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가 1831년 출간한 장편 소설. 원제는
《노트르담의 곱추》가 아니라 《파리의 노트르담》이다.
이 작품은 특이 하게 역사성을 강조하고있는데
로마제국에 의해 핍박받던 교회는 5세기 로마의 몰락 이후 생겨난 프랑크왕국과 상호관계를 가지며 중세 교회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황권은 강화되었는데요.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황제와 교황이 대립하여 일어난 카노사의 굴욕 사건으로 이 당시 황제의 권위보다 교황의 권위가 더 위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죠! 하지만 권력의 정점에 선 교회는 11세기 - 13세기 십자군 전쟁, 백년전쟁으로 점점 민중들의 불만을 이끌었고 면죄부 판매 등의 세속화 된 모습을 보이다가 마침내 16세기 종교 개혁과 절대 왕정 시기의 도입으로 권력을 잃게 됩니다.
작품 속 프롤로의 행동을 통해 교회의 타락을 엿볼 수 있는데요. 프롤로가 에스메랄다를 마녀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했듯이 실제 당시 사회에서도 귀족과 성직자는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지만 민중들은 누명을 쓰고 처벌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지요. 14세기에 이미 교회들은 최대한 많은 수입원 확보를 위해 혈안이었고 정신적 수련과 보상을 받지 못한 신부들이 앞장서 성물을 판매한걸로도 모자라서 나중에는 면죄부를 판매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고 해요. 이런 점으로 볼 때 16세기에 일어난 마틴 루터와 칼뱅의 종교 개혁은 당연한 결과 로 생각 합니다
환영 받지 못하는 이방인 집시
Laisser entrer ces paiens, ces vandales 성문 앞을 메운 이교도들의 무리
가사에 등장하는 이교도들이란 에스메랄다와 같은 집시들을 의미하는데요. 우리는 여기서 왜 집시들을 싫어하는가? 라는 궁금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실 집시들이 처음에 유럽에 등장했을 때는 사람들이 집시들을 싫어하지 않았다고 해요. 오히려 유럽인들과는 다른 외모로 주목도 받았고 무리지어 떠돌아다니는 집시들을 위해 일정 부분 지원을 할 정도로 그들을 품어주었어요. 하지만 기존 유럽의 가난한 사람들은 이것을 고운 시선으로만 볼 수는 없었겠죠? 그리고 정착을 해서 영주들에게 세금을 낼 것이라는 이유로 지원을 했던 영주들의 기대도 져버리고 계속 떠돌이 생활을 하는 집시들을 사람들은 소비만 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됩니다.
현대적 의미로 불법 난민들이 교화 건물안에서 알라를 외쳐대는 것을 용압 할수 없는 종교와 문화의 대 충돌
이런 것을즈도한 세력은 귀족들인데 귀족들은 신상한 교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가난한 자 이민족에대한 합법적이고 완전한 탄압을 교회를 배경으로 하면 면죄부가 될것이라는 얄팍한 선동으로 민중을 분리 시켜 이교도나 이민족을 탄합
이 소설의 이런 야비한 귀족을 비판 하는데 대부분을 차지 하고있다는 사실
추가 답변'
귀족층의 부패가 프랑스 혁명으로 해결???
절대 아닙니다 피흘린 시민 이 민중은 루이16세와 마리앙 왕비를 단두대로 보낸것만으로 만족 하고 혁명은 공안위원회의 노리감 였고 마지막으로 등장한 나폴렝옹의 군사 반정과 통령 정부당시 통령 정부를 지지한 귀족세력들의 합작품이 나포레옹을 황제로 만든것입니다
결국 시민이 흘린 피는 댓가 없는 행동였고 나폴레옹은 귀족을 등에 엎고 황제가 되고
황제의 무도한 정책으로 돌아선 귀족들은 나포레옹을 귀양을 보내는데 적극협조한 역사의 아니러니를 입니다
피흘린 시민들의 댓가는 전무 하고 비엔나 협약으로 프랑스는 혁명전 으로 되돌리고
유럽의 3등국가로 전락 한것입니다
시민들은 혁명 전 형태로 장군 황제는 몰락 살아 남은것은 절대 귀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