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의 음악성은
운율(3.4 조, 4.4조, 6.4조, 7.5조 등)과
음보(2음보, 3음보, 4음보)로 표현됩니다.
1. 참고로 김소월의 다른 시, 가는 길은, 7.5조의 운율과 2음보의 음악성을 지녔습니다.
그립다 말을 할까 /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 다시 더 한 번····
져 산에도 까마귀 / 들에 까마귀
7글자 / 5글자 = 7.5조 운율
2. 먼 후일은 6.4조의 운율과 2음보의 음악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먼 훗날 당신이 /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 '잊었노라'
3. 이형기의 낙화는 내재율을, 즉 '가는 길'과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정형(7.5조)은 아니지만, 안으로 품고 있는 음악성을 지닌 것입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이렇게 대략 2음보의 걸음 마디로 끊어 읽을 수 있는데, 이렇게 끊어 읽을 수 있는 음악성을
가리켜 음보라 합니다.
시는 운문입니다. 즉 소설이나 수필과 같이 글이 펼쳐진 형태의 산문이 아닌 운율을 지닌 문장 이라는 뜻에서 운문이라 합니다.
따라서 교과서에 실린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시들은 다 운율이나 음보, 즉 음악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음악성이 없는 시는 죽은 시이거나 거의 실패한 시들입니다.
"운율이란 시를 읽을 때 느껴지는 말의 가락이다. '운(韻)'과 '율(律)'이 합쳐진 말로, 시의 음악성을 형성하는 요소이다. 운율은 규칙적인 리듬이 겉으로 드러나는 '운(韻)'과 '율(律)' 이외에도, 형태로 포착할 수는 없지만 시 속에 미묘하게 내재된 음악적 요소까지 포함한다."
"음보(音步, foot)란 운율을 이루는 소리 덩어리로 보통은 띄어 읽는 단위, 즉 호흡을 끊어 읽는 단위가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각각의 음보는 발음하는 시간이 대부분 비슷하며, 한 행이나 한 연을 몇 개의 덩어리로 끊어 읽느냐에 따라 2음보, 3음보, 4음보 등으로 구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