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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전)<부의 세계사>

작성자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2024-05-01 10:52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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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운명은 어떻게 결정될까?

그리고 '부'란 무엇일까?

부란 번영의 산물이다. 부는 단순히 생존하는 것을 뛰어넘어 인간이 더 잘 살 수 있는 그 무엇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부를 이루는데 바탕이 되는 번영이란 단순히 많은 땅을 가지거나 많은 돈을 가진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떤 나라에 좋은 인프라를 공급한다고 해서 그 나라가 번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천연자원을 많이 가진 나라가 부유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부유한 나라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바로 제도와 관행이다. 
 
 
1.생존을 넘어 번영으로 

현대인들에게는 놀랍게도  인류는 20세기 이전에 이르기까지 부를 누리지조차 못했다. 우리 시대의 가장 가난한 사람이 누리는 가스, 냉방, 전기등의 시설조차도 20세기의 가장한 부유한 사람이 누리지 못한 혜택이었다. 
 
그렇다면 인류는 왜 지금까지 그토록 가난했을까? 
 
경제학자 지망생이었던 멜서스는  멜서스의 덫 이론을 제시했다.  
 
그의 이론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구가 늘어나는 속도는 기하학적인 반면 식량 생산량은 산술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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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으로 식량이 풍부해지면 인구가 빠르게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력의 많은 공급은 노동자의 가치 즉, 임금을 낮추게 된다. 그에 따라 식량 비용에는 부담이 생가고 결혼을 하려는 인구는 줄어든다. 결혼의 억제로 인구가 줄어들면 식량이 증가하고 저임금에  따라 지주는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여 생산한다. 그리고 이 순환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러한 멜서스의 잔인한 세계는 오랜 기간 인간이  번영으로 가는 길에 족쇄가 되어왔다
 
그러나 1800년 이후의 표는 인간이 초승달 모양에서 벗어나 다시는 굶주림의 위기로 돌아가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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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부터 1999년에 인간의 평균 수명은 66세에서 78세로 늘어났고(개발도상국의 경우 44세에서 64세) 평균적인 사람의 1인당 GDP는 (국내총생산) 세배 증가했다.

뿐 만 아니라 유아사망률, 교육 수준, 문맹률 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그리스도의 탄생시기에 전 세계 인구는 2억 5000만 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2000년에 들어서 인구는 60억 명에 이른다. 
 
이 모든 변화가 20세기에 폭발적으로 이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인류가 확장적 성장(인구=경제력) 에서 벗어나 집중적 성장(개인화된 물질적 웰빙 증가)에 기인한다. 
 
바로 '기계'의 등장 덕이었다.
 
 
2.국가는 어떻게 부유해질까
 
신기술은 1인당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다.

그렇다면 인류사에 기계가 등장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윌리엄 번스타인은 기계가 탄생하기위해 다음의 네가지 관행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 시민권
  2. 과학적 합리주의
  3. 현대적 자본시장
  4. 정보및 운송능력 

1. 시민권(=재산권)
생산자들은 자신의 노력의 산물이 국가나 범죄자 또는 독점자에 의하여 몰수되지 않아야 한다.  물론 무조건적인 금지는 아니다. 세금을 부과하고 상업의 수용권을 제한하는 일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재산은 보호되어야 하며 타인에 의해 강탈당해서는 안된다. 
 
2. 과학적 합리주의 
경제의 발전이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것을 상업화하는 과정에 달려있다. 이러한 발명에는 합리적 사고를 하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증명된 사실을 왜곡하여 지적 탐구자를 압박하는 국가는 새로운 기술을 탄생시키는 아이디어를 말려 죽인다. 
 
3. 자본시장 
서비스와 제품의 생산에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아이디어가 있더라 하더라도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능력을 넘어서는 자본이 필요하다. 19세기 이전에는 야심 찬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자금에 접근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4. 빠르고 효율적인 통신과 운송
마지막 단계는 만들어진 제품과 서비스를 멀리 떨어진 구매자에게 광고하고 유통하는 것이다. 위의 조건 재산권을 가지고 합리주의에 기반한 아이디어, 그리고 자본이 있더라도 제품을 적절한 가격에 소비자에게 전달되지 못한다면 혁신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 4가지가 갖추어지기 전까지 국가는 번영할 수 없다. 이 네 개의 다리 중 하나라도 망가지는 경우 전체가 무너진다. 재산권이 없는 공산주의 국가의 멸망 합리주의가 없는 중동의 국가를 떠올려 보라 이 네 가지 조건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모두 필수불가결하다.
 
3. 근대이전의 세계
 
근대이전의 세계에서는 왜 이러한 4가지 요소를 갖추지 못했을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를 억압하는 제도와 관행을 채택했기 때문이었다.
 
재산권이 등장하기 전의 대부분의 나라는 봉건제의 형태를 띠었다. 농민과 노예는 주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에게 귀속되었다. 이는 현대의 월급을 받는 재정적 관계 상업적 약속이 아니라 인격과 몸을 통째로 주인의 보호와 맞바꾸는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생산자들은 판매를 위한 여분의 생산을 하지 않았으며 가끔 추가이익이 난다면 그 거래조차 물물교환으로 증발했다.
 
그렇다면 귀족들은 어떨까? 귀족들도 노예만큼이나 비참한 처지였다. 영주가 토지를 물려받는 게 아니라 토지가 영주를 바꾸는 것이었다. 가문 대대로 얻은 토지는 쉽사리 거래하거나 개선할 수 없었으며 봉신관계의 갑(주로 왕)에게 언제든 몰수당할 위험에 처해있었다. 뿐만 아니라 냉장기술이 발달하지 못하여 여분의 생산물을 저장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인센티브의 부재로 농부는 더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고 귀족들은 추가로 생산할 필요가 없었다.     
 
과학적 합리주의 또한 많은 압박을 받았는데 종교의 권위가 위세를 떨치던 시기에는 종교에 불리한 모든 과학적 상상력이 공격을 받았고 탐구자들은 마녀나 이단이 되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죽음의 고비를 넘겼으며 실제로 비슷한 시대에 같은 주장을 한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는 화형을 당했다. 
 
또한 합리주의의 발판이 되는 문자는 교회의 사제들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성경 여러 부를 필사하는 사람은 이단으로 처벌받았고 받은 사람도 교수형에 처해졌다(보름스 사건).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통해 교회의 권위를 무너뜨리기 전까지도 정신세계의 폭정은 그치지 않았다. 
 
자본시장의 부재도 영향을 미쳤다. 5000전에 돈이 처음 등장하기 전에 인간은 물물교환으로 거래를 했다. 그러다 수메르 때에 이르러 마침내 부채의 개념이 들어섰다. 곡식과 은을 빌려주는 대신에 고금리(곡식 30% 은 20%)의 거래가 있었다.
 
로마제국의 절정기에는 4%의 이자율이 있었지만 몰락기에는 12%의 이자율로 치솟는 등 변동성이 많았다. 12세기의 영국은 40%의 이자율의 기록이 있었다.  이러한 높은 이자율은 수세기 동안 상업적, 경제적 구속복으로 작동했다. 

예비 사업가는 높은 이자율과 채권자법(갚을 때까지 구속)때문에 사업을 벌일 수없었고 자본시장의 부재로 투자자는 투자할 만한 곳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운송 형편도 좋지 않았다. 19세기 이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봉건제도의 귀족들은 추가적인 자금확보를 위하여 통행세를 받아서 메꾸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부과되는 높은 통행료는 사람들의 지리적 이동을 감소시켰으며 상인들의 상업활동에 큰 리스크가 되었다. 실제로 20세기 초까지 포드의 모델 T가 나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출생지에서 20마일 내에 살다가 사망했다. 그런 상황이 근대의 여명기까지 계속되었다.
 
=>다음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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