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넘어간 일본 G3 우승마, 오스미 제트의 말년. > 인기 게시물

한국으로 넘어간 일본 G3 우승마, 오스미 제트의 말년.

작성자 익명 작성일 2023-11-10 07:12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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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녀석이지만, 무엇보다도 인상 깊은 말년을 보낸 녀석이라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처음에 일본 경주마이긴 한데, 한국에서의 말년이라 이걸 K경마탭으로 해야 하나 고민 했었는데....



해답은 가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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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명 오스미 제트.


나리브가 클래식 전선에서 뛰었던 1994년에 태어난 말이다.



먼저 부마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대종마 미스프로의 미국 G1 산구인 제이드 로버리.


생전에 마일 CS 남부배 우승마 타이키 셜록, 호주 단거리(스프린트~마일)에서 날뛰던 발키리 디바 그리고 사후 아일랜드 2세 G1마 커클리스를 낸 종마로.


그 외에는 몇년에 한두번씩 자마들이 중앙 G3와 지방 중상에서 우승 소식이 들려오는 정도.



BMS에는 팔콘 S와 같은 중상 우승마도 있지만, 희안하게 장애물 우승마들 제법 보이며, 코리안 더비마를 배출한 바가 있으며.



올해 반야르에게 묻힌 토카이 S 우승마, 프로미스트 워리어의 모모부이기도 하다.




모부는 말붕이들의 쭉빵한 할매 마루젠스키.



기타 가족사항으론 고쿠라 기념에서 우승한 반형제마(父 : 사쿠라 유타카 오)가 있다.




오스미 제트는 상술하듯 제이드에게서 간혹가다 나오는 수준이었던 G3 1승마로 타이키 셔틀과 메이세이 오페라와 유니콘 스테이크스와 퍼블러리 S 등에서 붙은 바가 있는 녀석으로 G1/G2 우승은 없지만, 무려 4개 경주에서 G3 7관이란 타이틀을 획득한 녀석이었다.



이후 00년 엘름 S 3착 후 부상 및 고령으로 인해 다음 해 2월 은퇴,



이후 종마로 전환하여 일본 이스트 스터드에서 활동했으나 오픈 3착마가 최대 커리어였던 만큼 X망이었던 만큼 2006년 제주도 금악을 거쳐 녹원 목장에 보내졌다.






한국으로 넘어온 녀석에게 종부 기회는 얼마나 있었을까요?


일단 일본 경주마지만 더트마고 부마는 미국 종마에다가 (2필 수입해서 그 중 하나가 외산마 1군까지 승격) 모부는 당시 마사회에서 종마로도 데리고 있던 니진스키2계였던 만큼 제법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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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드마이언 돈 : "그래서 니 G1/Jpn1 몇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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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교배 기회는 꼬라박았다. 거기에 몇년 뒤 돈은 물론 역시 일본 G1 우승마이자 녹원이 데리고 있던 미국 G1 우승자마를 배출한 종빈마를 노리던 샤다이 측에서 주선해 준 이글카페까지 있었으니 상식적으로 누가 인기가 있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몇 년 뒤 지금은 활동을 중단하신 모 목장 견학 블로거에 의하면 말이 종부마지, 실상은 시정마로 지내고 있다고.....



어느덧 20세를 목전에 든 나이에, 인기도 없는 종모마가 된 오스미 제트.


그렇게 마방과 패독을 오가며* 살다가 생을 마감했을 법한 녀석에게 운명 같은 만남이 찾아왔다.



* 간혹가다 여유가 되면 방목지에서 풀어주곤 한다지만, 최우선권은 어떤 종마들일지 다들 견적들 나왔을테고




2016년 초 제주도 안덕면에 자리한 계림목장의 대표이신 윤천보 대표가 녹원목장에 놀러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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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 한 분이신데... 누군지 아는 말붕이가 있다면 댓글로.)



녹원목장 사장(지대섭 대표/마주님의 자제분이시라는데,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오셨다고)과 얘기를 하던 중 오스미 제트에 대해 관심을 보이셨다고 한다.


녀석을 보고 맘에 든 윤 대표가 녀석을 데려 가고 싶단 제의에 약간 난처해하던 목장 측은 실질적인 소유권을 그에게 양도했다고 한다.



이후 얼마 간 종마 생활을 지속했다지만(배합이 맘에 드셨다고), 도합 한 자리대의 숫자 이후 녀석을 은퇴를 시킨 후 목장에서 지극정성으로 키워졌던 것이다.


외국 경마에 대한 동경 - 특히 은퇴 경주마/종마들에 대한 대우 등에 대단히 관심이 많으셨기 때문이었다고.



그런 오스미 제트는 제법 까칠한 성격이었다지만, 그렇다고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는 타입은 아니었고, 이후 윤 대표에게 마음을 열어 멀리서 이름을 한번 불러도 달려 나오는 애완마로 변모했다고 한다.


이후 성격은 완전히 순해졌으며, 상당히 똑똑한 말이라고 증언했다.



단순히 사람을 좋아하고 얌전한 게 아닌,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 지으며 상황 판단력이 뛰어나서 선을 지키는 쪽이었다고


일본에서 들여온 종부마들은 전부 다 만나보셨다는데, 마명을 잘 못 들은 낯선 말(뭐시기 재팬이라고 하셨는데....)과 더불어 두 손가락 안에 드는 녀석이었다고.



식성에 대해선 딱히 가리는 음식은 없다고 하셨다. 사람과의 신뢰가 쌓였던 걸까? 들고 오는 거는 건초든 바나나든 귤이든 뭐든지 잘 먹었다는데, 그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과일인지 수박을 먹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고.



이후 간단한 훈련도 해서 명령을 따르게 했다는데, 그 중에서 플레멘 훈련도 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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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웹에 올리셨다고 보내준 사진을 보면 얼굴 표정 - 플레멘 효과 쪽인 듯 ㅋ



그러다가 이게 입소문이 나면서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보러오시는 분들도 계셨다고.

(소식 듣고 온 이들 중에 녹원목장 사장도 녀석이 머리가 비상하다고 알고 있었지만, 묘기를 보자 감탄하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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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일본의 프리랜서 목장이나 메이세이 오페라, 어드마이어 돈의 라스크 크룹 등을 보러 오신 우시야마 모토야스도 소식을 듣고 오셨다고.


(근데, 기사를 안 내셨던 건지, 아니면 신문지나 잡지 한정인지 웹에는 안 보임 ㅆㅂ)



이후 이걸 당시 제주 조교사와 승마 동호인 등이 모여서 만든 은퇴마 관련 모임에서 승용마 겸 관상마로 보내셨다고 한다. (기증을 하면 관리가 소홀히 질 수 있어 본인 소유의 명의로 해놓았다고) 거기서도 여러 사람을 받았다고 하며 본인도 그 시절에 몇 번 타 본 적이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 재밌게도.




김렛처럼 거세를 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 성질 나쁜 것도 아니고 충분히 제어가 되어서 구태여 거세 안 하셨다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스터드북에는 2022년 12월 31일, 28세의 일기로 사망했다고 등재되었다.




거기에 대해 뒷이야기가 조금 있는데, 계림목장은 경주마 생산과 관련해서 마사회 쪽과의 제휴가 2019년에 종료되었다고 한다.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대표님께서 그 당시 크게 다치셔서 목장일을 할 수 없게 컸다고(지금은 딜러일을 하신다는데, 이게 경마 쪽인지는 불명). 이후 치료, 재활 및 이런 저런 사정으로 거의 2, 3년 만에 녀석을 보러 방문하러 가셨는데(이때 은퇴마 처우를 위한 승마 동호회가 여러 사정으로 해산을 앞두고 있었다고) 


몇년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음과 동시에 신고에 이상이 있었는지 누락이 되어 곧장 신고하여 그렇게 된 것이다.



아무리 못해도 25세는 확실히 넘었다고 하셨는데, 아마 만 26세 내외에 죽은 게 아닌가 싶은데, 본인이 다쳤을 적에 세상을 떠났으니 이건 참.... 


그래도 나름 천수를 노렸고, 일본이었다면 저 정도 급은 공로마에 선정되지 않아서 행방불명 엔딩이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으니....




워낙에 녀석과의 추억이 많았다고 하심.



온라인에 올리신 건 카카오스토리에 과거에 올리셨던 1장 뿐이고 나머지 무수히 많은 사진들은 카메라에 있는데(핸드폰이나 컴퓨터로 옮기시는 게 서투르시다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찾아보셔야 한다고.


(이런 걸 보면 빛을 못 봐선 그렇지 방문객이든 목장 관계자든 생전 유명 종마들의 사진들이 잔뜩 있다는 건데, 그것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거니....)



마지막으로 당시 푸른목장에 있던 메이세이 오페라 보러 온 일본인 신혼부부 소식을 듣고 그런 문화에 부러워 하셨는데, 국내에선 이 녀석을 만나러 오신다면 언제든 흔쾌히 허락을 해줬을 거라는데, 도리어 멀리서 찾아온 일본인들과 달리 국내 경마팬은 보러온 이가 아예 없어서 안타깝단 발언도 하셨음.




국내에서 그 녀석을 기억해주는 사람을 처음이라며 반가우셨는지 무지막지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다 못해 부어주셨는데, 도리어 당시 외근 중이라 필기도구를 지참하지 못했던 상황에 늦게 퇴근한 탓에 말붕이 뇌용량으론 일부 내용이 잊혀진 게 아쉬울 따름.



언제 주말에 날을 봐서 다시 한번 연락을 드려볼까 생각 중임.




우마무스메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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