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그 영원한 잔치
배광하 치리아코 신부님
“성당에 가도 미사가 재미없어요.”
사제가 되어 교우들에게 자주 듣게 되는 푸념입니다. 조금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미사는 결코 재미있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미사를 재미로 봉헌한다는 말 자체가 불경스러운 표현일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제사를 재미로 드립니까? 제사가 재미가 없다고 때에 따라서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어가며 드립니까? 조상들에게 드리는 제사도 엄격함과 규범이 있을진대, 하물며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인 미사야 오죽 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사는 재미로 드릴 수 없습니다. 재미는 잠깐 흥미를 주다 사라지지만 뜨거운 감동과 충만한 기쁨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재미를 찾을 것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물론 전례의 토착화에서 우리 것에 대한 전통을 포함한 전례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미사성제 안에는 변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감동과 기쁨을 만들고 찾아야 합니다.
미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성스러운 연극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주례 사제와 회중인 교우들이 끊임없이 대사를 나누기 때문입니다. 사제와 교우들이 미사 내내 계응을 해가며 봉헌하는 까닭입니다. 더구나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위대한 사랑의 완성인 제사의 재현인 까닭에 숭고하고 거룩한 연극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미사에 대한 준비의 의미를 깊이 성찰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연극은 세월을 두고 계속 반복된다 하여도 결코 빛을 잃는 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관중을 동원합니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난 지 400년이 흘렀어도 그의 작품은 아직도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햄릿과 오셀로,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러합니다. 그의 작품들이 연극 무대에 올려질 때면 사람들은 엄청난 입장료를 지불해 가며 연극을 보려 합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성스러운 실제 역사인 미사는 그 같은 연극과 비교할 때 왜 그다지 뜨거운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연극은, 이미 그 내용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결코 재미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재미보다는 감동이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사랑을 받았던 것입니다.
진정 그 같은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준비부터가 대단합니다. 철저한 대사 연습, 동작, 복장과 무대 미술, 각종 소품들, 조명, 음향, 음악까지 철저한 준비를 합니다. 만약 작품은 훌륭하나 연극의 준비에서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되면 그 연극은 비웃음을 살 것이고, 관중을 떠나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미사는 어떤 준비를 갖추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주례 사제의 정성과 깨어있는 자세, 철저한 강론 준비, 미사 경본의 발음과 자세 등…. 혹은 교우들의 미사 준비는 어떠했는지, 그날 독서와 복음은 읽어 봤는지, 정성을 드려 미사를 봉헌할 거룩한 마음의 준비는 갖추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당이 굿을 한 번 하려 해도 지극정성의 준비를 갖추며, 굿이 끝난 다음에는 며칠을 앓아눕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당의 굿판보다 못한 예를 주님께 드리고, 감히 미사가 재미있다느니, 재미없다느니를 논하고 교만의 거드름을 떨었습니다.
교회법 제905조 2항에는 “교구 직권자는… 주일과 의무 축일에는 세 번까지도 미사를 거행하도록 허가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원칙은 모든 사제가 하루에 한 번만 미사를 드릴 수 있는데, 부득이한 경우에는 더 드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미사를 드리는 것에 제한을 하는 까닭은 사제가 미사를 여러 대 드릴 경우 온전한 정성의 미사가 아니라 해치우기식의 형식적인 미사가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사는 위대한 희생의 제사, 거룩한 사랑의 제사, 천상의 잔치이며, 아름다운 기억과 추억과 회상의 잔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간곡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미사에 대한 아름다운 증언이 있습니다. 미국 오하이오 주 스투벤빌 프란치스코 대학의 신학과 성경학 교수인 스코트 한 박사는 원래 개신교 목사였고, 요한 묵시록 전공 교수였습니다. 그랬던 스코트 한 목사를 가톨릭교회로 이끈 것은 위대한 가톨릭의 신앙 자산인 미사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20년이 넘게 요한 묵시록을 연구해오고 있다. 지난 1985년까지는 개신교 목사로서 묵시록을 연구했으며 이런저런 해석 이론들에 두루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잠겨 있는 묵시록을 열기 위해 갖은 열쇠들을 다 동원해서 시험해 보았지만 어떤 열쇠로도 그 문을 열 수 없었다. … 닫혀 있던 묵시록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것은 내가 미사에 관심을 가지고 고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나도 모르게 위대한 그리스도교 전통 안으로 깊숙이 빠져들게 되었고, 결국 1986년 세례를 받고 가톨릭교회에 정식으로 입교하였다. … ‘나는 하늘의 문이 하나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묵시 4,1) 그 문은 미사 때에 열리는 문이었다.” (스코트 한, 「어린양의 만찬」)
많은 개신교 신자가 자신들에게는 없는 이 위대한 신앙의 유산인 미사 때문에 가톨릭으로 귀의합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가 미사를 보물로 인식하지 못하고 무거운 짐으로 여기고 있다면 참으로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사에 대한 지루함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가 얼마나 미사를 철저히 소중하게 준비했는지를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거룩한 미사성제는 결코 재미로 봉헌되어서는 안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