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의 해외진출 성공사례
1. “초코파이”의 중국진출 - (주) 동양제과
○ 해외시장 진출
1990년대 중반부터 제과부문의 글로벌 비즈니스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오리온그룹은 현재 동양제과를 중심으로 해외사업부문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동양제과는 1995년 수출 1천만불 탑을 수상한 이래 지속적으로 수출물량 및 지역을 확대하며 제과수출사업을 강화하는 한편, 해외 생산 현지화 작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 역량을 기울여 왔다. 현재 동양제과는 중국 하북성 랑팡경제기술개발구에 현지법인인 오리온식품유한공사(Orion Food Company., Ltd)를 통해 연산 2,000만 달러가 넘는 대규모 초코파이 및 카스타드, 껌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 화남권의 중심인 상해에도 3년간 4,000만 달러를 투자해 대규모 종합제과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으로 2001년 7월 착공식을 거행, 2002년 6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동양제과의 중국 현지법인은 중국 진출 2년만에 흑자를 기록함으로써 중국에 진출한 해외 글로벌 기업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동양제과는 향후 중국에서의 성공적인 안착을 통해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구유럽권,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권역에도 생산공장을 건설해 현지 네트워크를 더욱 강화해 나감으로써 오는 2004년까지 제과 해외사업에서 1억 달러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동양제과는 오리온초코파이를 비롯한 50여 종의 제품을 동남아시아, 유럽, 남미,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5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 현지 마케팅 전략
․수출 포커스 정책
'주력시장과 주력제품에의 집중화'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정책은 국내 1위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초코파이를 전략상품으로 선정하고, 본격적인 초코파이 수출 강화에 들어가게 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대만, 중국을 주력시장으로 각종 시식회, 판촉행사, 광고 등의 마케팅 전략을 강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기존 'CHOCOLATE-PIE' 'ORION CHOCO-PIE' 등으로 다양하게 주문되어 제작, 수출되던 초코파이의 명칭을 'ORION CHOCO PIE'로 통일했으며, 패키지도 내수용과 같은 BLUE 계통에서 RED 계통으로 MAIN COLOR를 변경해 단일 디자인을 도입했다. 또한 표기도 기존 영어와 아랍어에서 중국어, 러시아어를 추가로 제작 표기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제품도 12개입 1종에서 6개입 및 10개입으로 2종을 추가해 각국의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화 정책을 펴나갔다.
○글로벌화 전략
94년까지 초코파이의 수출 성공 가능성을 모색한 동양제과는 95년에 들어서면서 초코파이에 대한 글로벌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다. 동양제과의 이해 수출기본 전략은 첫째, Sole Agent System(By Different Country&Item), 둘째, Direct Business(With Local Distributor), 셋째, Long Term Business(Based On Mutual Credibility)로 요약된다. 이러한 기본전략에 따라 동양제과는 수출코스트를 낮추어 가격경쟁력을 강화하고, 바이어 관리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는 한편, 물류의 단일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초코파이의 글로벌화 전략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동양제과는 '95년 초코파이 수출규모를 '94년 478만 불에서 '95년 741만 불로 55%를 UP시켰다.(실제 95년 초코파이 수출은 1,400만 불에 달했다) 수출국가도 10개국에서 20개국('95년말 기준 32개국)으로 늘리며 잠재적 유망 신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지역전문가를 양성, '지역팀제'를 구축하며, 언어권별 인력을 보강해 나가는 한편, 무역업무의 자동화 시스템을 개축해나갔다.
․시장 개척
동양제과는 시장을 개척할 때, 수출 주력지역과 초코파이 아이템을 결부시킨 것이다. 초코파이가 국내에서 가장 잘 먹혀들었던 우리의 70년대 국가를 수출 중점지역으로 선택한 것이 그것이다. 개발도상국에 진입해 있거나 강대국이지만 경제적으로 선진적이지 못한 나라들 예를 들면, 중국, 러시아, 동남아, 몽골, 동구 등과 같은 나라를 주요 타겟으로 잡았다는 것도 초코파이가 세계화 제품으로 자신감을 가지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개척시장을 정한 다음에는. 각종 식품전시회에 참가해 제품 알리기에 주력하는 한편, 자체적으로 초코파이 시식회를 개최하며, 적극적인 시장개척을 추진한 것이다. 또한 현지문화에 대한 이해가 시장개척에 절대적이다는 방침에 따라 '문화감수성 교육'이라는 자체개발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이 교육은 그 나라의 역사, 문화, 생활방식, 관습, 종교, 언어 등을 총망라한 교육내용으로 현지문화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모든 사항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해외마케팅을 강화하기 시작한 94년부터 동양제과는 많은 시장개척 비용을 투자했다. 96년 12월 동양제과는 그 동안 러시아에서 수출이 편중된 극동지역의 한계를 넘어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시베리아, 동구쪽으로의 시장확대를 위해 모스크바 TV에 초코파이 광고를 시작했다. 95년 2월엔 중국 천안문 광장에 초대형 초코파이 입간판을 설치했으며, 베이징 중심가의 대형슈퍼를 통해 시식회도 자주 가졌다. 또한 동남아시아의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도 각종 박람회 및 전시회에 참가하며 초코파이 알리기에 주력했다. 이제 이 나라 어디를 가도 초코파이를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물류-판매 영업망 구축
동양제과는 해외마케팅을 지속적인 전략으로 펼쳐나가면서 판매의 기본이 되는 영업망 구축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 1단계는 93년부터 94년까지의 약 1년 동안의 기간으로 '해외시장 침투'를 목적으로 한 수출, 수입상을 통한 간접유통판매 전략의 실천이었다. 이 시기는 해외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위해, 기존 시장에 보다 많은 수출 루트를 통해 진출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러다 보니 Open Market을 지향, 다(多)Buyer전략을 답변확정할 수밖에 없었다. 94년말부터 96년말까지 동양제과는 강력한 시장 확대전략인 Master Sole System 전략을 구사하며 2단계의 영업망 구축에 들어갔다. 이것은 국가별, 품목별 총대리점을 지정하여 안정적인 수출물량 확보는 물론 해당국가 내 초코파이의 가격안정, 시장안정을 추구하는 전략이었으며, 해당지역의 물류 및 유통을 현지 학습화함으로써 중국 같은 경우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Route Sale 개념을 도입한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현지 유통을 직접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Master Sole System 전략은 동양제과가 수출전략을 추진하는 데 있어 안정된 수급망의 확보, 일관된 가격정책을 유지해 제품의 이미지를 높혀 수출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러한 2단계의 Master Sole System을 토대로 3단계의 시장을 완전히 확보하겠다는 Area Sole System 유통전략이 확립됐다. 이는 2단계의 전략을 통해 확대된 해당 국가내 문화적, 지리적 차별화된 시장을 거점으로 세분화하여 궁극적으로는 현지화 전략을 구사, 거점 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동양제과는 향후 2005년까지 해당지점 내 물류 및 영업정책으로 직조직 형태의 판매전문회사를 설립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이의 실현을 위한 노력을 집중해 나가고 있다.
○ 초코파이 중국진출 이후
초코파이, 중국 파이류 중 브랜드 지명도 가장 높다.
브랜드 지명도 10.5%, 시장점유율 53.5%로 98년 이어 2년 연속 1위
오리온초코파이(好麗友․派)가 중국중앙TV(CCTV)와 인민일보가 공동으로 실시한 ꡐ1999년 전국 도시 소비자 조사ꡑ에서 파이류 브랜드 지명도 10.5%(98년 14.1%), 시장 점유율 53.5%(98년 10.9%)로 98년에 이어 연속 2년간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오리온초코파이의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10.9%에 비해 무려 42.6%나 증가한 53.5%를 기록했다. 99년 중국현지 법인인 OFC와 OFS는 1,100만불의 매출과 90만불의 순이익을 기록했으며, 이는 98년 대비 각각 55%, 1,875% 성장한 수치다. 금년 매출은 1,600여만불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기사일부 발췌>
2. “미원”의 인도네시아 진출 - (주) 대상
○ 해외시장진출
․해외시장 진출 동기
미원(Miwon) 상표로 국내 조미료 시장을 선도하여 왔던 대상(구 미원)은 1970년대 접어들면서 국내시장에서 경쟁업체인 제일제당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또한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조미료의 주 원료인 당밀(Molasses)의 국제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함으로써 일본과 영국의 대기업들이 전세계적으로 거의 독점하고 있던 당밀시장에서 물량확보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와 같은 내외적인 환경변화에 따라 대상은 주 원료인 당밀의 안정적인 확보와 해외시장 개척, 장기적으로는 원료 거점을 중심으로 세계 MSG 시장에서 경쟁력을 제고시키고 기업의 국제화를 도모할 목적으로 해외진출 전략을 고려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1970년 3월에 해외조사단을 동남아 현지에 파견하였다.
․시장조사
해외시장 조사 대상국으로는 당밀이 많이 생산되는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등이 있었으나, 시장조사결과 인구도 많고(당시 1억 8천만명) 인건비가 저렴하고 정치적으로도 안정적인 인도네시아를 최적 투자 대상국으로 선정하였다. 인도네시아의 조미료 시장을 보면 정경 유착이 심하고,국내 시장과 인도네시아 시장을 비교해 보았을 때, 현재 인구 대비로 인도네시아 조미료 시장은 아직 저 개발 단계에 놓여 있으므로 시장 잠재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인도네시아 소비자들에게 조미료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판촉물이 필요한데 70년대 초의 우리 나라 상황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심하다고 한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대만계의 사사와 세계 최대 조미료업체인 아지노모토가 양분하고 있었는데, 대상이 진출하자마자 정부 및 관청을 통한 방해공작이 대단하였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조미료 산업에서 미원의 경쟁 업체는 아지노모토(AJINOMOTO), 사사(SASA)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아지노모토사는 일본에서 진출한 회사로 현재의 시장점유율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는 회사이다. 또 사사는 대만계 현지업체로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다.
○ 현지 마케팅 전략
․촉진 및 유통 전략
미원이 진출하기 전까지 아지노모토는 직판의 형식을, 사사는 대형 대리점을 통한 판매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미원은 인도네시아의 전 국토가 섬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운송과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들과 다른 방식으로 시장에 침투하기로 결정했다. 첫째, 호별 방문판매 제도로 판매 초기 단계에서는 한국인 판매원이 직접 가정을 방문하여 서투른 인도네시아어로 제품을 선전 판매하였으며, 그 결과 제품 이미지 구축에 커다란 성공을 이룩할 수 있었다. 둘째, 500개의 군소 대리점 조직을 통하여 판매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왔는데, 가급적으로 퇴사한 현지 직원의 대리점 개설을 지원하여 왔다. 그 결과 대리점과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끝으로, 자동차를 이용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마이크를 들고 순회함으로서 전시 효과와 더불어 광고를 위한 보조 판매촉진 방안을 활용하였다. 미원이 사용한 광고 수단은 주로 간판 광고, 팜플렛, 신문광고 등이었다.
․유통 조직 관리
인도네시아인 들은 대다수가 이슬람교도로 시간관념이 희박하고 성취욕에 대한 집념이 약한 편이어서, 부단한 교육 훈련 설득과 아울러 과감한 권한 이양을 통하여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선결 과제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간 관리자급을 현지인 체제로 육성, 부문별로 명확한 책임과 권한을 이양해 나갔다. 또한 제안 제도를 실시하여 심사 결과 포상을 하여 참여 의식을 고취시키는데 노력하였다. 점차 모든 일선 관리 업무가 현지인 중심으로 이루어져 89년 말에는 전체 종업원 751명 중 한국인은 15명으로 2% 밖에 되지 않았다.
․제품 및 가격 전략
판매에서는 우선 열대성 기후에 적합하고 현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굵은 입자의 조미료를 개발하여 일회용 설탕 봉지 크기의 포장으로 제품을 다양화하였다. 또한 고가 정책을 통하여 최초급 품질이라는 이미지 부각에 노력하였다. "미원" 상표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현지에 학교 및 사원을 건립해 기증했고, 상수도와 전기를 설치해 공급하는 한편, 도로포장과 방역 사업의 지원, 수라바야 공대에 장학금을 제공하는 등 인도네시아의 사회복지에도 많은 투자를 진행시켜 현지 토착화된 기업의 이미지를 심어 놓고 있었다. 그 결과, 생산량도 진출 초기보다 크게 늘었으며 시장 점유율도 74년 미원이 진출할 당시 아지노모토 55%, 사사 35%에서 87년 이후 미원이 선두에 나서기 시작해서, 89년 말에는 미원 40%, 아지노모토 28%, 사사 27%로 역전되었고, 당기 순이익도 84년 12만 달러에서 88년 99만 달러로 늘어나는 등 경영 상황이 호전되었다.
․연구 개발 전략
최첨단 신기술은 자체적으로 연구, 개발해내야 한다는 인식 하에 연구 개발비를 현재 매출액의 1%에서 2%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갖고 있다. 식품 회사의 이익이 매출액의 1% 미만이므로 이익의 2배 이상을 연구 개발에 투자하는 것이 된다. 또 국내 호법지역에 1백억원을 들여 독립 연구소를 건립할 예정이다. 앞으로의 연구 개발 방향은 '인간의 건강'에 기여할 수 있는 상품 개발이며, 이를 위해서 매년 일정품목을 면밀히 분석, 개선하는 상품 혁신운동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와 아울러 기능성 식품보다는 단계가 높고 치료제의 역할도 하는"설계 식품" 연구에도 투자할 방침이다.
○ 미원 인도네시아진출 이후
이러한 노력으로 대상은 80년대 접어들면서 인도네시아 조미료시장은 대상, 아지노모토, 사사가 삼분하게 되었고, 80년대 후반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상은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초기의 해외현지법인인 P.T MIWON INDONESIA는 1998년에는 약 6,500만 달러의 매출액과 종업원 800명을 거느리는 기업으로 성장하였고, 베트남, 미얀마 등에 자회사를 설립하여 동남아 지역을 총괄하는 동남아 총괄 체계를 구축하여 이 지역에 대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 미주 중국 등지에 8개 공장과 10여개 현지법인을 운영함으로써 전세계 87개국으로 그 손을 뻗치고 있다. 미원은 이와 함께 발효 및 첨단 생명 공학 기술을 근간으로 동남아에 핵산류 페닐알라닌 아스파탐 라이신과 같은 아미노산류 제품을 생산하는 바이오 메카도 구축한다는 중장기 전략을 진행 중이다. 뿐만 아니라 미원은 오는 2000년까지 남미 동유럽 러시아, 아프리카 지역에도 각각 생산거점을 확보 북미자유 무역지대(NAFTA) 유럽연합(EU) 러시아, 아프리카 시장을 공략하는 등 조미료 생산․판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계획 아래 지구촌시장을 위한 비전을 펼쳐 나가고 있다.
3. E-MART의 중국진출 - 신세계
상하이 동북부 이민허루에 들어서면 낯익은 간판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가 선명한 "E MART"가 그 것. 옆에는 이마트의 중국식 이름인 "역매득"(중국발음 이마이더)이 나란히 걸려있다. 매장풍경도 친근하다. 위협감을 주지않는 눈높이 진열장과 종업원의 노란색 옷 등이 일산과 창동의 이마트와 같다. 홍보물과 상품포장이 중국어로 됐다는 게 다를 뿐이다.
○ 현지 마캐팅 전략
한국적인 것으로 승부를 건다는 전략 즉, 상하이시민의 소비패턴이 우리 나라와 비슷하게 발전하고자 함이다.
․제품(Production)
상하이 사람들도 우리와 같이 쇼핑하러 와서 먹고 즐기는 등의 공간을 원한다. 대부분 맞벌이 부부인 이들은 하루에 1주일 쇼핑을 끝내며, 편의점이 백화점을 압박하고 있는 것도 한국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한, 신선한 야채로 주부를 끌어들여 추가 쇼핑을 유도하는 전략이 상하이에서도 빛을 발한다.
․유통(Place)
상하이 이마트의 또 다른 성공 요인으로는 지리적 위치. 이마트는 이웃의 여러 상점들과 어울려 시너지 판매 효과를 내는 대형 쇼핑센터의 핵심지역에 둥지를 틀었다. 이마트 위층에는 가전 및 가구 전문 매장이, 옆에는 홈인테리어 전문매장이 포진해 있다. 이들이 내구소비재를 공급한다면, 이마트는 생필품을 제공하는데, 이는 "원스톱 쇼핑"을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게다가 이민허루 주변은 중산층 집결지역으로 할인매장 수요가 몰려 매장은 언제나 인산인해다. 이마트의 성공에는 상품조달 노하우도 큰 힘이 됐다. 20여명에 달하는 최고수준의 현지 유통 전문가(바이어)들을 배치, 저가 고품질 제품을 찾고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급여를 아끼지 않는다.
․상호명
이마트와 발음이 비슷하면서도 뜻이 통하는 이름을 찾기 위해 중국인을 대상으로 앙케이트에 투자. 수개월간의 작업 끝에 얻은 이름이 이마이더이다. 이마이더스란, 중국말로 쉽게 사서 이득을 얻는다는 뜻으로 공짜를 좋아하는 중국인 문화에 쉽게 접근하게 되었다.
○ 이마트 상하이점 현황
상하이 이마트의 매출액대비 순익은 1%남짓으로 아직 만족스런 수준은 아니다. 상하이점은 그러나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효과를 보고 있다. 중국최대 소비시장인 상하이에서 선진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은 큰 수확이다. 상하이점은 중국유통시장 공략의 노하우를 하나하나 쌓아가면서 이마트의 중국 진출 교두보로서 터를 다지고 있다
․개점 : 97년 2월
․자본금 : 5백10만달러
․합작형태 : 99% 이마트 소유. 사실상 단독기업
․실적 : 99년 매출 3억5천만위안
․종업원 : 4백여 명(사무관리 60명, 영업․판매 3백4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