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것을 확실히 정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비평문을 쓰는 것인지, 문화(현상) 비평문을 쓰는 것인지. 질문에 쓰신 내용으로 보면 이것이 좀 애매합니다. 문화와 영화로 시작해서 문화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방식을 얘기한다니까 문화 비평 같은데, 결론에서는 영화 얘기로 마무리 하겠다니까 또 영화 비평 같기도 합니다.(영화 비평인지 문화 비평인지 딱히 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면 그냥 쓰셔도 될 듯함.)
영화 비평이라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술 작품) 비평문이 되고 문화 현상에 대해 비평하는 글은 우리가 주로 신문의 '칼럼'에서 만나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질문에 쓰신 내용으로는 '칼럼'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이것을 개인이 어떤 이유로 쓰게 되면 그냥 '문화비평문'이 됨.)
왜냐하면 예술 작품(도서, 영화, 연극, 드라마, 무용, 미술, 음악 등 ) 비평문은 예술 작품을 분석하고 그 가치를 판단하는 글인데, 질문에 쓰신 내용으로 봤을 때는 영화는 문화 현상을 얘기하기 위한 도구로 보이거든요. (예술 작품) 비평문의 글에는 이런 문장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
- 이 넷플릭스 시리즈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적자생존, 계급사회, 승자독식과 같은 문제점들을 탁월한 연출 기법과 스토리 텔링 기법을 활용하여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출처- blog.naver 과학커뮤니케이터 박종현)
예술 작품(책, 영화 등)을 소재로 문화 현상을 얘기하는 글(칼럼)에는 이런 글이 있더군요.
(저는 종교가 없는 사람으로서 다음과 같은 글은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데, 예로 들만한 글이 마땅한 게 없네요.ㅠㅠ 아래의 글은 전체 칼럼 글이 상당히 길어서 반 정도만 옮긴 것임.)
이 칼럼은 전체 글의 절반 가까이 되는 분량은 어느 책에 대해 분석해 놓았습니다. 여기까지의 내용은 도서 비평문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대중 문화 현상'이기 때문에 글쓴이는 이 책을 매개로 하여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대중 문화의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결론적으로는 문화 현상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죠.
글쓴이는 책을 언급한 후, 그 뒤에 영화, 드라마, 웹툰까지 예로 들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정황들을 종합해볼 때, 신상언 선교사의 책 제목인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는 적절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에도 대중문화가 점차 기독교의 반대 세력인 마귀를 옹호하는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이런 성향이 아예 노골화되었을 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이런 분위기에 아예 둔감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크리스천투데이 / 2019.07.28 / 박욱주 칼럼)
결론은 이 내용이기 때문에 이 글은 예술비평이 아니라 대중 문화 현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쓴 글을 신문에 게재한 '칼럼(문화 비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칼럼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 2019.07.28 / 박욱주 칼럼)
웹툰과 드라마… 대중문화의 ‘루시퍼(마귀)’ 선호 현상
◈루시퍼의 선택: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라는 책이 있다. 기독교 문화사역자 신상언 선교사가 집필한 저서로, 1990년대 한국교회 전반에 커다란 충격을 선사한 바 있다.
이 책 제목은 그 내용 전체를 매우 적절하게 표명하고 있다. 마귀가 어떤 방식으로 대중문화를 이용해 사람들의 영혼을 갈취하는지 분석해 폭로하는 것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신상언 선교사는 1960년대 미국 히피 운동부터 시작해 당대의 영화, 음악, 저술, 대체종교(특히 뉴에이지 운동) 등이 어떤 사상적 기원과 계보를 갖고 있는지를 밝히고, 대중문화가 매우 ‘은밀한’ 방식으로 ‘사탄’을 대변하고 찬양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증거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교회와 신자들이 이처럼 위협적인 상황을 충분하게 인식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의 글은 분명 학문적으로 공신력 있는 이론과 증거를 온전하게 제시하지 못했다는 약점을 보인다. 그렇지만 강한 학문적 권위를 힘입지 못하고 있다 해서, 이 책에서 시도된 문화평론의 의도와 열정마저 폄하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 생각한다.
목회 현장에서 대중문화 때문에 맞부딪치게 되는 여러 문제들과 관련해, 그의 저서는 상당히 유익한 내용들을 전달하고 있다.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 출간 이후, 한국에서 문화평론을 시도하는 이들 가운데 크든 작든 이 저서에 영향을 받지 않은 이를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문화를 통해 침입하는 마귀의 친근하고 매력적인 이미지에 우려를 표명하던 기독교 문화평론가 및 문화 사역자들에게 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 속에 제시된 마귀나 사탄의 표상들은 비교적 간접적이고 은밀하다. 이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마귀나 사탄을 드러내놓고 찬양하거나 친근한 이미지로 묘사하는 것에 대해, 미국이나 한국이나 사회적으로 상당한 거부감을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당시 대중문화 속에 은밀하게 숨어있는 마귀와 이교 숭배의 표상들을 암호를 풀듯 이리저리 찾아보고 해석해내야 했다. => 여기까지만 보면 이 글은 '도서 비평'에 해당됨.
대략 20여 년이 지난 지금 현재의 미국과 한국 대중문화를 보면, 기독교 문화사역자나 평론가들은 굳이 마귀, 사탄, 이교숭배, 오컬티즘의 표상을 뒤져서 찾아낼 필요가 없다. 대중문화 전반이 드러내놓고 루시퍼를 영웅시하기에, 이전처럼 따로 수고할 일 자체가 없는 것이다.
이제는 영화도, 드라마도, 음악도 마귀 혹은 사탄을 ‘빛의 사자’ 즉 루시퍼라는 매혹적인 이름으로 불러대기에 바쁘다.
무엇보다 이 이름을 달고 등장하는 캐릭터 대부분은 ‘종교’ 혹은 ‘기독교’라는 이름의 구시대적 굴레를 벗어던지는 혁신가의 모습, 인간에 대해 도도하거나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결국에는 인간을 돕는 친구의 모습으로 그려진다.(이하 생략)
(칼럼 출처 -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4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