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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사우디군의1979년 사우디군의 메카 대테러 작전

작성자 익명 작성일 2024-05-27 10:00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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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1월 20일,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그랜드 모스크에서 새벽예배가 진행되고 있었음. 그런데 갑자기 일부 '신도들'이 흰색 예복 밑에서 총을 꺼내듬. 이들은 모스크의 모든 문을 쇠사슬로 걸어잠근 뒤 농성에 들어감. 당시 모스크 내부에는 나무 몽둥이로만 무장한 경찰관 두 명만 있었고 이들은 테러범들에게 바로 살해 당함. 출구가 워낙 많아서 수많은 순례객들이 탈출했으나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 500여명이 인질이 되어버렸음.  사우디 정부는 내무부 병력 100여명으로 초기 진압을 시도했으나 많은 사상자를 내고선 일단 후퇴함.


테러범들은 서구문화에 대한 거부, 그레고리력 폐지 및 이슬람력 사용, 텔레비전 폐지, 비무슬림 추방 등 이슬람 원리주의로의 회귀를 지지하는 이크완(Ikhwan)이라는 단체였음. 이들의 리더인 주하이만 알 오타이비(Juhayman al-Otaybi) '서양 이교도들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사우드 왕조는 부패했다'며 사우디를 진정한 와하비즘 국가로 만들겠다고 선언함. 그랜드 모스크를 점령한 이크완들의 숫자는 최대 600여명으로 추산됐음. 이들중에는 여성, 혹은 미성년자도 포함되어 있었음. 이크완은 태생적으로 반사우드 가문 성향이라서 사우디 정부는 이들을 반군으로 지정함. 이크완들은 이번 계획을 위해 몇년간에 걸쳐 사우디군의 무기고에서 무기를 빼돌렸고 그랜드 모스크 내부 곳곳에 있는 기도실들에 숨겨놨었다고 함.


심지어 사우디 국민들중 일부, 특히 신학과나 이슬람 율법학자들은 알 오타이비의 발언에 동조하며 지지를 보냈음. 이외에도 세계 각국의 이슬람 문화권에서 이크완을 지지하는 발언이 나오기 시작함. 사우디 정부는 이런 여론의 눈치와 성지인 메카에 무력투입을 해야한다는 사실에 갈팡질팡했고 약 2주간 대치만 함.


하지만 사우디 정보국장이자 왕자였던 투르키 알 파이살(Turki bin Faisal Al Saud)은 밀고 들어간다는 선택지를 고수했고, 이를 위해 메카에 사우디 육군과 왕실 친위대라 할 수 있는 방위군 부대까지 불러모아 도시 전체를 포위함. 그리고 자신들의 역량만으로는 내부 소탕전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여겨서 프랑스 정부에 요청하여 국가헌병대 대테러부대인 GIGN 1개팀을 고문으로 데려옴.


하지만 GIGN 요원들도 와서 보고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듬. 일단  모스크 자체가 방어에 너무나도 유리한 거대한 요새였음. 사방에 있는 예배용 첨탑들은 저격수가 배치되기 딱 좋은 건물들이었고 방이 너무나도 많았음. 그리고 사우디군은 모스크 내부의 상황, 인질의 숫자, 반군들의 병력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 (주: 위에 언급한 숫자들은 훗날 사태가 끝나고 나서 집계된 것들임.) 사우디군 내 최정예라는 특공부대들도 기량이 바닥을 치는 애들이었고 시간은 '단 며칠'만 주어짐.


그래도 GIGN 요원들은 최선을 다해 진압플랜을 짜줌. 일단 모스크 하수도의 물을 다 빼낸 뒤 거기에 최루가스를 주입하여 테러범들을 압박한다는 계획이었음. 한편 파이살과 사우디 국방부는 이슬람 종교위원회 이맘들을 압박하여 공격 허가권을 얻어냄. 원래 쿠란에 명시된 대로라면 모스크 안에서는 식물의 뿌리조차 함부로 뽑을 수 없을 정도로 폭력을 사용해선 안된다고 되어있음. 일부 이맘들이 결사반대했으나 '메카의 수호자'라는 명분이 필요했던 사우디 왕가는 지금 국가비상사태인데 그딴게 뭐가 중요하냐며 다 찍어누르고 탈환작전을 개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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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4일, 14시 정각. 사우디군은 메카 전체의 시민들을 소개시킴. 그리고 그랜드 모스크 정문 세 곳을 M113 장갑차로 들이 받으며 진입함. 그리고 하수관을 통해 최루가스도 주입함. 그런데 문제는 모스크 내에 방이 너무 많았고 죄다 연결되어 있어서 환기가 잘 된 탓에 가스가 공기중에 머물지 않고 죄다 밖으로 새어나감. 당연히 테러범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사우디군도 이판사판이다 싶어서 최루탄을 미친듯이 남발하여 모스크 전체를 도배해버림. 그리고 모든 방에다가 수류탄을 있는대로 까넣고 돌입함. 뭐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정말 개무식하게 병력을 들이부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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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저녁이 될 때까지 110명이 넘는 테러범들을 사살하고 리더 알 오타이비를 포함 60여명을 체포하는데 성공함. 하지만 더 많은 수의 테러범들이 인질들 사이에 섞여서 빠져나가버렸음. 탈출한 이크완들은 메카 곳곳에서 며칠 더 항전을 벌였음. 사우디군의 피해는 공식적으로 127명, 부상 451명이었음. 이는 '공식적 발표'였고 실제로는 더 많았을 거라고 추정됨. 인질들도 100명 이상이 사망, 혹은 부상 당함. 생포된 테러범 60여명은 종교재판을 받은 뒤 사우디 대표도시 8곳으로 보내져 1980년 1월 9일에 일괄로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참수형에 쳐해짐.


 사우디 정부는 가까스로 인질극을 진압했으나 작전은 대실패였고, 국제사회로부터 욕이란 욕은 다 들어먹음.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은 진압작전이 너무 비윤리적이었다고 까댔고, 같은 이슬람권들은 어떻게 동포를 죽일수 있냐고 존나 까댐. 특히 지역 라이벌이자 시아파인 이란은 사우드 왕가를 '미제와 시온주의자들에게 굴복한 꼭두각시'라고 맹비난함. 


한편 소련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제3세계에 펴져있던 KGB 요원들을 시켜서 '그랜드 모스크 진압작전의 배후에는 미국의 사주가 있었다'는 소문을 열심히 퍼트리고 다님. 결과적으로 1980년 1월부터 약 몇달 간은 거의 대부분의 이슬람권 국가들에서 반미 시위, 혹은 폭동이 일어남.






 




군사 갤러리

1979년


1979년은 여러 역사적인 사건들이 일어난 해로, 특히 중동 지역에서 중요한 해로 간주됩니다. 이 해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과 그에 따른 군사 작전으로 유명합니다.



사우디군


사우디군은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의 국방력을 담당하는 군사 단체로, 육군, 해군, 공군, 국왕 방위군 등 여러 부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79년의 메카 대테러 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메카


메카는 이슬람교의 가장 신성한 도시로, 매년 수백만 명의 무슬림들이 하지를 위해 방문하는 곳입니다. 1979년에는 이 도시에서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의 공격이 발생하여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대테러 작전


대테러 작전은 국가나 군사 단체가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예방하거나 대응하기 위해 수행하는 다양한 군사 및 비군사 활동을 의미합니다. 1979년의 메카 사건 당시, 사우디군은 테러리스트들을 제압하기 위해 강력한 대테러 작전을 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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