점정책의 결과로서, 반성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다. 국토의 47%가 목축에 적합하며 가축 종류도 많으나, 목축생산은 감소경향이다. 또 9200㎞의 해안선과 43만㎢의 대륙붕이 있어, 어장과 수산자원이 풍부한데도 수산업은 계속해서 부진하다.

3) 공업 : 제조업은 라틴아메리카 중에서 가장 발달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소비재는 국산화되어 있다. 1903년 라틴아메리카에서 최초로 생산을 개시한 철강업은 현재 연간 약 700만t을 생산하고 있다. 자동차공업은 멕시코의 대표적인 공업이며, 미국의 포드사·GM사·크라이슬러사, 독일의 폴크스바겐사, 일본의 닛산[日産]자동차회사 등이 진출해 있다. 석유화학공업은 산유국 멕시코로서는 유리한 분야이고, 기초석유화학은 페멕스사가 독점하고 있으며, 2차 석유화학은 민간기업과 혼합기업에 개방되어 있다. 전자·전기기기, 종이·펄프, 시멘트, 유리, 약품, 제당, 섬유·의류 등의 공업도 그 역사가 길며, 제 2 차세계대전 후의 수입대체로 보호된 국내시장을 중심으로 발달하여왔다.

7. 멕시코 대표적 도시

※ 아래 도시의 글씨를 클릭하시면 멕시코 도시 위치와 상세 설명이 다 나옵니다.

중남미의 의상, 멕시코의 의상에 대해 조금 알아보았는데 어떠셨나요? 저는 중남미의 판초를 보며 요즘같이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두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한편으론 추운 겨울이 가고 뜨거운 여름을 맞이할 때 솜브레로를 쓰고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나라의 밀짚모자를 창이 더 크게~ 만들어 봐야하나 생각해보았네요.

2) 멕시코 식(食) 음식

멕시코의 전통음식

어떤 나라를 여행 가보게 되면, 그 나라 고유의 음식들은 꼭 맛보고 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늘 준비한 세계 전통음식은 바로 멕시코편입니다. 멕시코에는 어떠한 대표적인 전통음식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토르티야(또띠아) 안에

● 고기와 야채를 싸먹는 타코(Taco)

멕시코 전통음식하면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타코입니다. 멕시코에는 옥수수 (혹은 밀가루 가루로 만들어 동그랗게 구운 토르티야라는 것이 있는데요, 마치 밀전병? 혹은 인도의 난과 생김새가 비슷해요.

그 토르티야 위에 야채, 콘, 치즈, 고기 등등 다양한 재료를 넣고서 싸서 먹는 것이 바로 타코랍니다. 우리나라에서 밥을 먹듯이 멕시코에서는 타코를 즐겨먹는다고 합니다.

타말레스(Tamales)

타말레스는 멕시코 축제에서 빠지지 않고 나올 정도로 대표적인 전통음식이랍니다. 오늘날에는 길거리에서 식사 대용으로 사먹는 음식으로 보편화가 되었다고 해요.

옥수수 반죽 안에 치즈나 고기를 넣고 옥수수 껍질로 싼 다음 쪄낸 요리에요. 보통 한국인들이 이걸 처음 먹으면 이게 대체 무슨 맛인가.. 좌절한다는 이야기가 많더라구요.

몰레(mole)

ㅋㅋ이름이 재밌네요. 멕시코에서 아주 많은 사랑을 받는 전통음식 중 하나가 바로 몰레랍니다. 몰레는 음 일종의 소스라고 보시면 되요. 일반적으로 고추와 초콜릿, 참깨, 아몬드, 후추, 계피, 마늘, 양파, 토마토 등의 여러가지 재료들을 갈아서 만든 소스랍니다.

그렇게 만든 몰레 소스를 닭고기나 칠면조 고기 위에 얹어서 먹는거죠. 멕시코에서 옥수수를 전통 요리의 재료로 빼놓을 수 없듯이 고추를 이용한 소스 또한 굉장히 사랑받고 있다고 합니다.

또 나온 메뉴 따끼께쏘! 구운치~즈와고기의조합!

3) 멕시코 주(住) 주거 문화

멕시코 푸에블라 대성당 예배당

멕시코 푸에블라 대성당 상

멕시코 카스티요

1. 멕시코의 아즈텍 문명의 주거문화

멕시코에는 예로부터 몇 개의 고도로 발달한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그 중 가장 영향이 강했던 테오티우아칸 문화는 7세기경 멸망하고, 그 뒤를 이은 톨테크문화가 12세기에 수도 투라에서 멕시코 중앙고원의 텍스코코 호반으로 옮겼을 때, 영향을 받아 많은 도시국가가 성립되었다. 그 중에 가장 강력했던 것은 텍스코코와 트라코판의 두 도시였으나, 13세기에 북멕시코에서 이동해온 수렵민족인 아스테크족이 텍스코코호(湖)의 작은 섬에 테노치티틀란이라는 도시를 구축, 양자와 더불어 강대해졌고 3자간에 군사동맹을 체결하였다. 3자는 서로 협력하여 멕시코 중앙고원을 중심으로 한 여러 도시를 정복하고 그들로부터 조공(朝貢)을 받아 부(富)를 삼분(三分)하였다.

사회조직면에서 아스테크는 카르프리라는 공동체 조직을 단위로 하는 계급사회를 형성하였다. 따라서 공동체적인 토지 보유의 형태가 보이는 한편, 그 도시생활에 있어서는 사회 계층과 직능에 따라 거주구역의 행정조직이 이루어져 있었고 자치적인 경찰과 사법(司法) 조직도 발달해 있었다. 직업도 여러 갈래로 분화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은 포추테카라고 불리는 상인(商人) 계층이었다. 그들은 토라테로르코 ·초르라 그 밖의 도시에서 큰 시장을 개설하였고, 그들 집단은 멕시코 ·중앙아메리카 지방을 널리 여행하며 교역을 행하였다. 또한 귀족 ·평민의 교육기관도 발달해 있었다.

이처럼 발달한 아스테크 문명은 1520년 갑자기 나타난 에스파냐의 페르난도 코르테스가 거느린 수백 명의 군대의 침입으로 수개월에 걸친 외교교섭과 격렬한 전투 끝에 멸망하였다. 그러나 그 문화의 모습은 정복된 후 건너온 가톨릭교 성직자들 중의 유지와 그 밖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고 아스테크 시대에 텍스코코 등에서 만들어진 인디오의 그림 몇 가지가 소멸을 면하였으며, 또한 에스파냐 식민지시대에 복제(複製)된 그림도 상당히 있으므로 아스테크 문화의 상세한 점이나 그 왕조의 역사는 복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오늘날 멕시코나 서양의 학자들에 의해 이 문화에 대한 분석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아즈텍 주거문화의 특징 2가지

1) 신전 중심 주거형태

2) 계획적 도시의 형태

3. 멕시코의 식민지 시대의 주거문화

초기 정복 시대 (14c~16c)

초기 정복 시대는 성곽이나 요새들이 주로 만들어 졌다. 그것은 아직 자신들의 위치가 확립되지 않은 식민지 상황 때문에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해적들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정복자들은 식민 통치를 더욱 수월하게 하고 원주민들을 자신들의 문화에 융합 시키게 하기 위해 일률적인 유럽스타일의 도시를 건설하려고 했다.

스페인의 펠리뻬 2세는 이러한 목적을 위해 1573년 도시계획 법안을 내놓아 이후 아메리카 대륙의 시 계획의 전범으로 삼았다. 이러한 도시계획 법안에 의해 16세기 동안 멕시코시티, 까라까스, 보꼬따, 리마, 라 빠스 등의 주요 도시가 건설되었다.

이사벨 양식은 이사벨 라 카톨리카 여왕시절에 유행한 건축 양식으로 고딕과 무데하르 양식을 혼합한 것이다.

에레라 양식은 에스꼬리알(Escorial)을 건축·설계한 후안 데 에레라(Juan de Herrera, 1536∼1597)의 건축기법으로부터 기인한다. 에레라 양식의 특징은 간소함과 절제이다.

은세공 양식은 이태리 예술 양식에 화려한 고딕 양식의 섬세함과 아랍적 장식을 가미시켜 은을 세공하는 건축양식이다.

무데하르 양식은 그리스도인 영토에 거주하는 아랍인들로서 비록 정치적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의 밑에 있었지만 그들의 전통적인 법, 생활습관, 종교 등을 간직하고 있었다. 무데하르 양식 예술은 12세기에 스페인에서 로마와 고딕 예술의 요소들이 아랍 예술과 혼합되어 형성되었다. 무데하르 건축은 끝이 뾰족한 아랍의 말 굽쇠형의 아치를 사용한 단순화된 고딕 양식이다.

정착 후 (17c~18c)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유럽 정복자들은 식민정책이 정착하기 시작하자 교회를 널리 보급시키면서 강제적으로 개종을 시켰다. 이런 것을 통해서 교회 건축 양식으로 바로크 양식이 많이 쓰였는데, 아메리카에서의 바로크는 사회통합을 위해 노력했던 가톨릭교회와 스페인 왕실의 이념적 도구로서, 다시 말해 바로크는 제국주의와 종교가 식민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결합된 정교일치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바로크 양식은 주로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중반에까지의 미학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건축에서의 바로크 양식은 그 생명이 더 길어 1600년에서 1760까지라고 보기도 하며 아메리카에서는 18세기말까지 이 양식이 지배한 것으로 간주된다.

스페인에서 유행하였던 예술 양식으로서의 바로크와 아메리카 원주민 예술 특유의 과식적 성향이 결합된 바로크 양식은 신대륙에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원주민 예술에서와 마찬가지로 화려한 장식을 선호하였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많은 장식을 즐겨하는 인디오 예술은 복잡한 꾸밈과 장식을 추구하는 유럽의 바로크 예술과 쉽게 융합될 수 있었다. 당시 아메리카 바로크의 특징이라 한다면 다양한 색깔의 회반죽, 곡선과 직선의 혼합, 독창적인 타일 장식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바로크 건축 양식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자재는 검붉은 화산석인 떼손뜰레와 타일이었다. 유럽에서 온 소재와 방법을 자유롭게 변형시켜 새로운 형태의 바로크 건축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렇게 스페인에 의해 아메리카에 도입된 모든 예술 양식은 유럽 양식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토착문화와 혼합되고 변형되어 독특한 미학을 산출해 내면서 전형적인 바로크 미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의 바로크 건축양식은 누에바 에스빠냐(Nueva Espana)에서 볼 수 있듯이 스페인과는 매우 다른 그들만의 양식을 발전시켰다. 17-18세기에 걸쳐 멕시코 시티, 뿌에블라, 메리다, 치아빠스, 산 루이스, 오아하까, 과나후아또 등과 같은 도시에서 많은 건축가들은 대성당과 같은 큰 바로크 건축물을 경쟁적으로 짓기 시작했다. 군사적 정복에 의해 일단 부를 획득한 민간 정부와 교회는 정신적인 면에서도 정복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예술을 이용했다. 이는 중남미의 바로크 건축이 카톨릭 중심의 반종교개혁의 예술로 간주되는 스페인 바로크 양식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시사해 준다.

- 멕시코의 바로크 건축 특징 -

멕시코의 바로크 건축은 솔로몬식 기둥, 반육면체 아치 등을 특징으로 하는 전기 바로크와 츄리게라 양식을 특징으로 하는 후기 바로크로 나눌 수 있다.

식민 시기의 초기에, 백인들과 메스티소의 손에 의해서만 설계되던 건물들이 후기로 가면서 인디오들에게도 건축과 조각을 허락했다. 이를 이용하여 인디오들은 정복에 의해 상처받고 흔들린 자신들의 정신세계를 건축물에 담았다. 특히 그들이 겪었던 고통, 적대감 그리고 반감을 교묘하게 위장하여 건축물에 조각해 놓았으며 백인들의 묵인 하에 건물의 정면에 자신들의 신들과 꽃 그리고 동물들을 아로새겨 놓았다

순수 인디오풍 바로크 건축양식의 대표적인 건물들은 주로 산 프란시스코 아카떼빽(San francisco acatepec), 산따 마리아 또난친뜰라(Santa Maria Tonantzintla)에 있다. 17세기 말에 멕시코에는 과장된 장식을 특징으로 하는 츄리게라 양식이 나타난다. 이 양식은 곡선과 회화 그리고 빽빽한 조각 등 과잉 장식을 특징으로 하면서 극단화된 바로크 양식을 보여준다.

4. 멕시코의 현대 주거문화

20세기 초반 멕시코 시티에는 신식민지 양식의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특히 멕시코 혁명 이후에는 19세기 중반이래 받아온 유럽 대륙의 영향에 반발하여 식민시대의 토착건축을 재평가하여 신 식민지양식이 등장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네오바로크와 아르누보 양식이 혼합된 경향을 보여준다. 당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사무엘차베스의 대학확장 건축, 마누엘 고로스뻬의 시청재건축과 세르반떼스 도서관, 과테말라의 국회의사당, 페루의 대주교 등이 있다.

1950년대 기능을 중시하는 인터내셔널 양식을 지양하고 민족주의적인 건축표현을 모색하기 시작한 의미를 가진다.

1960년대를 전후 정부에 의해 건물들은 암묵적으로 그것이 구현하고 있는 메시지를 상징하도록 의무화되었다. 그들은 이미 공식화 되어있던 모던 스타일이나 민족주의를 초월해 멕시코를 아방가르드 국가의 이미지로 변신시키려 한 것이다. 이때 가장 의미있는 건축물은 뻬드로 라미레스 바스께스에 의한 인류학 박물관이다.

1970년대에는 오르소 누네스가 이끌던 그룹이 눈에 띈다. 그러나 당시 건축을 주도하고 있던 것은 아브라함 사블루도브스키와 떼오도로 곤살레스 데 레온 팀이었다. 그들의 작품으로는 브라질리아의 멕시코 대사관과 꼴레히오 데 멕시코와 따마요 박물관등의 초 현대식 건물들이 있다.

끝으로 님의 건강과 행복이 충만 하시기를 빌겠습니다.

미국과 멕시코질문드립니다.

미국은 북아메리카이고 멕시코는 중아메리카인가요? 미국은 북아메리카, 앵글로아메리카지역으로 부르고 멕시코를 중앙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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