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나무와 산 이야기 > 인기 게시물

한반도의 나무와 산 이야기

작성자 익명 작성일 2024-05-23 13:04 댓글 0건
    게시물 수정 , 삭제는 로그인 필요


한반도의 나무들과 녹화 사업의 역사에 대해 ARABOZA


17164369797572.png

1932년 발표된 김동인의 유명한 소설, "붉은 산"의 말미에는 애물단지 동네 건달이었던 삵이라는 인물이 조선인 동포들을 위해 중국인 지주에게 항의하다 린치당해 죽어가며 주인공 앞에서 독백을 되뇌는 장면이 나온다

"보구 싶어요 붉은 산이 그리고 흰 옷이! 저기, 붉은 산이...그리고 흰 옷이.... 선생님 저게 뭐예요!"

만주의 천덕꾸러기 조선인 건달이 죽어가며 떠올린 고향의 모습은 붉은 산이었다.

17164369816324.png

도대체 왜 한반도의 산들은 붉은 산, 즉 민둥산이 되었을까?





1716436982037.png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선 17세기부터 전세계를 덮친 이른바 "소빙하기" 라는 기후 변화가 그 근원이었는데, 160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급격하게 낮아진 기온으로 식물의 생장이 크게 영향을 받아 경신대기근 같은 대기근이 발생할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날씨가 추워져서 산의 나무가 모두 고사했다 라는 얘기는 아니다.

나무야  당장 시베리아나 알레스카 같은 극지에서도 잘만 자라고, 한반도의 식생은 세계에서 위도 대비 가장 혹독한 반도의 겨울에 적응했으니까




17164369834525.png

범인은 바로 온돌이었다.
우리는 온돌이 조상의 지혜라고 찬양하는 경향이 있다.

맞는 소리이다. 분명 한반도의 냉혹한 겨울에서 살아남으려면 온돌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온돌은 대량의 에너지... 즉 엄청난 양의 땔감을 필요로 한다.



17164369838733.png

영조는 즉위하고 3년 후 33세가 되던 해

"내 어릴 적에는 그래도 백악산이 참 푸르러서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벌거숭이 민둥산이다"

라며 탄식할 지경이다.

단 2~30년전만해도 푸르렀던 조선의 산이 완전한 민둥산이 된 것이다.


17164369844744.png

그랬다.

그 전까지만해도 한반도 북부 평안도나 함경도 지방에서나 쓰던 온돌이 소빙하기로 인한 급격한 기온 저하로 조선 전국적으로 보급되었고

온돌에 들어가는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적인 대량 벌채가 일어났던 것이다.


결국 이런 무분별한 벌채로 전국의 산림이 황폐화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북악산에서 흘러내려온 토사가 한양의 하수 역할을 하던 청계천을 틀어막아 한양의 위생을 극적으로 악화시켰다.

17164369855012.png

영조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청계천 준설 사업을 벌여 청계천에 쌓인 토사를 걷어냈고 그 흙과 모래로 언덕을 쌓았는데

사람들은 이를 방산이라 불렀다.

17164369861783.png

오늘날 외국인들의 관광 명소로서 이름을 날리는 청계천 옆 방산 시장이 바로 청계천 준설토를 쌓아 만든 언덕 위에 세워진 시장인 것이다


1716436987264.png

영조 다음으로 즉위한 정조 또한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뒤주에 갇혀 죽은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무덤, '현륭원' 주위에 나무 한 그루 없이 휑한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17164369879922.png

그는 통치 기간 내내 식목 사업을 벌여 현륭원과 그 주위에 무려 1200만 그루에 가까운 엄청난 양의 나무를 심었다.


17164369885025.png

??????????

그 많은 나무는 다 어디 갔노?

현대의 조림 기술자들에 의하면 서울시 정도 면적의 지역을 녹화하는데 필요한 나무의 수는 약 90만 그루 정도라고 한다.

정조가 심은 나무의 수는 그의 10배를 훌쩍 뛰어 넘는 숫자인데 도대체 정조의 노력은 어떻게 되었길래 일제 시대까지도 온 조선은 민둥산이었단말인가?


17164369901396.png

우선 조선엔 '조림'이란 기술이 없었다.

나무는 가져다 심는다고 장땡이 아니다.
나무를 심고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는 비율을 '착근률(着根率)'이라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정조가 재임기간 내내 심은 나무의 착근률은 15%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무식하게 나무를 가져다 심은 게 아닌 '때려 박은' 것일 뿐이었다.


17164369906037.png

??????

1200만 그루의 15%면 180만 그루인데
아니 그래도 90만 그루의 2배라면 많이 심은 거 아니노?


문제는 그것이 처음부터 조림을 위해 기른 나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실록 기록에 따르면 정조가 재임 기간 내내 심은 대부분의 나무는 씨앗부터 체계적으로 기른 나무가 아니라 지방의 각 고을로부터 어린 나무를 징발해 가져온 나무였다.

결국 저쪽에서 자라던 나무를 가져와 이쪽에다 심었을 뿐 새로운 나무를 심은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당대 조선은 교통이 상당히 불편한 축에 속하는 국가였고, 자연스레 지방에서 징발한 나무들을 옮기는 과정에서도 어린 묘목들이 부지기수로 죽어나갔다.

결과적으로 왕릉 근처의 산은 나름 풍성해졌으나 그 외의 다른 지역엔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 아니 오히려 악영향을 끼친 이것이 근래 '식목왕 정조'라며 찬양되던 정조의 식목 정책의 실체였다.


17164369930574.png

조선 총독부가 만든 조선임야분포도에서 볼 수 있듯이 영정조 시대 이후 조선 왕조의 산림 관리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

아니 산림 관리 정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왕실은 "산림과 천택은 백성과 공유한다"라는 성리학적 이념에 따라 왕실 소유의 산림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사적 소유권 또한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판국이니 산림 관리와 식목에 대한 관심은 조정 대신들과 왕에게서 멀어져만 갔고, 드문드문 올라오는 산림 관리의 필요성에 대한 상소도 이들에게 닿지 못했다.



결국 백성들은 추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주공산의 산림에 들어가 먼저 베는놈이 임자라는 식으로 마구잡이로 뗄감을 채취했고 그로 인해 한반도 산림 전체가 초토화되었다.

그렇다. 아주 교과서적인 공유지의 비극이었던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들도 소빙기와 인구 증가 등의 비슷한 시련에 부딪혔으나 그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산림 자원을 보존하는 것에 성공했다.


17164369945574.png

영국 같은 경우 왕실에서 전국토에 걸친 전면적인 산림 벌채 금지령을 내린 뒤로는 석탄을 통한 산업 혁명을 거치며 비효율적인 땔감의 필요성에서 벗어났고

(덤으로 스코틀랜드에는 양질의 석탄이 대량 매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격 면에서도 석탄이 땔감을 순식간에 밀어낼 수 있었다)


17164369970163.png

일본은 1657년 발생한 메이레키 대화재로 대량의 목재가 필요해진 이후 각 지역 다이묘들을 통해 체계적으로 산림 자원을 채취하고 식목을 시행하는 법령을 도입해 산림 자원을 관리했다.


17164369975884.png

참고로 고좆 새끼는 그나마 산림 자원이 남아있던 지역의 벌목권을 일본과 러시아에 팔아먹기 급급했고 그나마 숲을 가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정조에 비하면 나무를 심는다거나 환경을 가꾼다는 개념은 애초부터 없던 인간이었다.

40여년을 집권하며 수많은 기회 속에서도 나라를 말아먹은 인간에게 이런 것을 기대하는 사람이 바보겠지만.



한반도의 식목,조림을 위한 노력은 비로소 20세기가 되어서야 일본인에 의해 시작되었다.


17164369981134.png

고종의 시대를 지나 조선 아니 대한제국의 명운이 거의 끝나가던 1909년, 일본 동경대 임학과를 졸업한 사이토 오토사쿠(斉藤音作)라는 일본인이 대한제국 농공상부 임정과장으로 부임했다.


17164369996492.png

그는 다음 해 1910년 5월 5일 풍년과 황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인 '친경식'을 행할 때 제사와 더불어 식수식도 포함시키자고 통감부에 제안했다.

황제가 제국 신민들 앞에서 나무를 심으면 그 선전 효과가 좋을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그 해 8월 한일합병 이후, 총독부의 식산국 산림과장이 된 사이토는 다시 한번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에게 기념 식수식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 인간은 정말로 식수식과 나무에 미쳐있는 인간이었다.


17164369999226.png

이에 데라우치는 이렇게 답했다.

"조선을 살찌우려면 나처럼 대머리인 곳에 조림해야지 대머리가 되는 것은 안 좋은 일이지 암."

물론 그의 의도는 식민지 조선에서 무언가를 뽑아먹으려면 어떻게 해서든 조선의 살을 찌워야 한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1911년 4월 3일 제1회 기념 식수식이 거행됐다.

이 행사는 해방이 될 때까지 총독부의 연례 행사가 되었고 바로 이 행사가 우리가 아는 식목일의 모태가 된다.


17164370007176.png

????
식목일은 4월 5일 아니노?

사이토 오토사쿠는 한일 합병을 기념할 목적으로 제안한 이 사업을 진무 덴노의 기일인 4월 3월로 정했다.


17164370017683.png

일제가 패망하고 들어선 미군정과 그를 이은 대한민국 정부는 이 식목기념일을 계승해 4월 3일에서 4월 5일로 옮겼지만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아마 식수의 필요성은 절감했으나 하필 합병 기념을 위한 날짜를 그대로 쓰기에는 영 껄쩍찌근했으리라

그래서 일제의 식수 사업은 성공적이었나?

그러면 반인반신 시대의 식수 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도 않았겠지



물론 일제의 식수 사업은 어느 정도의 진전은 있어 초토화되어가던 한반도의 녹화를 진행시키긴 했다.


17164370020636.png

공식 통계가 도입된 1927년부터 조선의 산림률은 꾸준히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27년부터 총독부가 심은 나무의 산림 면적은 대략 195만 헥타르에 가깝고 심은 나무는 82억 그루에 달한다.



그러나...

17164370027477.png

17164370032431.png

17164370062582.png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두 차례에 걸친 전쟁은 일제가 벌인 식수 사업을 무위로 돌렸다.

일본 제국이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총력전 체제로 전환된 뒤 일본 본토와 한반도 전역에 걸친 나무의 강제 공출 명령이 떨어졌고 한반도에선 총독부가 심은 나무 이상의 벌목이 행해졌다.

일본 본토의 산림 자원도 전쟁 자원 확보를 위한 벌채와 폭격으로 인해 크게 피해를 입었는데 이후 6.25 전쟁에 의해 일본보다 더 직접적으로 전쟁의 화마에 휘말린 한반도의 산림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결국 한반도의 산림이 복구된 것은 강력한 행정력과 식목, 그리고 환경 보호에 대해 이전의 어떠한 정부보다도 강력한 의지를 지녔던 박정희 정부에 의해서였다.

반인반신의 노력 끝에, 소빙하기 이후 거의 400년 만에 한반도는 다시 숲으로 뒤덮힐 수 있었다.


그 결과를 보증하듯이 지리산과 태백산맥의 일부 원시림을 제외한 휴전선 이남 지역 산림의 80% 이상이 60년대와 70년대에 조성된 인공림이다

다만 10.26 사태로 인하여 중간에 조림 사업이 미완성으로 끝나긴 했었으나, 여하튼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산림 복구를 성공하였다.


<끝>


한반도


한반도는 동아시아에 위치한 지역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와 생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다양한 기후와 지형 덕분에 독특한 식물군과 숲 생태계가 발달해 있습니다.



나무


한반도의 산림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 나무로는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등이 있습니다. 이들 나무는 각각의 생육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한반도의 자연경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소나무


소나무는 한반도 전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나무로, 특히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소나무는 강한 생명력과 오랜 수명을 자랑하며, 이는 한국인의 정신과도 잘 맞아떨어집니다.



참나무


참나무는 다채로운 변종이 있는 나무로, 특히 가을철 아름다운 단풍을 자랑합니다. 참나무는 목재로서의 가치도 높아 건축 재료로 많이 사용되며, 다양한 생태환경을 제공하는 중요한 나무입니다.



단풍나무


단풍나무는 가을철 붉게 물드는 잎으로 유명하며, 한반도의 가을 풍경을 대표하는 나무입니다. 아름다운 색상과 다양한 생태적 역할 덕분에 많은 공원과 산에서 심어지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다양한 산맥과 산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이 지역의 기후와 생태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을 비롯한 여러 산이 관광 명소로도 유명합니다.



설악산


설악산은 한반도 강원도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 1,708미터에 이르는 고산입니다. 이 산은 다양한 생태계와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하며, 연중 많은 등산객들이 찾습니다.



지리산


지리산은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한반도의 중요한 생태계 중 하나입니다. 이 산은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이며, 특히 한국의 전통적인 명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라산


한라산은 제주도에 위치한 해발 1,947미터의 산으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이 산은 독특한 기후 조건과 생태계를 가지고 있으며, UNESCO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추천0 비추천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