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부터 약 50여년전 베트남에 한국군을 파병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는 전세계가 공산권과 공산권이 아닌 국가로 나뉘어 대립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념이 다르면 서로 적으로 간주하던 소위 "동서냉전"의 시대였습니다.
대한민국은 자유와 평화를 지킨다는 명분아래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베트남에 대규모 군대를 파병합니다.
연인원 약32만명, 최대주둔병력 5만명의 대규모 병력 이었습니다.
2. 베트남전중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트남전중 미군 또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또는 점령지에서의 잔혹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부 성폭력을 포함한 잔혹행위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물론, 일부는 피해자측에 의해서 과장된 면도 없지 않겠지만,
객관적인 자료로 잔혹행위가 실제로 존재하였음이 입증된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생존자나 목격자, 또는 희생자의 가족등의 증언도 많으며,
한국군 참전지역인 베트남 중부 지역 마을에는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져 있는 곳도 있습니다.
3. 베트남 전쟁은 적군을 구분하기 어려운 게릴라전이 많았습니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피해자 입장에서는 잔혹행위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작전을 수행하는 한국군의 입장에서는 일부는 정당한 작전수행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들면, 마을 주민중 누군가가 베트콩과 내통하거나, 지뢰나 부비트랩등을 설치하여
한국군을 죽거나 다치게 했기때문에
민간인 학살은 잔혹행위가 아니라 정당한 공격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베트남전에서 적군과 민간인을 구분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미군과 한국군을 돕는 민간인들도, 갑자기 돌변하여 베트콩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특히, 한국인이 주둔하던 베트남 중부지방은 북베트남의 비밀군사통로인 호치민루트를 통해
베트콩이 많이 침투하는 지역이었습니다.
4. 월남전 당시 한국군의 범죄는 엄격하게 처벌되었습니다.
전쟁은 잔인하고 인간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현상이 흔하게 나타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때 발생한 문제니까
잔혹행위는 별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우리나라의 군형법 84조에는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제84조 (전지강간) ①전투지역 또는 점령지역에서 부녀를 강간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
②전항의 죄에 대한 공소에는 고소 를 요하지 아니 한다.
처벌조항이 사형 밖에 없다는 점이나, 고소가 없어도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은
일반 형법과 비교하면 매우 엄격한 법조항입니다.
( 요즘은 좀 달라졌지만, 원래, 강간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했습니다. )
그러면, 이 법조항이 실제로 적용되었을까요?
물론입니다. 실제로, 월남전중 이법에 적용되어 사형에 처해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엄격한 군법때문에
월남전중 잔혹행위가 절대로 없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군에 의한 성폭행 범죄가 일부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한국군을 성폭행범으로 보는 것은 분명한 잘못입니다.
전쟁터가 아닌곳에서도 성폭행이나 살인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죠.
따라서, 일부, 한국군의 성폭행 행위가 있었다고,
그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고 보는 것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5. 월남전중 잔혹행위는 국가차원의 범죄가 아니었습니다.
월남전중 한국군의 잔혹행위는 엄격하게 금지되는 범죄로 취급되었지만,
이 때문에 그런 잔혹행위가 전혀 없었다고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군의 문제가 되는 잔혹행위가 국가의 지시에 의한 국가차원의 범죄가 아니라
일부 지휘관이나 지휘관의 통제를 벗어난 개인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2차대전중 일본은, 국가가 군대와 경찰력을 동원해서 부녀자를 속이고
심지어는 납치해서 성노예로 만든 일본군 성노예 문제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겁니다.
신문에 누가 먼저 100명의 목을 벨 수 있는지 경쟁하는 기사를 공공연하게 보도하면서,
국가차원에서 잔혹한 행위를 찬양하고 부추겼던 일본과는 분명히 다른 겁니다.
6. 진정한 사과가 없으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국가간의 불행했던 과거사에 대하여 사과와 배상요구가 계속되는 것은
상대방이 똑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를 수도 있다는 불신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의 식민지배와 2차세계대전에 대하여 여러 차례 사과를 했다고 말합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말하고 있죠.
그런데, 우리나라사람들은 이에 대해서 수긍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인 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사과는 커녕 사실인정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한국과 일본사이에 똑같은 불행한 역사가 반복될 수도 있다고 의심하는 겁니다.
7. 한국과 베트남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베트남과 우리나라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월남전의 앙금이 없을 수 없겠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이 똑같은 잘못을 할 것이라고 걱정하지 않기때문에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는 과거사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베트남의 공식적인 사과요구가 없었지만
한국군에 의한 월남인의 피해에 대해서 유감의 뜻을 표한 적이 있습니다.
만일, 베트남이 월남전의 과거사 문제에 대하여 사과를 요구한다면
사과를 해야 맞습니다.
필요할 경우 배상도 해야하고, 재발방지 약속도 해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일부 민간단체는 성금을 모금해서
불행했던 과거사를 치유하기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현지에 희생자들의 위령탑을 세우는데 도움을 주기도하고,
희생자들의 추모행사에 참여해 베트남인들을 위로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한국군에 의해 피해를 입은 마을에 정기적으로 후원하거나 장학금을 주는 사람도 있고
특히, 대학생이나 젊은이들 중에는 개인 또는 단체로
그곳을 방문해서 진정으로 사과의 뜻을 전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얼마전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표현했던 것도
불행한 과거사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의 하나입니다.
베트남의 공식적인 사과 요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유감을 표시한 점이
일본의 과거사를 대하는 태도와 180도로 다른 겁니다.
8. 사과의 횟수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언제까지 베트남에게 사과를 해야하나요?
베트남이 제발 사과 좀 그만 하라고 사정할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겁니다.
사과의 횟수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사과의 진정성이 있다고 믿어지면 단 한번의 사과로도 충분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사과를 하지 않아도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9. 일본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답변자는 2000년 1월 중국에 있는 난징 대학살기념관을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1937년 중국의 난징에서 일본군에 의해 불과 2주사이에
약 30만명의 중국인이 살해 되었던 "난징 대학살에 직접 참가했던 일본군 두 명이
자신의 과오를 중국인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편지를 중국인에게 보내고,
난징을 방문해서 피해자를 찾아 사과했던 적이 있습니다
.
답변자가 방문했을 때, 그 나이 많은 일본군에관한 사진,편지, 관련기사들이
그 곳 게시판에 전시해 놓은 것을 아주 인상깊게 본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지 얼마후,
일본 정부는 난징대학살에서 자신의 잔혹행위를 개인적으로 사과한
늙은 일본군 병사 두 사람을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형사 재판에 넘겼습니다.
두 사람은 5년이 넘도록 일본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상대로 재판을 하며 고생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 자세히는 모르지만, 유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
이렇듯, 일본인은 국가차원에서 자신의 과오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개인자격으로 사과하는 것도 국가차원에서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입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은 절대로 잘못하지 않는 완전무결한 민족이라고 믿는 경향이 많습니다.
축구 응원단의 이름이 울트라 니뽄이죠, 너무너무 뛰어나고 우수한 일본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일본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데, 사과를 했을리가 없죠.
1,2차 세계대전의 전범 국가인 독일의 태도와 전혀 다르죠.
독일은 지금도 틈만 나면, 2차대전의 과오를 사과하곤 합니다.
수상이 외국을 방문할 경우, 무릎꿇고 사과의 뜻을 표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입니다.
10. 기회가 되면 베트남을 꼭 방문해 보세요.
답변이 너무 길어졌네요.
우리나라는 1992년 베트남과 수교를 하면서,
전쟁피해 배상을 위한 조사를 베트남 정부에 먼저 제의 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당국의 반대로 이에대한 진상조사나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한국은 베트남에 많은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군이 주둔했던 베트남 중부지방에 큰 병원을 여러 개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한국은 베트남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 현재, 베트남 과학기술원 (VKIST) 설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은 한국과학기술원 (KIST)의 공헌이 큽니다. 이런 한국의 개발 경험을 베트남에 아낌없이 전수해 주고 있습니다. << 아래 인터넷 기사 참조하세요. >>
그 밖에도 대한민국 정부는 물론, 민간 기업차원에서 한국과 베트남은 전방위적으로 경제적인 협력 관계에 있습니다. 즉, 2018년 현재, 베트남에 가장 많은 투자와 경제적인 지원을 하면서
베트남과 협력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베트남의 교역상대국 1위는 중국이고, 2위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2017년 베트남 최대 투자국도 역시 대한 민국입니다.
우리나라의 2017년 수출대상국 1위는 중국이고, 2위는 미국, 3위가 베트남일 정도입니다.
베트남 투자액, 교역량은 매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한국과 베트남의 과거사 문제가 남아있다면 과연 이런 관계가 가능할까요?
11. 북베트남 전쟁영웅 보 구엔 지압 장군의 발언을 참고할 만 합니다.
북베트남이 미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북베트남 최고의 전쟁영웅인 "보 구엔 지압"장군의 3불전략 이라는 뛰어난 지략 때문이었습니다.
즉, 북베트남과 베트콩은 다음과 같은 3불전략에 따라 전투를 했습니다.
(1) 적이 원하는 장소에서 싸우지 않는다.
(2)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는다,
(3) 적이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싸운다.
베트콩은 이런 3불전략을 철저히 따랐기 때문에
미군이나 한국군이 민간인과 쉽게 구분하기가 어려웠고,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시간에 전혀예상하지 못하는 장소에서 베트콩의 공격을 받곤 했습니다. .
이런, 3불전략의 창시자였던 "보 구엔 지압" 장군과
국내 모 언론사의 면담 보도에 따르면,
지압장군은
"베트남전 중에 한국군이 한 일을 잘 알 고 있지만, 나쁜 감정은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답변자는 한국과 베트남간에 미해결된 역사적인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베트남이 사과와 배상을 요구한다면 대한민국은 100만번이라도 사과하고 배상해야 합니다.
12. 답변자는 2018년3월18일 하미마을 한국군 학살피해자 위령비에
개인적으로 참배하고 왔습니다.
진실은 감춰지지 않습니다.
사과할 것은 깨끗이 사과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