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밥 - 김륭
개구리밥은 먹지 못한다는 걸
이젠 알아요
개굴개굴 개구리들이
밤새도록 볶아요
프라이팬에 식은 밥 볶듯 개구리들이
무논 가득 울음을 볶아요
지글지글 달빛이 끓어올라요
와글와글 별빛이 눌어붙어요
자장면이나 짬뽕은 싫은가 봐요
볶음밥이 입맛에 맞나 봐요
개구리들이 달달
울음을 볶아요
꽃밭 - 윤석중
아기가 꽃밭에서
넘어졌습니다.
정강이에 정강이에
새빨간 피.
아기는
으아 울었습니다.
한참 울다
자세히 보니
그건 그건 피가
아니고
새빨간 새빨간
꽃잎이었습니다.
꽃밭과 순이 - 이오덕
분이는 달리아가 제일 곱다고 한다.
경식이는 칸나가 제일이라고 한다.
복수는 백일홍이 아름답단다.
그러나 순이는 아무 말이 없다.
순아, 넌 무슨 꽃이 더 예쁘니?
채송화가 제일 예쁘지?
그래도 순이는 아무 말이 없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순이.
순이는 목발로 발 밑을 가리켰다.
꽃밭을 빙 둘러 새끼줄에 매여있는 말뚝
그 말뚝이 살아나 잎을 피우고 있었다.
거꾸로 박혀 생매장당한 포플러 막대기가!
늙은 잠자리 - 방정환
수수나무 마나님 좋은 마나님
오늘 저녁 하루만 재워주셔요
아니 아니 안돼요 무서워서요
당신 눈이 무서워 못재웁니다
잠잘 곳이 없어서 늙은 잠자리
바지랑대 갈퀴에 혼자 앉아서
추운 바람 서러워 한숨 짓는데
감나무 마른 잎이 떨어집니다
달 - 이원수
너도 보이지.
오리나무 잎사귀에 흩어져 앉아
바람에 몸 흔들며 춤추는 달이.
너도 들리지.
시냇물에 반짝반짝 은부스러기
흘러가며 조잘거리는 달의 노래가
그래도 그래도
너는 모른다.
둥그런 저 달을 온통 네 품에
안겨 주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은.
빛 - 정유진
나는 항상 직진
아무도 말리지 못해요.
나는 항상 일방통행
아무도 날 막지 못해요.
때론 오목이가 와서
우리 사이를 벌려놓아도
때론 볼록이가 와서
우리 사이를 모아놓아도
요것들아
그래도
나는 항상 직진이다.
알코올램프 - 김경옥
팔? 없어요.
다리? 없어요.
그래도 넘어지지 않아요.
넓고 둥근 엉덩이가 받쳐주니까요.
혼자서는 심심해.
삼발이와 같이 놀고
모래상자랑도 같이 놀고
점화기는 떼어놓을 수 없는 친구예요.
점화기가 머리를 스치면
보일듯 말듯 아름다운 파란 꽃이 피어나요.
이쁘다고 만지지 말아요. 무지무지 뜨거워요.
검은 모자를 씌워주세요.
한번, 아니아니 꼭 두번.
연필과 지우개 - 안재동
쓰고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쓰고
다시 지우고
연필도 지우개도
닳아 점점 작아지네
그러다 언젠가는 둘 다
누군가에게서 끝내 버림을
받겠네! 애꿎게도 그들의 흔적만
종이에 남겠네! 노인 얼굴의 주름살처럼
옹달샘 - 손광세
깊고 깊은 산 속에
옹달샘 하나
맑고 맑은 물 속에
파아란 하늘
조롱박 하나 가득 물 마시면
입 속으로 들어오는 파아란 하늘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 배은진
날씬날씬 기름양
듬직듬직 워터군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사랑해선 안 되는 사이
손 한번 잡아보고 싶어요
한번만 안아보고 싶어요
하나되지 못한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네요.
너희들의 소원을 들어주마.
비누도사의 마법에
하나된 기름양과 워터군
사랑의 상처도 깨끗이 사라지네요.
좀좀좀좀 - 한상순
잠 좀 자라
공부 좀 해라
내방청소 좀 해라
제발,
뛰지 좀 마라
게임 좀 그만해라
텔래비전 좀 그만봐라
군것질 좀 그만해라
엄마 잔소리 속에
꼭 끼어드는좀좀좀좀
지층 - 시체놀이 - 조미정
가위! 바위! 보!
맨 꼴찌인 수정이는 맨 밑에 눕고,
그 다음으로 진 민정이는
수정이 위에,
그 다음으로 진 현지는
민정이 위에,
일등인 혜정이는
현지 위에,
혜정이가 부러운 수정이,
수정이는 혜정이보다 더 한참을 누워있어야 했다.
찻숟갈 - 박목월
손님이 오시면
찻잔 옆에
따라 나오는 보얗고 쬐그만
귀연 찻숟갈.
"손님이 오시면
찻숟갈처럼 얌전하게
내 옆에 앉아 있어."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네, 아버지."
나는
대답도 찻숟갈처럼
얌전하게 했다.
보얗고 쬐그만 귀연 찻숟갈.
이중에서 골라서 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